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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어떤 전시회와 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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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중 칼럼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어떤 전시회와 추상

  

피카소는 20대 중반까지, 청의 시대로부터 장미시대를 아우르는 6년간, 현기증 날만큼 다양한 작품세계를 보이면서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현실이라는 ‘환상"을 창조하고 표현하려면, 전통회화(繪畵) 수단인 ‘원근법과 명암·농담의 배합과 빛에 의한 침식" 이 셋을 버리고 사물을 개념화하는 과정을 거쳐야함을 깨달아, 큐비즘을 창시하는 데에 20년여 숙성기간을 필요로 하였다. 1925년 이후 몸통과 머리를 공식(公式)화 하여 이들이 토막 나고 분리되면서 이중(double) 이미지와 회화적 은유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상은 비평가의 안내로 들여다본 피카소 회화세계의 은밀한 속살, 아니 조금은 알 것 같은 그 일부다. 예술가에게 육체는, 눈과 손과 머리는, 신의 축복이다. 그러나 보는 이를 경탄케 하는 현란한 솜씨가 어느 ‘한계"에 이르면, 육체라는 축복은 스스로를 묶는 족쇄로 변한다. 그래서 마치 ‘유체이탈"처럼 육체를 벗어나 해방된 영혼의 눈으로 관조하는 경험을 갈구한다.


“소설은 변형된 자서전이요, 화가는 스스로를 그린다"는 말처럼, 꼭 제 키 만큼 더 높은 위치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체험. 바로 이런 시각에서 낯 설은 추상화, 난해한 현대시(詩), 불협화음 같은 현대음악이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는 작품이나 공연을 만나는 것보다 즐거운 일은 없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화가·작가·연주가와 동시대인으로 한 지역사회에 살고, 더더구나 알고지내는 사이라면, 그건 축복에 가깝다.


기대하는 한사람의 예인(藝人)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원숙한 대가(大家)로 진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더하기 때문이다. 이십 년 전 처음 접한 박선영 화가의 구상(具象)은 바위가 있고 물이 있는 풍경이었는데, 유화(oil)이면서도 수채화처럼 밝고 투명한 색조에 균형미를 갖추어 안정감을 주는 ‘마음에 드는" 그림이었다.


지난 6월 30일부터 대전 MBC 갤러리에서 개막한 박선영 제14회 개인전은, 화려하지 않으나 내용이 알차고 그동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전시회였다. 입구에 연대순으로 배치한 열세 번의 개인전 포스터는 그간의 진화과정을 맨몸으로 들어 내보임으로서, 자신의 추상세계에 대한 안내서 구실에 더하여, ‘염원"이라는 단일 주제로 인한 긴장감의 손실을 상쇄해준다. 전시장의 그림은 색조별로 배열했는데 그룹마다 형태적인 특징이 있어, 형상과 색조에 관한 화가의 실험정신이 전해온다.


사각형 주제의 동형반복은, 단순한 프랙톨의 전개가 아니라 사박자 모티프의 변주곡처럼 변화무쌍한 조합으로서, 감상객들의 상상력을 무한하게 자극한다. 색조에 맞추어 자유분방한 위치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그려 넣은 화가의 서명은, 상처를 내는 것(mar)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패션디자이너들이 가장 다루기 어려워하는 흑백 앙상블도 신선하다. 수묵화의 내공을 쌓은 동양의 화가들이 많이 시도하지만, 이처럼 자신 있게 꾹꾹 찍어낸 대담한 터치의 흑백은 찾아보기 힘들다. 역시 예술가의 진화(進化)는 결국 구상을 초월한 눈높이에서 만나는 것 같다. 그러나 박선영의 추상에서는 구상시절의 투명하고 밝은 색조와 균형미와 안정감이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진실한 불자(佛者)는 화두가 일생을 관통한다는 말과 일치하고, 박 화가가 대가로 가는 길에서 한걸음도 빗나가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더욱 끊임없는 정진을 기대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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