‘사랑 챔버’선율 온누리에…
저는 1986년에 연세치대를 졸업하고 20여년 째 서울 은평구에서 개원하고 있는 배현경 원장입니다. 제가 감히 서울여자치과의사회 정기총회 및 특별공연에 선 것은 저의 특별한 큰 아들 이정익이와 우리 ‘온누리 사랑 챔버’를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정익이는 올해 만 23살이고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아이인데다가, 발달장애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기에 그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의 노력으로 유능한 선생님께 특수교육 열심히 시켜 입학시키면 정상 아동들보다 처지더라도 일반학교 과정을 따라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제점이었습니다. 제 아들의 장애를 제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감출 수 있으면 감추고 싶었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했습니다. 정익이는 보통 아이들이 지키는 규칙과 학습을 당연히 따라가지 못했고, 엉뚱한 곳(예를 들어 우연히 옆을 지나가는 아이나 주차시켜 놓은 자동차)에 화풀이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수 학급이 없는 일반 학교로 보낸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동안은 담임선생님께 호출 전화가 올까봐 학기 중에는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고, 방학이 되면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날이었습니다.
정익이는 정익이대로 힘들었겠지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수업시간, 친구들의 따돌림과 냉대, 선생님들의 무관심과 꾸중 등등… 그렇게 힘든 학교생활을 하는 정익이를 저는 이해하지 못했고, 무조건 ‘네가 참아라 참아라’하며 제 입장에서만 생각했고, 학교에 불려 가는 것만 두려워 했습니다. 저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정익이가 화를 참지 못하고 돌발적인 행동을 할까봐, 또 이상한 혼잣말을 되풀이 할까봐 정익이를 동반하는 가족행사나 소속 구의 운동회나 가족여행에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달팽이처럼 내면으로만 움츠러드는 제 인생에 또 한번의 위기가 왔습니다. 4년 전 남편이 갑자기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1년도 안돼 하늘나라로 먼저 가버린 것입니다.
‘인생은 가벼운 산책길처럼 시작되다가 준비안된 채 떠밀려진 마라톤 길 같아 진다’는 글을 어느 책에선가 본 적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그저 공부 잘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들으면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이대로 쉽게 살아갈 줄 알았는데, 모든 인생여정은 제 노력으로는 절대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결론을 전 커다란 고통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나, 혼자 감당이 안되는 우리 큰 아들과 이제 고 1인 작은 아들을 데리고 어떡하나’ 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대학선배와 친구들을 통해 저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한한 사랑과 평안을 저와 저의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정익이는 교회안의 지적장애청년부에 다니며 많이 안정이 되었고 분노 폭발도 거의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회성도 좋아져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화여대 도서관에 비록 비정규계약직이지만 사서보조로 오전근무하며 혼자서 출퇴근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12년 전에 바이올리니스트이신 손인경 선생님이 시작하고, 클래식 전공 선생님들이 자원봉사로 레슨과 합주연습을 지도해 주는 ‘온누리 사랑 챔버’가 있습니다. 정익이는 4년 전부터 참가하여 첼로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중학생 때 플룻레슨을 받았었지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 몇 달만에 그만둔 경험이 있어 잘 따라할까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정익이는 의외로 재미있어 하고 혼자서 연습하려는 열성을 보였습니다.
다른 멤버와의 합주 때도 은근히 경쟁심을 느끼는지, 매주 화요일마다의 챔버연습시간에는 꼭 참가하려 하였습니다. 사실, 발달장애의 특징이 사회성 결핍이고 상대방과 대화시 눈을 안맞추는 경향이 있어 음악에 재질이 있는 아이들이 독주는 훌륭히 할 수 있지만, 지휘자의 지휘아래 합주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처음엔 박자 맞추기도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손인경 선생님의 독특한 지도 방법에 따라 연습하면 개인차이는 있지만 서서히 합주가 가능해지고 산만하던 아이들도 눈을 맞추게 됩니다.
또한 엄마들도 아이들의 연습시간동안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려웠던 이야기, 아이들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들의 마음속 상처들도 조금씩 아물어 가는 것을 느낍니다. 서로의 기도제목도 나누고 학교생활 상담도 하면서 말입니다.
아! 그리고 말입니다. 정익이는 음악을 통해 ‘사랑’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반복훈련을 통해 예절이나 한글공부, 계산법은 몸에 익힐 수 있지만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야단치면서까지 훈련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얼마 전부터 저를 괴롭혔는데요. 올해 1월 22일, 사랑챔버캠프 가는 버스에 데려다 주는 길에 정익이는 쭈뼛쭈뼛하면서 “어머니는 저를 사랑하시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러엄, 정익이도 엄마 사랑하지?” 했더니 “네”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래서 1월 25일 정익이의 23번째 생일날 “하나님, 정익이를 저에게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사랑챔버의 음악소리는 참 직선적이고 단순합니다. 세련된 바이브레이션과 장식음은 없지만, 그런데도 초청 연주를 나가 보면 청중들이 처음엔 어색해 하시다가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면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있고, 고개를 끄떡여 박자를 맞춰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의 진솔한 음악 소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느끼신다면, 우리 엄마들과 챔버 단원들은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사랑챔버가 생긴지도 벌써 12년. 이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챔버 단원들과 부모들, 그리고 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연습도 하고 숙식도 할 수 있는 사랑 공동체를 소망하게 되었고, 차근차근 준비를 하려 합니다. 비록 지금 시작은 미약하지만 기도와 연주로써 하나님의 작은 선교사가 되면 우리의 꿈과 비전도 이루어 주시리라 기대합니다. 사랑챔버 공연문의 : 010-3193-4991(김명희 회장)
배현경
서울 세련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