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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3번째) 대믈리에의 축재(蓄財) (하)

대믈리에의 축재(蓄財) (하)


다른 아이들은 딱지치기, 다마(玉 구슬)치기를 해서 나름대로 부를 축적하는 방법을 배웠다. 난 딱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딱지는 집에 있는 종이로 얼마든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돈을 마구 마구 찍어대는 나라의 화폐는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구슬은 좀 갖고 싶었으나 사고 싶진 않았다. 더구나 내기를 해서 구슬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집에 딱지나 구슬을 쌓아 놓고 뻐기고 있어도 그다지 부러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어쨌든 보고 싶은 만화도 안보고 먹고 싶은 과자도 참아내고 하기 싫은 아르바이트도 견뎌 내며 모은 돈이 그 때 돈으로 거금 2만원. 이제 부피가 커져 더 이상 그 돈을 저장할 공간도 없고 도난의 우려도 커져 몇날 몇밤을 고민하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말씀드려 땅을 좀 사달라 할까? 아니면 주식을 좀 사 놓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찾아간 곳이 앞집 상업은행이었다. 그리고 지점장의 환대 속에 VIP룸에 들어가 정기 예금을 하고… 라는 것은 여러분이 이미 짐작하신대로 뻥이다.
그 대신 나는 엄마와 상의를 했다.
“엄마, 내가 아무도 몰래 돈을 좀 모아 두었는데…?"
“몰래라니? 우리 식구 모두 다 알고 있었는데…."
“헐!"
“그래, 그 돈 가지고 뭐 할거니?"
“글쎄… 어떻게 할까?"
“네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게 뭐지? 그걸 하면 되겠네."
“내가 가장 하고 싶은거? 지금? 음… 학교에 들어 가는 거지!"
난 사실 그때 정말이지 몹시 학교에 가고 싶었다.
어느 정도 가고 싶었나하면 주사 맞는 것을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 했던 내가 “예방 주사를 맞는 아이만이 학교에 갈 수 있다"라는 엄마의 꾐에 빠져 스스로 병원에 다녀 올 만큼 학교 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결국 그 돈을 학교 갈 채비에 썼다. 두번째 꾐에 빠졌다.
대전 중앙시장으로 엄마와 함께 가서 뭐든지 제일 좋아 보이는 놈으로 학용품을 샀다.
하나하나 따져 보자면,
우윳빛 가방 : 반짝 반짝 빛이 반사되는 등에 매는 가방으로 뒷쪽으로 덮개가 달려 있다. 덮개 밑 양쪽으로 잠금 장치가 달려 있고 중앙에는 이름표를 넣을수 있는 투명 비닐 주머니가 있다.
교복: 검정 교복이다. 두벌을 샀다. 왜냐면 나는 부자였기 때문이다. 끝이 둥글고 하얀 컬러를 목 주위에 달게끔 디자인 되어 있었다. 윗도리는 긴 소매였으나 아랫도리는 반바지였다. 양복점인지 교복 센터인지는 자세히 기억되지 않지만 상점은 시장이 아닌 학교 가는 길에 있었다. 교복 왼쪽 가슴 부위에는 주머니가 달렸고 예의 그 손수건을 매달았다. 손수건의 용도는 물론 흘러내리는 콧물을 닦기 위함이다. 그럼 콧수건이라고 해야 하나?
이비인후과 의사인 박일동 원장의 이야기로는 “그 당시 아이들은 치료가 제때 되지 않아 그런 누런 콧물을 흘리고 다녔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콧수건을 써먹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스타킹: stalking도 아니고 그렇다고 star king도 아닌 stocking을 말한다. 하얀색이었다.
초록색 운동화: 신발 가게에는 검정색, 흰색, 청색 운동화도 있었지만 제일 눈에 띄는 놈은 초록색이었다. 아마도 여자 신발이었겠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 때부터 난 녹색을 좋아하기로 맘 먹었다. 지금 그린치과를 운영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필통, 연필, 크레용이 아닌 크레파스, 칼 등등.
그 외 학용품 일체.
그 모든 것을 엄마랑 고르러 다니는데 그렇게 신날수가 없었다. 돈을 원없이 써 보는게 그렇게 신나는 건지 그 때 처음 알았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나 보다.
사족(蛇足)-하지만 당시 쇼핑후 내 돈이 얼마가 남았는지 아니면 돈이 모자라서 엄마가 더 보탰는지 지금은 알 길이 없다. 불과 몇년 전까지도 그 일을 기억하시던 어머니가 지금은 더 이상 되살릴 수 없으시단다. 이제 온 지구상에서 나 혼자만이 간직한 가슴 짠한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이후로는 아무것도 모으지 않는다.앤티크 코크 스크류(Antique Corkscrews)를 제외하고는. 아니 고백하자면 사실상 모을 여유도 이유도 없다. Die Broke.!

  

박정용

(필명 대믈리에)

그린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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