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하)
마추픽추(Machu Picchu)
‘나이 든 봉우리’를 찾아가기로 했다/너무 유명하니 인사함 하는 것도 살아가는 맛이라 생각했다/즉, 네가 중요한 핵심이었단 말이다/400년간 쉬고 있던 너를 만나러 가는 길/‘성스러운 계곡’ 우르밤바 강을 따라 하늘이 보이는 기차를 타고 가야 했다/사실은 해발 2800에서 2400으로 내려가는 길/열대우림을 뚫는 길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가는 길/사리사리하게 가지 않고는 보여주지 않는 길/영험한 곳은 모두 그랬다/현기증을 느끼게 한 후에야 보여주는 공중도시는/구름이 까치처럼 왔다 갔다 했다/사라진 비밀의 도시, 그곳엔 이방인인 관광객들이 부산만 떨고 있고/그 신비로움에 쌓인 깎아서 만든 절벽도시는 사라짐을 예견했다/아무도 모르게 궁금증을 낳고선 징기스칸*처럼 비밀을 간직하고/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아니 잠시 비켜서 있을지도 모른다/또 다른 세상에서도 역시 인간은 잔해를 남기고 갈 뿐/미라로 남는 인간은 그저 선반용 제물일 뿐/마추픽추에는 영(靈)가득 추락하는 아슬아슬함이 가득.(*그룹 징기스칸의 노래 마추픽추도 있다.)
12월 29일 수요일, 우르밤바에서 버스로 7시간 아래로 이동,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길, 중간에 4338m의 Abra La Raya에 올랐다가 다시 3800m의 푸노(Puno)로 가는 길, 온통 나무 한 그루 없는 안데스의 산과 황토색 우르밤바 강뿐, 아무것도 없다, 과거와 얄포름한 현재 그리고 삭막뿐, 아니다, 있는 것이 분명 있었다, 고산! 고산병(Altitude sickness)이 오는 것이었다, 티티카카 호수를 찾아가는 도시 푸노에는 이런 천혜의 방어벽 산취(山醉)가 작동, 울렁증을 이기지 못했다, 여자들은 모두 토했다, 치차도 노란 잉카콜라(Inca Kola, 페루의 국민 음료)도 아무소용이 없었고, 동행했던 노(老)의사는 부인에게 이런 증상, 저런 증상에 약을 권했고, 부인은 나을 거라 믿고 모두 먹었고, 다음날 할머니는 하얀 얼굴로 나타났고, 뱉어 내는 말, 약을 너무 많이 먹어 다 토했다고 투덜투덜 하시던 고산지대, 하늘호수, 높은 곳에 위치한 충북만한 호수 티티카카.(*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호수라고 하여 검색을 해 보았더니 각양각색, 좀 더 정밀한 자료를 요한다. 네팔의 창제(Changtse pool, 6,216m), 판치 포크리(Panch pokhri, 5,494m), 항해가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는 티티카카다.)
티티카카(Titi Caca)
푸노에선 모두가 토했다/해발 3800m에서 모두가 비실비실 거렸다/폐가 1.5배나 큰 잉카 후예들만이 살 수 있는 호수의 나라/그곳엔 해군(海軍)이 아닌 호군(湖軍)이 있고/업보처럼 갈대, 토토라(Totora)가 있었다/순전히 가이드 욕심 때문에 우로스(Uros)족에게 갔다/처음엔 반기는 것이 고마웠다/어쩌면 이방인을 저렇게 기쁘게 맞이할까?/북조선의 아리랑 공연이 막 스쳐갔다/태양 집열판과 가스레인지와 티비가 있는 원시부족(?)/그들이 부른 ‘산토끼’와 ‘나의 하나님’은 열불이 나게 했다/다음엔 찬불가도 불러 주삼? 부탁했다, ㅉㅉ/존재도, 웃음도 생계를 위한 것일 뿐/맞다/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큰 것은 절대로/이 세상엔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영웅은 잠시 그리고 본인에게 뿐이다/쉽게 살아가야 하도록 예정되어 있는 우리 운명처럼/아니 물에 젖어 가라앉아 썩어버린 갈대배, 발사(Balsa)선의 운명처럼/적응해 살아가는 삶, 그 이상 그 무엇을 바라는 것이냐?/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코카잎으로 마취하는 고산병들.
