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속 도시락
1990년대 초반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30살이 갓 넘은 젊은 시절, 모교의 강단에서 구강보건교육학을 가르치던 어느 날이었다. 강의 중에 앞문을 씩씩하게 열고(그 강의실은 뒷문이 없는 강의실이었다) 용기 있게 들어서는 아이가 있었다. 멜빵이 달린 청바지를 입고 짧은 커트에 유난히 눈이 예쁘고 수줍은 듯 하면서도 당당함이 매력적인 아이였다.
그렇게 만난 아이가 20년을 건너온 세월 속에서도 아직도 내 옆에 있다.
부안으로 강의 가는 길. 전북지역 보건소 치과위생사들이 “나는 잘해요” 프로그램을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있었다. 혼자서 진행 하려면 4개의 차시를 담당해야 하는지라 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다들 바쁜걸 알면서 연구진들에게 동행을 요청하기도 미안하여(나이 들면서 변한 것이 나보다 남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혼자 율동도 연습하고 시연도 해야 하나 고민 했는데 4차시 중 두 차시를 맡겠다며 자청하여 길을 동행 해준 제자의 마음이 고마웠다.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한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여 긴 시간 집을 비우기 힘들었을텐데….
지난번 대구에 이어 부안으로의 먼 길 동행이 고맙기도 하고 지난 20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항상 곁에서 내가 하는 모든 일 옆에서 그림자처럼 함께 해준 제자에게 딱히 해준 것도 없이 보낸 시간인거 같아 미안한 마음에 아침에 딸아이 도시락을 싸면서 서둘러 집에서 나왔을 제자에게 따듯한 밥 한 끼를 먹이기로 했다. 요즈음 집에서 현미밥을 먹는지라 거친 현미 밥이 입에 맞지 않으면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 햇반을 데워 식지 않게 법랑 도시락에 담고 홍합 미역국도 끓여 보온 통에 넣고. 조개 넣은 부추전도 조갯살을 골라 많이 넣어 부쳤다. 바쁜 일과 속에 긴 시간의 투자를 요하는 김치를 담근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짧은 시간을 투자해 담근 김치의 맛이 오죽하겠냐 마는 그래도 집에서 한 것이 최고라 생각하고 깍두기도 통에 담았다. 고 3 아들이 먹고 싶다 하여 만든 잡채도 고기와 버섯을 골라가며 넉넉히 담고 보니 벌써 마음이 설레인다.
아침 일찍 아파트 아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혹여 깜짝 도시락이 보일까 위를 잘 덮고 주차장에 도착하니 가을 햇살 속에 제자가 환하게 웃으며 기다린다.
오늘은 항상 받기만 한 내가 제자에게 뭔가를 해 준다 생각하고 운전을 자청하니 계속 불편해 한다. 사람 마음은 같은가 보다. 제자가 쇼핑백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호두과자와 커피 그리고 고구마를 권한다. 저녁에 쪄두면 식을까봐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챙기면서 쪘나보다. 속으로 ‘어? 아침 먹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거절하지?" 고민하다, “난 식은 고구마 좋아하니 이따 먹을게”라고 옹색한 변명을 했다.
한참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니 서해안 고속도로 진입을 놓쳤다.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정안 휴게소에 도착, 잠시 쉬었다 가자며 주차선도 없는 풀밭 가까이에 차를 주차 시켰다. 다른 부분은 그리 깔끔하지 않으면서 평상시 이상하게 사회적 원칙이라고 정해놓은 약속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잘 못하는 성격인 내가 ‘아점’을 위해 과감한 시도를 했다.
쇼핑백을 챙겨 내리는 나를 의아해 하는 제자에게 따라오라 하고 휴게소 작은 공원 벤치에 자리 잡고 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좋지도 않은 도시락에 제자는 감사와 고마움을 표했고 난 더욱 미안해져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횡설수설하였다.
맛난(?) 식사를 끝내고 도시락을 정리하려고 보니 음식들이 조금씩 남았다, 제자는 “교수님 더 먹을거예요”라며 모든 그릇을 비운다. 평소 제자의 식사량을 알고 그릇 비우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아는지라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 아이가 도시락을 준비한 이의 마음을 배려하기 위해 남은 음식을 다 먹는 40살이 되었다, 머리 숙여 도시락을 먹은 아이의 머리 위에 부서지는 햇살 속 흰 머리칼이 서럽기도 하다.
내 마음이 이렇게 서러운데 그 놈도 이글을 읽을 때 마음이 그러할까?
그래도 인생 살아가면서 도시락 싸 주고픈 사람이 있고 또 그 도시락에 담긴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 있으니, 인생 그리 서럽게 산 것은 아닌가 싶다.
황윤숙
한양여대 치위생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