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6 (월)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제1736번째) 친구 아들

Relay Essay
제1736번째


친구 아들


“아빠 또 보고 오면 저도 좋아요.”


작년 여름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투병기간 동안 가끔 전화로 위로와 추억을 주고 받았지만, 막상 친구의 소천 소식에는 그저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불과 넉 달 전 나의 둘째 딸 결혼식에 불편한 몸으로 애써 참석해 축하해 주던 모습이 흐르는 눈물에 희미해질 뿐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었다.


금년 3월 휴일에 미루던 숙제인 친구 묘소에 다녀왔다. 정확한 묘소 위치를 몰라서 친구의 아들과 연락을 주고받던 중 “폐를 끼치고 싶지 않으니 묘소 위치와 번호만 알려주면 찾아 가겠다”고 해도 굳이 자기가 묘소를 안내하겠다고 하면서 보낸 문자가 앞에 있는 글이다.


친구는 양지 바른 언덕에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과 큰 형님 발치에서 편안히 쉬고 있었다.


아직 큰 누님과 세 형님은 잘 지내시건만, 막내인 친구는 어찌 그리 서둘러 갔는지….


“얼마 전 아버지 묘소에 다녀오면서 엄마와 대화중에 김 선생님 얘기를 했었는데, 오늘 선생님께서 아버지 묘소에 가신다고 연락 주셔서 놀랐습니다. 아마 하늘에 계신 아빠께서 우리들 마음을 다 알고 계신 듯 합니다” 이런 얘기를 시작으로 우린 봄볕 가득히 쏟아지는 묘소 앞에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6·25 전쟁을 돌도 못 지난 애기로 겪으면서부터 살아온 어려운 시절, 68년 예과 입학 후 만나 친구가 된 얘기, 동숭동 캠퍼스 내의 식당에서 난생 처음 맛 본 에그 샌드위치와 하이라이스를  친구가 내게 사주었을 때 내가 느낀 충격, 나는 일 년 내내 교복을 입는데 친구는 체격이 비슷한 형들의 양복을 얻어 입고 멋 부리며 학교 다닌 얘기, 그즈음 막 개통된 경인고속도로를 처음 타보는 고속버스에 앉아 친구 집을 찾아 간 추억들,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데모에 참가했을 때 친구가 길가에 세워둔 리어커에 걸려 넘어져 동대문 경찰서에 연행되어간 사연, 가족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개업의 생활 40년의 고충과 보람을 나누던 추억, 자식 키우면서 겪는 애환을 나누던 기억들이 새롭게 살아나고 있었다.


부모의 은혜를 잘 알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늘 마음에 품고 그리워하는 친구의 아들을 보면서 고맙고 대견한 마음이 가득차서 즐거운 나들이 길이었다. 하늘에서 흐뭇한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을 친구에게 ‘자네 아들 잘 키웠네!’ 하고 마음으로 칭찬해주었다.


어머니 잘 모시라는 당부는 할 필요도 없는 사족이었다.


이제는 어느 모임에 가도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는 몇 안 되는 나이가 되었다.


의국 선후배가 모이는 모임에서 원로선배라고해서 아직 원로는 아니라고 했더니, 그러면 ‘원’은 빼고 그냥 ‘노’선배님 이라고 해서 더 낭패를 당한 기억이 있다.


주위 동기들이 먼저 간 친구들도 있고, 몇몇은 암 투병으로, 개인적 불행으로, 경제적 고통으로 힘들어한다는 소식이다. 이제 마무리를 잘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옴을 절감한다.


주변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인생의 겨울을 맞이해야 하겠다.


봄나물들이 살포시 얼굴을 내미는 잔디밭에서 친구에게 묻고 싶은 말이 생각났다.


“그 곳에서도 가끔은 평생을 같이 한 치과 엔진소리와 치과 냄새가 그립지 않은가?”

  

김유진
김유진치과의원 원장

관련기사 PDF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