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 유럽의 오페라 문화에서 탄생된 유령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고스포드 파크’에서 보여지는 귀족의 이미지로 무대 전체를 강렬하게 압도한다.
얼마 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을 관람하였다.
가스통 르루의 원작 소설을 ‘캐츠’,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의 작곡가인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재창조해 낸 작품으로 젊고 아름다운 여가수가 미스터리한 유령에게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받는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목소리를 닮은 크리스틴 역의 이혜경도 인상적이었지만, 팬텀(유령)역의 윤영석은 크리스틴에 대한 사랑의 갈구로 인하여 고통받는,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여러 나라에서 팬텀 역의 배우를 구할 때 카리스마를 지닌 뛰어난 지원자가 그야말로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나서 배역을 맡아 화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그나저나 오페라에서의 유령이라니-. 우리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유령임에는 틀림없다.
우리에게 유령이나 귀신은 한이 맺혀 떠도는 원혼으로 먼저 생각되고, 어릴 적부터 들어 온 달걀 귀신, 처녀 귀신 이야기부터 어디선가 벌이는 굿판의 북과 꽹과리 소리에 깃들인 귀신의 기억까지 온통 스산함을 동반한 기억이 많다.
우리 민족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판소리에서의 유령이 있었나? 떠올려보려 하지만 별반 기억이 없다.
유령의 이미지에서도 현저히 다른 문화적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김형경의 장편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에서 주인공 세진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간 법사에게서 일종의 굿판을 벌인다.
법사는 세진의 몸 속에 스물 여섯 나이에 물에 빠져 죽은 귀신이 숨어들었다고 전한다. 한이 맺혀 있어 섬뜩한 귀신의 이야기가 또 독자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에게도 우아하고 세련된 유령은 없을까. 유령이나 귀신도 각 민족의 역사 속에서 모습이나 성격이 형성되어 그 나라 고유의 이미지로 토착화되는 것 같다.
우울한 역사를 지닌 민족에게는 우울한 유령이, 밝고 낙천적인 민족에게는 또 그런 이미지를 담은 유령이 나타나지 않을까.
물론 서양이라고 다 우아한 유령만 있지는 않다. 최근 개봉된 ‘13 고스트’에는 별의별 무시무시하게 생긴 귀신들이 ‘매트릭스’를 만든 특수효과 팀의 노하우를 빌어서 3차원 영상으로 사람들을 무섭게 만든다(또는 웃긴다!).
‘할로윈 파티’에 입는 미국 아이들의 옷과 가면을 보면 공포를 자아내기 위해 애를 썼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그러나 오랜 전통을 배경으로 하는 유럽의 오페라 문화에서 탄생된 유령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고스포드 파크’에서 보여지는 귀족의 이미지로 무대 전체를 강렬하게 압도한다.
우리에게도 이제 이런 종류의 다소 우아한 유령을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문화가 싹트고 있는 듯이 보인다.
사업을 하고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하여 번 돈을 세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캐츠’나 ‘미스 사이공’, ‘레 미제라블’의 국내 공연을 자연스럽게 기다리는 분위기가 된다면 우리 자녀들 세대에 회자되거나 기록되는 유령은 선조들의 한을 벗어나 좀 더 세련되고 멋있는(?) 이미지로 변하지 않을까. (orthodani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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