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7 (화)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제1636번째) 산과 물은 서로 거스르지 아니하니…

산과 물은 서로 거스르지 아니하니…


분수령(分水嶺)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분수령은 말 그대로 물길이 나누어지는 곳입니다. 그리고 분수령은 산줄기의 마루금에 있어서 물의 흐름 즉 수계(水系)가 달라지는 시작점이기도 합니다. 산과 물은 절대로 서로 거스르지 않습니다. 산이 억지로 물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산줄기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물길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산줄기에는 그에 따라서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분수령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일생동안 크고 작은 분수령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느 쪽이든지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만약 매우 큰 분수령인 경우는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가야할 길과 삶이 전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른바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물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경우도 있기는 합니다. 


요즘 산행하는 인구가 많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산줄기에 대한 관심도 꽤 커지는 것 같습니다. 산줄기를 알고 산행을 하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산이 더 친근해집니다. 조선조 지리학자 여암 신경준 선생의 산경표(山徑表)에 보면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여러 개의 정맥 그리고 많은 기맥과 지맥들이 있습니다. 이 들 산줄기에 의해서 물길이 달라지고 서로 다른 지역을 적시는 내와 강을 이루며 끝으로 다른 바다에 이르게 됩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금강산을 지나고 지리산을 거쳐 남해대교 앞에서 끝납니다. 이 백두대간의 서쪽은 압록강에서 섬진강까지 서해와 남해로 흘러드는 크고 작은 강을 이루고 동쪽은 두만강에서 낙동강까지 동해와 남해로 흘러가는 강과 내를 이루게 됩니다.


예를 들어 백두대간 마루금에 있는 오대산 두로봉 정상에 떨어진 빗방울의 운명을 추적해 봅니다. 먼저 동쪽 사면으로 구르면 양양 남대천이 되어 연어들의 놀이터를 만든 후에 동해바다에 이릅니다. 그러나 북서쪽으로 구르면 계방천이 되고, 이어 인제 땅에서는 내린천이 되어 래프팅 보트를  받쳐주며, 인제로 가면서 소양강이 되고, 춘천에서는 북한강에 합해지며, 양수리에 이르러서는 한강이 되어 서해 바다에 이를 것입니다. 만일 남서쪽으로 구르면 오대천이 되어 정선여량에서 골지천을 만나 조양강이 되고, 영월로 가면서 동강, 영월부터는 서강과 합해서 남한강이 되며, 양수리에서는 북서쪽으로 떨어져 북한강으로 내려온 친구와 해후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오대산 두로봉에서 북한강 수계(水系)와 남한강 수계(水系)를 구분하는 ‘한강기맥’이 갈라져 나와 비로봉과 계방산을 거쳐 용문산과 유명산에 도달한 후 양수리에서 팔당호에 잠기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로 강원도 태백시 북서쪽의 금대봉정상에 떨어졌을 때는 북쪽으로 구르면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 들렀다가 골지천이 되어 여량에 도달하고 그 옛날 정선아리랑을 부르던 사공의 나룻배를 받쳐주고 나서는 조양강이 되며 소사나루를 지나 영월 땅에 들어서면 동강으로 바뀌고 이어서 남한강이 됩니다. 한편 남쪽으로 구르면 황지천이 되어 태백을 지나면서 수십여 전에는 자신의 깊은 속살을 후벼 팠던 탄광촌 광부들의 새까만 얼굴을 씻어주고 갈증을 풀어 준 다음 낙동강이 되어 남해 바다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렇듯 남한 쪽 백두대간 마루금에는 서쪽으로 임진강, 북한강, 남한강, 금강, 섬진강 동쪽으로 남대천, 낙동강, 황강, 남강 수계를 구분하는 많은 분수령들이 자리하고 있답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백두대간에는 삼도봉(1,177m)이라는 봉우리가 있는데 충북 영동군, 경북 김천시 그리고 전북 무주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어 정상석을 한 바퀴 돌면 수 초 만에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땅을 모두 밟을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삼도의 화합을 다지는 기념행사가 열리기도 합니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말이 있습니다. 출전은 논어 옹야편인데 원문은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동(知者動), 인자정(仁者靜) 부분입니다. 산과 물을 가까이 하는 이유는 자연이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휴식처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유산여독서(遊山如讀書)’라는 말도 있습니다. 퇴계 이황선생이 청나라의 문장가였던 기효람의 시(詩) 첫줄 독서여유산 촉목개가열(讀書如遊山 囑目皆可悅)에서 암시를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기효람은 ‘책을 읽는 것은 산을 노니는 것과 같아 눈길 닿는 것이 다 기쁨이다.’ 라고 노래했는데 퇴계선생은 한 차원 높여 산행 자체가 독서하는 것과 같아 수양의 한 방법으로 여겼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도산서원에서 낙동강 물줄기를 따라 몇 시간씩 걸어서 청량산에 도달한 후 산행을 하고 사색에 잠겼습니다. 아마 중종, 인종, 명종, 그리고 선조 초에 이르기 까지 어지러운 조정과 세상사에 대한 깊은 시름을 달랬을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등산을 한다고 얘기합니다. 그리고 아주 높은 산을 오를 때에는 산을 정복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산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인간은 마치 우리가 개미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정말 미미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산행’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합니다. 산행은 인생과 같아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합니다. 저는 산행하는 동안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마음을 열고 산과 대화하며 마냥 응석을 부립니다. 제가 쉬는 날이면 산은 저더러 어서 오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저는 기꺼이 그리고 고마운 마음으로 그 부름에 응합니다. 산은 후덕하고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며 우리를 있는 그대로 맞아 주고 감싸 줍니다. 우리 모두 되도록 자주 산과 골짜기의 크고 넓은 품에 안겨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맡겨보면 어떨런지요. 

  

이종오
전주 서울치과의원 원장

관련기사 PDF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