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실이와의 이별
어느날 병원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니 발로 툭 차기도 힘들 정도로 아주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현관에서 마냥 꼬리를 흔들어 대며 나를 반기고 있었다.
놀라 자세히 들여다 보니 황금색 곱슬털을 한 조막만한 강아지가 내 발길마다 따라 붙으며 연실 꼬리를 흔들어 대며 아양을 떠는게 아닌가.
왜 상의도 없이 일을 저질렀냐고 아내에게 화를 좀 내려는데 볼수록 강아지의 모양새가 하도 귀여워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화가 사라져 버렸다.
강아지를 무척 키우고 싶어했던 아내는 여태껏 내 눈치를 살피다가 아이들이 많이 커 버리자 옆구리가 몹시 허전했던지 나와 상의도 없이 강아지 한 마리를 덜컥 데려온 것이었다.
이렇게 2001년 12월 17일 콩실이와의 첫 만남은 시작되었다.
콩실이라는 이름은 원래 우리 둘째딸의 아명이었는데 그 작고 앙증맞은 강아지는 그 이름에 딱 어울리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콩실이는 프랑스 귀족들이 앞다투어 길렀다는 비숑쁘리제종이었는데 보통은 흰색털을 지녔으나 콩실이는 특이한 금발색깔의 털을 지니고 있어 더더욱 용모가 뛰어나 보였다.
어느덧 아내와 나는 콩실이를 열심히 보살피게 되었는데 애완견을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해 오던 나도 집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는 콩실이의 재롱에 빠져 어느새 콩실이를 아끼게 되었다.
아내가 콩실이를 목욕시키면 나는 욕실문 앞에서 타월을 들고 기다리기 일쑤였고 함께 마치 아기를 기르 듯 조심스레 콩실이를 길렀다.
돌이켜 보면 콩실이와 함께한 10년이란 세월은 늘 기쁨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함께 산책할때도 목줄이 필요 없을 만큼 순종하며 곁에 머물러 주었고 사람들이나 다른 강아지한테도 함부로 짖지 않았으며 늘 모든 사람에게 공손하고 애교스런 강아지였다.
함께 산책할때면 늘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인기 짱인 강아지가 콩실이였다.
두 딸들은 말하곤 했다. 집에 오면 늘 반겨주는 콩실이가 있어 그 힘들다는 고3 수험생활도 힘든 줄 모르고 지나 갔다고 말이다.
구 회장부터 협회 총무이사로 이어지는 7~8년의 세월동안 회무로 새벽귀가가 다반사였고 그럴때마다 콩실이는 한번도 빠짐없이 현관에서 날 맞아 주었고 만취해 들어가 소파에 쓰러지면 내 옆은 언제나 콩실이가 지켜 주었다.
조찬회의 참석차 새벽에 집을 나서는 무수한 날들 모두 콩실이는 나를 배웅해 주었다.
바쁜 회무가 없는 휴일이면 콩실이를 데리고 나가는 산책길이 어느덧 내겐 더 없이 즐겁고 행복한 길이 되었다.
콩실이의 치아 스케일링을 위해 동물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는데 수의사는 콩실이가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고 하는게 아닌가. 우리 가족은 앞으로 펼쳐 질 콩실이와의 미래를 생각하며 행복해 했다. 그러나 그 말이 우리를 방심케 했는지 얼마전 콩실이가 평소와는 달리 우울해 보인다는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바빠 두주간 산책을 빼 먹어 그런가 하고 콩실이를 데리고 산책길에 나섰다. 그런데 그리 잘 뛰던 콩실이가 잘 뛰지도 않고 숨쉬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게 아닌가.
그 길로 서둘러 동물병원에 가서 가슴 엑스선 사진을 찍어보니 폐에 작은 종양이 가득했고 얼마 살지 못할거라는 청천벽력같은 진단을 받았다.
아내는 말문이 막혀 수의사 선생님과 상담도 못한 채 콩실이를 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렇다면 우리 콩실이가 그동안 많이 아팠을텐데 내색도 안했구나. 우리 불쌍한 콩실이를 어쩌나 얼마나 아팠겠니? 이 무심한 엄마를 용서해줘. 건강 검진을 빨리 해줄 걸 이렇게 되다니 미안하다 콩실아. 엄마가 정말 미안해"하면서 계속 울기만 했다.
다음날 한 줄기 희망을 가지고 더 큰 종합동물병원에 입원시켜 정밀진단을 받아보니 폐와 간 비장에 종양이 가득했고 길어야 두어달 살 것이라는 비극적인 얘기를 들어야 했다. 집에 데려와 두달 후의 이별에 맞추어 좀더 편안하게 콩실이를 간호하려고 눈물을 흘리며 이런저런 준비를 했다. 그러나 콩실이는 예상과 달리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일 주일만에 아내의 품에서 죽고 말았다 그리도 좋아하던 가족들을 뒤로한 채 말이다.
애견 장례식장에서 콩실이를 떠나 보내고 아내와 딸은 아픈 이별을 견뎌 내기가 너무 힘들다며 몇날 몇일을 눈물로 지샜다.
아내의 슬픔을 지켜 보면서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이 이토록 가슴아프고 마음을 저미는 일인가 절절히 생각해 보게 되었고 이것이 우리의 인생인가 생각해 보았다.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은 모든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횟수가 많아짐을 의미한다. 어쩌면 삶이란 이별의 연속이고 이별을 견디어 내며 사는 것이 삶의 일부이며 삶이란 만나고 헤어지며 또 헤어지고 만나는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섭리인 것을 우리는 잊고 살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며 옷깃을 다시 세우게 되었다.
나에게는 누구에게나 생기는 불행이 절대 닥치지 않을거라는 은사망상에 사로잡혀 살고 있지는 않는지 새삼 겸허한 마음을 추스려 보았다.
콩실이와의 이별에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의 아픔이 얼마나 참기 어렵고 고통스러운지 알게 되었고 또 그것마저 극복하고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이며 기쁨과 행복 그리고 이별의 고통과 슬픔을 극복하는 것이 삶 전체를 관통한 인생의 마디마디가 아닌가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내에게 시간이 슬픔을 가져 갈 것이라고…좋은 기억만 영원히 남겨 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렇다. 시간은 슬픔과 고통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쓸어 갈 것이다.
주님께 콩실이의 명복을 빌며 혼자 중얼거려 본다 “콩실아 잘 가렴. 너와 지낸 10년동안 아빠, 엄마, 단비 누나, 재은이 누나 충분히 기쁘고 행복했다고… 콩실이 너는 영원히 우리 가족의 연리지로 남아 있을거라고…."
유석천
유석천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