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기획
영리병원, 요람을 흔드는 ‘검은손’
무한 돈벌이 허용 “국민건강 위협”
게재순서
Ⅰ. 영리병원, ‘치킨게임’의 전주곡
Ⅱ. 개원가의 시선, 사회적 아젠다로의 확장(설문조사)
Ⅲ. 불법 네트워크 퇴출, 무엇이 관건인가?(좌담회)
Ⅳ. 영리법인과 불법 네트워크 치과에 대한 ‘영리’한 해법은?
2021년 9월 1일. 나반대 씨는 20여년간의 개원 생활을 접고 S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치과에 처음 출근하게 됐다.
‘이제 나반대 치과는 없어졌구나… 주변 치과들이 하나 둘 없어져도 나는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내 이름을 걸고 환자들의 신뢰와 존경을 받으면서 조그만 치과를 운영하던 때가 좋았어. 이제 나도 삯을 받는 고용인이 됐구나.’ 대기업을 등에 업은 기업형 네트워크 치과의 출현에 동네치과인 나반대 치과는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S모치과에 입사한 첫 날 나반대 씨는 S모치과의 운영 시스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S모치과는 S보험사에 가입한 환자만을 진료하고, 철저한 인센티브제도로 진료를 한 만큼 월급을 받을 수 있으며, 목표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디스인센티브도 적용하는 시스템이었다. S보험사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보험사로 고소득층이 주요 고객이다.
2011년 영리병원이 전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국내 보건의료체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및 대체형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됐고, 건강보험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폐지돼 계약제로 전환됐다.
민간보험사에 진료비 심사 권한이 넘어가버렸다. 환자들은 보험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근거로 상품에 가입해 의료기관을 선택하기 때문에 한마디로 환자와 민간보험사로부터 선택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나반대 씨의 후배인 정반대 씨도 1년 전 개인 치과를 접고 H기업이 대주주인 치과에 입사했다. 나반대 씨는 오래간만에 후배의 소식이 궁금해 정반대 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우울한 이야기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형, 나 오늘도 멀쩡한 어금니를 뽑았어. 환자가 공공의료 혜택도 못받고, 민간보험사에도 가입을 안했더라구. 이가 아프다면서 치료할 돈이 없다고 뽑아달라고 하는데…. 영리병원이 도입되면서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완전히 바뀌었어. 이렇게 바꿔놓을 줄은 몰랐는데…….”
“후배야 나도 괴로워. 어제는 진료량을 맞추기 위해 엔도 환자는 손도 못 댔어. 위에서 수익을 늘리라는 지시가 자꾸 들어오니까 나도 어쩔 수가 없어. 10여년 전에 영리병원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졌다는 것을 그때는 왜 깨닫지 못했을까…….”
<10·11면에 계속>
안정미 기자 jmahn@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