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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4번째) 나의 모짜르트 음악 10선 (상)

나의 모짜르트 음악 10선 (상)
(2011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최고경영자과정 우수논문상 수여작)


1. 모짜르트를 통해서 천재의 머리 속을 엿보다
노벨상을 받은 천재과학자들의 연구나 필즈상을 받은 수학자의 이론을 우리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인 E=mc2 조차도 일반인들은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채널을 통하면 평범한 사람들도 천재들의 작품을 통해서 소통할 수 있을 것 같다. 모짜르트를 특히 좋아하는 나는 몇 년전 모짜르트가 5세때 작곡한 퀘휄번호 1번 <피아노를 위한 안단테>로부터 35세때 작곡한 퀘휄 626번 <라퀴엠> 까지 전곡을 한 CD점에 부탁해 구입한 적이 있다. CD를 쌓아놓으면 약 2m 정도가 되는 분량이었다. 구입하고 나서 처음에는 그 반이 미사곡과 오페라인 것을 알고는 크게 후회했다. 하지만 한번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희귀 오페라를 들어 보고 나서는 후회가 감사로 바뀌게 되었다. 난생 처음 들어 보는 모짜르트의 희귀 음악조차도 하나같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35년 밖에 안 되는 모짜르트의 삶 (Jan 27th1756~Dec5th1791)중에 이렇게 방대하고도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쓴 것을 보면 분명히 그는 천재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 음악을 들으면서 어느 순간 나는 모짜르트라는 천재의 머리 속을 힐끗 엿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2. 일상과도 같이 끝도 없이 반복되는 모짜르트의 ‘지가지가지가’의 음율
모짜르트는 비슷한 음율을 괄호가 들어 간 수학공식처럼 만들어 놓고 그 괄호 안을 조금씩 변형해서 다른 곡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급조한 곡들은 모짜르트가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시절에 써먹었던 명품 모짜르트의 바겐세일 행사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지가지가지가’하며 끝도 없이 반복되는 모짜르트의 음율은 우리의 일상일 수도 있고, 우리의 심장의 고동일 수도 있고 매일매일 떠오르는 오만가지 생각의 편린일 수도 있다. 뒤에 소개할 교향곡의 대표적인 40번 1악장에서는 ‘지가지가지가’ 하며 내뿜는 바이올린을 배경으로 같은 주제를 수도 없이 관악기와 현악기가 주고 받는다. 일상과도 같이, 심장 고동소리와도 같이…… 아마 이렇게 수없이 반복된 모짜르트의 음율이 귓전에 계속 맴돌게 되고, 그래서 더욱 모짜르트의 음악이 중독성이 강한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각도에서 모짜르트의 반복본능을 소개하려 한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2막의 마지막 아리아 중창을 소개하는 대목을 영화의 대본 그대로 소개한다. 발동이 걸리면 그 방향으로 끝도 없이 질주하는 모짜르트의 지독히도 끈질긴 집착을 느껴 보기 바란다.
모짜르트 : 정말 관중들이 열광하게 될 겁니다. 2막을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부부가 싸우는 단순 2중창으로 시작하다가, 갑자기 하녀가 끼어들면서 우스꽝스런 장면으로 바뀝니다. 2중창은 3중창으로, 시종이 끼어들면서 4중창으로 바뀌죠. 정원사가 나타나 5중창 계속해서 6중창, 7중창. 이러한  반복이 얼마나 오랜 시간 계속될 것 같습니까, 폐하?
황제 : 글쎄
모짜르트 :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일반적인 시간에 두 배를 해보세요
황제 : 6분? (모짜르트가 더 쓰라고 손짓한다)
황제 : 7분… 8분?
모짜르트 : 20분입니다, 폐하! 레시터티브없이 음악이 20분이나 계속되는 것은 오직 오페라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3. 삶의 중심으로 옮겨오고 있는 예술
처음으로 비디오 아트를 한 점 구입하고 내 친구와 아내가 간접적인 설전을 한 적이 있다. 아내는 그 돈으로 아프리카의 아이들, 수백 명을 굶주림에서 구출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 말을 전해들은 미대교수 친구가 예술도 빵만큼 중요하다고 반론하면서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매개체로 한 가벼운 논쟁이 있었다. 분명히 전공으로 미술을 하고 있는 프로페셔널 예술인인 친구에게는 문화가 빵과 동등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인은 어떤가. 영화 ‘Moonstruck’을 보면 니콜라스 케이지가 역을 맡은, 베이커리에서 화로에 밀가루 반죽을 넣는 일을 하는 이 장애인 청년은 1년 내내 열악한 환경에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가 어느 날 턱시도를 입고 여주인공과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 (La Boheme)을 보러 간다. 이 영화 안에서는 이 한번의 ‘문화체험’이 몇 년간의 노동만큼의 값어치가 있게 묘사를 했다. 또 다른 예로 어렸을 때에 읽었던 벨기에의 동화 ‘플란다스의 개’에서 소년이 파트라슈를 껴안고 숨을 거둘 때에도 소원이었던 루벤스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미소를 짓는다. 어떤 때에는 단 한번의 문화체험이 매일매일의 빵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유명한 일본의 수학자인 Heisuke Hironaka는 필즈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라고 했다. 화가 모딜리아니는 말년의 고통 속에서도 “창조적인 인간은 결코 완전히 불행하게 되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아마 이 ‘크리에이티브함’ 속에 어떤 빵과도 같은 에네르기가 있을지 모르겠다. 삼풍백화점 붕과사건때 가장 오래 버티다가 생환된 사람이 암흑 속에서 손에 잡힌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하루종일 놀았다라고 인터뷰한 것을 기억한다. 분명 그는 나름대로 다양한 크리에이티브한 방법으로 손에 잡힌 그 물체를 꽉 잡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면서 촉각을 즐겼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더 이상 빵만을 위해 살지 못한다. 또한, 소수의 신념이 강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념을 위해 살 수도 없다. 현대에 있어서 예술·문화는 빵과도 같은 것이다. 얼마 전 ‘빵으로서의 문화’란 에세이를 쓴 적이 있다. 우리는 이미 예술이 삶의 중심으로 옮겨오는 21세기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백철호

새이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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