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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6번째) 회복의 날을 기대하며

Relay Essay
제1726번째


회복의 날을 기대하며


십 수년 전 40대 초반 무렵, 후배들과 함께 미국치과의사 면허에 도전해 본 일이 있었다. 다소 늦은 나이의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도덕적 사회에서 존중 받으며 양심적인 진료를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 컸던 것 같았다. 학부 때 이후로 덮어두었던 기초의학서적을 뒤적이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처음 접해보는 의료윤리학과 관련된 시험과목은 나에겐 충격이었다. 어찌어찌 문제와 답만 암기해서 통과하긴 했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직업윤리를 지켜나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 지 알게 되었다. 도덕적 사회를 이뤄나가기 위해 학부에서부터 윤리적 이슈들을 토론하고 합당한 결정들을 서로 생각하게 하여 자신의 이익과 상충될 때조차도 용기를 내어 윤리적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많은 훈련을 시킨다는 것을 알았다. 그 사회와 선배들은 후학들에게 윤리라는 큰길을 만들어주고 그리로 가도록 권하며 동시에 그 길을 벗어나 사회와 이웃에게 해를 끼칠 경우 법이라는 가드레일을 만들어 엄하게 처벌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두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사회로 진출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런 일이지만 잘 익은 과실을 향해 담장 너머로 손을 내미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속한 사회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나는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공부했던 후배들과 치과의료윤리학 서적들을 구하여 한동안 스터디 모임을 했었던 것으로 그 도전을 마감했다. 의료윤리 스터디 모임은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것을 기점으로 내 탐구생활은 시작되었다. 치과의료윤리는 생명의 시작이나 끝의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는 생명윤리(bioethics)가 아닌 전문인 직업윤리(professional ethics)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아가 윤리란 개인과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세계관의 반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세계관은 신학이라는 기초학문의 응용학문이라는 사실도 공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러한 탐구를 하는 10여 년의 시간 동안 의약분업 사태를 시작으로 의료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의료인의 신뢰도는 점점 곤두박질 쳐갔다. 성급하게 의학전문대학원제도가 도입될 때 직감적으로 의료윤리교육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상업주의의 파도가 후배들의 조바심을 자극할게 자명해 보였고 그들이 졸업할 즈음이면 어떤 문제들이 드러날지 염려스러웠다. 하지만 나 스스로 후배들에게 제시할 만한 롤 모델도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러한 예상되는 문제들을 제기하기에도 역량이 부족했다. 그 사이 핸드피스 소독과 감염문제, 과잉 진료의 문제 등이 대두되며 각종의 바람직하지 못한 문제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이러한 이슈들이 들어날 때 마다 사회공동체는 우리에게 우리의 직업 윤리는 건강하냐고 의심 어린 질문을 던졌다. 특이한 것은 이러한 이슈들에 대하여 치과의사들이 대답을 미루는 사이, 우리를 돕는 직업군 즉, 치과위생사, 치과기공사, 재료상들의 눈과 귀를 통해서 질문이 제기되고 우리가 미뤄둔 문제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우리를 돕는 다양한 직업군과 함께 치과공동체를 이루며 우리의 모집단인 사회공동체를 섬길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요구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휘자로서 바른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연주자가 잘된 연주 앞에 자기에게 박수를 요구하거나 잘못된 연주의 책임을 단원에게 미루겠는가? 사회공동체의 책임 추궁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와 같은 길을 가는 직업군 구성원을 격려하고 존중하며 함께 업무를 수행하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이러한 생각과 뜻을 함께하는 신앙인 치과의사 선후배들과 얼마 전부터 기독치과의사회웹진(www.dentalcross.org)을 통해 이런 생각을 공유해가고 있다. 나아가 존중과 섬김의 치과공동체를 통하여 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좋은 치과 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싶다는 비전이 요즘 나를 자극하고 있다. 존중 받으며 예의와 품위로 대해주기를 바라는 치과위생사, 치과기공사, 재료상들과 더불어 정직하고 일관성 있게 환자를 대할 뿐 아니라 환자들의 고통과 불편을 이용하지 않고 문제들을 해결해줘 속히 자기의 사회 역할로 복귀 시켜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으로 치과를 운영하기를 바라는 후배들이 많이 생겨날 그날을 생각하면 부담감과 함께 여린 흥분이 나를 감싼다.

  

이철규
이철규이대경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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