12월 30일 목요일, 티티카카 호수 앞에서 잠을 청하고, 울렁증 때문에 식사는 그저 쌀죽을 부탁해 요기하고, 페루에서의 쌀죽에 감사해 하며 나스카로 출발, 사막, 사막 또 사막을 가다가 오아시스가 있는 모래언덕에서 샌드 보드를 신나게 타고 또 다시 달리는 길, 사막 길, 판아메리카(Pan America Highway)길, 그 옆에는 모래처럼 사막의 판자촌으로 몰려드는 도시 난민들, 코카(Coca), 소득원의 피탈(被奪)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막의 작고 가벼운 성냥갑들 속 잉카인들, 그리고 도착한 마지막 숙소 마조로(Majoro), 난 그날 쿠바리브레(Cuba libre)를 찾다가 시골 호텔 주인이랑 거나하게 공짜로 마조로, 소주랑 정말로 똑같은 와인 증류주에 취했다.
12월 31일 금요일, 나스카 지상그림을 경비행기로 구경, 얼마 전에 새로 구입한 경비행기가 여행객들과 함께 납치되어 현재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는 코멘트를 구경하고 나서야 하는 가이드 언니(!), ㅎㅎ. 소문만 들었던 나스카 지상화를 보는 기쁨, 무섭고 가냘픈 경비행기였지만 열심히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고, 그 광활한 사막에 핀 예술 아닌 구원이 이루어지길 기원, 고대의 것은 고대에게, 원숭이의 꼬리는 원숭이에게로.
나스카 지상화(Nazca lines)
안데스 서쪽은 긴 사막이다/태평양과 가끔 접해 있다/겸손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래서/사막은 미라처럼 잠시 쉬고 있는 것일 뿐이다/언젠가는 신령한 물의 초청을 기다리며/부활을 꿈꾸며 참고 있을 뿐인 사막이다/천년 간다는 마른 감자 ‘추노(Chuno)’처럼/오랫동안 살아있는 그림들도/사막을 위한 문신일 뿐이다/허밍버드가 눈에 띄었다/그 벌새는 마추픽추에서도 나스카 돌사막에서도/홍수에 쓸려가지 않고 아직까지 살아 있었다/살아있는 그와 그의 친구들을 위한 축배를 들어야 한다/대농장(Hacienda)의 포도도 그래서 있는 것/존재를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1월 1일 토요일, 나스카 지상화 보고 출발, 리마공항으로 7시간 이동, LAX행 비행수속 마치고 조는 사이, 페루 리마 공항에서 맞는 2011년 1월 1일 신기하고 묘한 신묘년(辛卯年) 새해. 5!, 4!, 3!, 2!, 1! 그리고 반쯤 눈이 감긴 “해피 뉴이어” 그리고 “복 많이 받으세요”. 미국입국 서류에 적는 날짜는 1-1-11, 일-월-년 순서였다.
LAX서 탄 비행기는 12시간 만에 무탈하게 인천공항에 내렸다. 1월 2일 오후 5시였다. 엉덩이에 땀이 났다. 바그너 음악처럼 남미여행은 ‘엉덩이’로 하는 것이었나? 라는 먼 길이었다. 남는 것도 오래갈 것이라는 굳은 믿음과 함께 그리고 고려 말에서 조선 중종 28년까지 파차쿠텍 잉카 유팡키(Pachacutec Inka Yhpanqui, 1438~1471)와 투팍(Tupac Inka Yupanqui, 1471~1493), 잉카의 번성기, 잉카(Inka)는 왕, 그들을 기억하고 싶다. 프란시스코라는 세례명을 받고(화형을 면하는 조건으로!) 교수형에 처해지는 서자 출신의 아타왈파도 기억해야 한다. 280년간의 스페인 지배 그리고 융화, 어디서든지 그려지는 의미 있는(?) 성호(聖號, Cross)는 진실된 본래의 것인지(?), 안데스의 거대한 맹금 콘도르(Condor)만, 아니 높은 곳 하얀 만년설만이 흥망성쇠의 인간사를 지켜보고, 그 속사정과 뜻을 알 것이다.
먼 길, 남미 여행 길.
아직 시차(Jet lag)를 이기지 못했다. 제정신으로 돌아옴. 또 언제 배낭을 꾸릴지 그 상상으로 에너지를 삼아 또 미래를 뜨겁게 맞이해야 할 것이다. 고도(高都)의 잉카문명과 안데스와 체 그리고 이 세상, 떠나길 꿈꾸는 모든 심장들이여 복 많이 받으세요. 복 받는 세상이 멋이다.
송선헌
대전 미소가있는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