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방사선 검사
수학은 치과의사들에게 그리 친숙한 학문은 아니다. 영국의 수학자 케이쓰 데브린(Keith Devlin)은 The math gene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에게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수학에 대한 유전자가 누구나 있으며 그 수학의 유전자 때문에 두 개의 동떨어진 사건을 시물레이션을 통해서 연결하고 그 두 개의 사건 사이에 어떤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하면 시간의 전후관계를 근거로 먼저 일어난 사건이 원인이 되서 나중에 일어난 사건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고 결정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현상에는 원인결과 관계 외에도 무작위에 의해서 우연히 두 사건이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쉽게도 많지 않다. 모든 관찰은 단지 가설만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가설은 혹독한 테스트(검증)를 통해서만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까지는 우리의 선천적인 유전자속에는 들어있지 않고 후천적인 학습을 통해서만 그 능력을 습득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초등학교 교육의 패러다임은 과거에는 읽고 쓰고 계산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었으나 현재는 읽고 쓰고 가설을 검증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며, 선천적인 가설의 제조능력만 갖춘 사람들이 환자로 진료실에 구환으로 찾아올 때 치과의사들은 매우 당혹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스켈링을 한 환자가 다음날 내원하여 구내염이 발병했는데 스케일링을 받고 나서 구내염이 생겼으므로 스케일링을 먼저 했으니까 그게 원인이고 구내염이 나중에 생겼으니까 그게 결과라는 가설을 확실한 검증된 사실처럼 주장할 때 치과의사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 당황하게 된다. 환자와 치과의사간의 많은 분쟁은 수학유전자를 통해서 환자들이 만든 가설과 치과의사들이 학습을 통해 가지고 있는 검증된 지식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나가는가에 따라서 해결될 수 도 있을 것이다.
환자가 주장하는 가설의 비과학적인 측면을 냉철하게 그리고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환자가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을 이해해주고 감정적으로 공감해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환자의 가설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주고 나서 취하는 후처치가 되어야 분쟁을 원만히 해결할 수 있고, 특히 치과의사들은 환자들이 가지고 오는 가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분쟁의 많은 부분을 합리적으로 아쉽지 않고 억울하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바스 피터슨(Ivars Peterson)은 그의 저서 무작위의 정글(The jungles of randomness)에서 패턴을 다루는 수학과 통계학을 통해 우리가 속해 있는 세상에서 무작위(randomness)에 의해서 우연히 발생하는 우연의 일치 현상과 원인결과의 현상에 대하여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면서, 수학과 통계학의 역할을 수학방사선검사(mathematical x-ray)라고 비유하고 있다. 그의 저서를 읽고 난 후에, 치과의사들이 환자들의 질병을 감별진단하는데 필수적인 방사선검사를 유용하게 잘 사용하는 것처럼, 환자들의 가설을 감별진단하는데 필요한 것은 수학방사선검사라고 수평적 사고를 확대하니 흥미롭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내가 경험하기도 하고 내가 듣기도 하는 치과의사와 환자들간의 분쟁의 원인을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기도 하며 그 분쟁을 해결하는데 매우 도움이 되는 필수적인 장비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수학방사선검사는 예산을 세워 장비를 구입해야 할 필요도 없고 설치 후에 보건소나 심사평가원에 신고를 해야 하는 번거로운 행정적인 절차도 필요없다. 원장실 책상 위 한쪽에 가설의 검증에 대한 책들을 비치해두고 틈틈이 읽고 동료들과 토론을 통해 조금씩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환자들이 의료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의 변화에 대하여 아무런 대책없이 불안감만 키울 것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학문에서 그 해답을 찾는 융합학문이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면 우리도 수학 즉 수학방사선검사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최용근
고려대 임상치의학대학원 통계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