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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5번째) 새벽 2시

새벽 2시

  

새벽 2시, 눈을 떴다. 근심을 안고 잠든 날은 가끔 그렇듯이…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두 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본다. 젖살이 남아 있는 동그스럼한 얼굴, 꾸밈없는 표정, 부드럽고 규칙적인 숨소리, 낯익은 체취. 아빠 된 사람에게 딸들이 잠든 모습보다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게 있을까?


모든 고등생물이 그러하듯 인간도 반쪽 DNA 두 개가 만나서 하나가 된 후 복제를 거듭한 세포들의 집합체다. DNA는 Adenine, Guanine, Cytosine, Thymine이라는 네 가지 염기가 연결된 긴 끈이고, 네 가지 염기는 수소, 탄소, 산소, 질소 등의 원자가 결합해 만들어진 평범한 분자들 중 일부다.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가 몇 개씩 모인 작은 입자고, 양성자는 Up-quark 2개와 Down-quark 1개, 중성자는 Up-quark 1개와 Down-quark 2개가 모여 만들어진 더 작은 입자다. 전자와 quark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소립자이다. 결국 내 딸들도 몇 가지 소립자들이 규칙적으로 모인, 30kg 정도 되는 물질 덩어리에 불과한 것이다. 몇 가지 소립자들이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형태로 모여 있기 때문에 내가 내 딸들을 사랑하는 것일까?


137억년 전 無(무)1)에서 우주가 태어났다. 태어난 우주가 1조분의 1조분의 1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원자보다 작은 크기에서 우리 은하의 크기로 부풀어 오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 부른다. 그 직후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에너지가 소립자와 빛으로 바뀌어 우주는 고온의 작열상태인 빅뱅(Big bang)으로 변했다. 우주 탄생 1만분의 1초 후 양성자2)와 중성자가 만들어졌고, 그로부터 3분후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가 결합해 헬륨 원자핵3)이 만들어졌다. 우주탄생 38만년 후 전자와 원자핵이 결합해 수소4)와 헬륨5)원자가 만들어졌고, 그로부터 3억년 후 수소와 헬륨이 모여6)최초의 별7)들이 태어났다. 최초의 별 내부에서 수소와 헬륨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킴으로써 철8)과 그 보다 가벼운 원소가 만들어졌고, 핵융합 반응을 끝낸 별이 대폭발9)을 일으킴으로써 그 폭발력에 의해 철보다 무거운 나머지 원소들이 만들어져 우주공간으로 뿌려졌다. 이 별들의 잔해가 중력으로 다시 모여 우리가 사는 지구를 품고 있는 태양계가 탄생했다.10)


우리들의 몸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만물을 이루는 재료가 모두 폭발한 별들로부터 유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가 계산한 바에 의하면, 우주가 태어나 사라지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거쳐 빅뱅에 이르는 확률이 1천억의 123배분의 1이었다고 한다. 제로나 다름없다. 빅뱅 시기에 입자와 반입자11)가 파트너로 생겨났는데, 입자의 극히 일부가 쌍소멸12)을 면하고 살아남아 우주의 모든 물질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입자가 쌍소멸을 면하고 살아남을 확률 또한 거의 제로라고 한다. 우주공간이라는 황량한 곳에서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가진 행성이 만들어질 확률도 거의 제로라고 한다. 무기질만 존재하던 지구에서 유기물이 우연히 만들어지고, 그 유기물이 우연히 DNA가 되고13) DNA가 우연히 세포막 같은 다른 유기물로 들어가 세포가 되고, 그 세포가 지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존재로 진화할 확률도 거의 제로라고 한다. 제로나 다름없는 극히 작은 숫자를 적어도 수백 번 이상 제곱한, 극히 작은 확률을 이겨내고 나와 딸들이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실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와 딸들이 그토록 작은 확률을 극복했기 때문에 내가 딸들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또, 몇 가지 소립자들이 내가 좋아하는 형태로 모였기 때문에 내가 딸들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알 수 없는, 그러나 틀림없이 존재하는 ‘어떤 것’이 나와 딸들 사이에 존재한다. 석가모니가 ‘인연’이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에 이름을 붙일 필요도, 그것이 무엇인지 꼭 알 필요도 없다. ‘그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분명하게 알고, 잊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세상살이 근심에 당당히 맞설 수 있으리라.


조준현
성남 코스모스치과의원 원장


1) 여기에서 말하는 無(무)는 ‘물질이 없음’은 물론 ‘공간과 시간도 없음’을 가리킨다. 2) 수소의 원자핵. 3) 2개의 양성자와 2개의 중성자가 핵융합 반응으로 뭉쳐진 입자. 4) H, 원자번호 1. 5) He, 원자번호 2. 6) 분자와 분자들(수소, 헬륨)사이의 인력, 즉 중력 때문에. 7) First star, 제 1세대의 항성으로 태양보다 질량이 수십 배 컸다고 한다. 8) Fe, 원자번호 26, 철은 매우 안정된 원소이기 때문에 항성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철보다 원자번호가 큰 원소는 항성내부에서 만들어 지지 않는다. 9) Supernova, 초신성, 태양보다 20배 이상 무거운 항성이 핵융합 반응을 완료한 후(철을 합성한 후) 일으키는 대폭발. 항성 하나가 폭발하여 내는 빛이 수십억 개의 별이 모여 있는 은하가 내는 빛보다 강하다. 이 대폭발 에너지가 철 원자들을 충돌 합체시켜 철보다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10) 태양은 3~4세대 항성이라고 한다. 11) 입자와 전하의 음양만 다르고 그 밖의 성질은 같은 입자. 전자의 반입자는 양전자이다. 반입자로 만들어진 물질을 반물질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인 물질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반조준현도 조준현인 것이다. 그러나 둘이 악수하면 대폭발을 일으키고 사라질 것이다(쌍소멸). 12) 입자와 반입자가 충돌하면 아인슈타인의 공식(E=mC²)에 따른 에너지를 방출하고 사라진다. 이것을 쌍소멸이라 한다. 13)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2011년 8월 19일 “운석 속에서 생명체를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유전성분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즉 태양보다 전 세대의 Solar System이나, 아주 멀지는 않은 우주공간 어느 곳에 생물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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