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황금기 ‘공중보건의’
2009년 4월 보건소로 첫 출근. 한 시간 후 여사님이 부른다.
“선생님, 환자왔어요. 발치요.”
첫 환자. 상악우측 제2소구치였는지, 제1대구치였는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잘 뽑을 수 있을까, 발치순서가 어떻게 되었지’ 속으로 되뇌면서 진료실 유니트체어로 향했다. 간단한 치주발치였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치아가 ‘쏙’하고 뽑히는 느낌도 좋았고 자신감이 생겼다. 공중보건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는 운이 좋아 경기도로 근무지 배치를 받았다. 내가 근무한 보건소는 여러 구강보건사업을 시행하고 있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에는 어린이집 원생들이 구강검진, 교육을 받으러 보건소에 왔고, 매주 수요일, 금요일에는 초등학교 구강보건실에서 치아홈메우기 사업을 하였다. 장애인시설, 요양원 등으로 구강보건버스를 타고 출장도 나갔다. 그 외 시간에는 보건소에 오는 환자들 진료를 하였다. 그렇지만 치과대학에 다닐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여유로운 생활이었다. ‘무엇을 할까.’ 하고 싶은 일들을 목록으로 적었다. 여행, 악기, 운동, 세미나수강 등 생각나는 대로. 하루는 공중보건의 축구모임에 나가고 이틀은 기타학원에 다녔다. 그러다 다른 일이 하고 싶으면 새벽에 영어회화학원에 다니고 저녁엔 개인트레이너와 같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였다.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신경치료, 보철, 치주 등 세미나도 들었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잦은 모임도 갖으면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고 무슨 일이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의욕이 너무 충만해 있던 걸까. 1년 정도 지나자 생활이 무료해졌다. 기타학원을 끊고, 헬스장도 그만두고 진료실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바람 좀 쐴까하고 근처 보건소에 있는 같은 학번 공중보건의 2명과 같이 여행을 가기로 하였다. 목적지는 대학동기가 근무하고 있는 섬. ‘누가 어디에서 근무하고 있더라.’ 제주도, 완도, 서해 5도지역 등 갈 곳이 너무 많았다.
제주도에 있는 추자도로 정했다. 2박3일 일정. 하루는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하고, 둘째 날 추자도로 들어갔다. 제주도에서 배로 3시간거리. ‘친구만 없었으면 다신 안 온다.’ 배에서의 긴 시간은 무척 지루했다. 반갑게도 친구가 선착장으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렇게 마중 나올 사람이 아닌데 섬에 있어 외롭나.’ 보건지소에 들려 의과, 한의과 공보의선생님, 지소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친구가 추자도 구경을 시켜주었다. 추자도는 차로 30분 둘러보니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조그마한 섬이었다. ‘아! 얘 정말 심심하겠구나.’ 친구관사에서 인터넷만 하다가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시간만 보낼 거면 우리 여기 왜왔지.’ 의과, 한의과 공보의선생님부터 치과여사님, 방사선기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등 추자보건지소 전 직원이 함께 하는 저녁식사였다. “여기는 직원들하고 다 같이 밥 먹어.” 방사선기사님이 회를 떠주시고 치과여사님이 고기를 구워주시고 가족 같은 분위기의 화기애애한 식사였다. 추자보건지소 직원들의 유쾌한 대접은 이후에 내가 다른 지역 공보의들을 찾아가게 해주었다.
청산도, 경북 울진 등 내가 근무하는 곳과 먼 지역에 있는 동기들을 방문했다. 가는 길이 멀어 귀찮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친구들이 있어 재충전의 시간으로 충분했다.
도서오벽지에 있는 공보의들을 방문하면서 새롭게 의욕이 고취되었는지 이렇게 시간만 보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는 친구, 낚시를 하는 친구, 골프를 치는 친구, 세미나수강 뒤에 지소에서 환자들에게 폭 넓은 진료를 하는 친구 등 그곳에서 할 수 있는 많은 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다시 할 일을 찾기 시작했다. 새삼 내가 있는 곳에서는 다른 지역 공보의보다 할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에 감사해졌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었일까.’ 이제 공보의 3년차, 슬슬 일년 뒤에 전역한다는 압박이 오고 있다. 그동안 얕은 지식에 겁 없이 진료를 하였다. 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 말 껄’ 하는 치료도 있다.
대학교 때 친한 친구가 자기목표는 환자들에게 신뢰받는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공보의 마지막 일년을 뜻깊게 보내어 나 역시 신뢰받는 치과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많은 공부와 많은 경험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자신감을 가져야 할 때이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은 공중보건의 생활. 열악한 상황에도 도서오벽지에서 성실히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비롯해 전국의 공중보건의 선생님들 밝은 미래만 생각하며 힘내세요!
신재현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
경기도 안성시 죽산보건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