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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0번째) 일본에서 만난 ‘노무라 할아버지’

Relay Essay
제1740번째


일본에서 만난 ‘노무라 할아버지’


마츠도의 치과 선생님인 하야시 선생님께‘푸르메 재단’을 알고 있냐는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난 잘 알아듣지 못했다. 사실 쉬운 발음의 단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전달이 안되기도 했지만 일본 선생님에게서 듣게 될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기에 더 그러했다.


그렇게‘노무라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하야시 선생님은 매주 화요일이면 이바라키현의 미토시에 위치하는‘미토장애인진료센터’로 외근을 나가신다. 거기에 하야시 선생님의 친구가 치과위생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녀가 바로 노무라상이다. 한국에서 공부하러 온 사람 (이게 나)이 있다는 말에 푸르메 재단을 알고 있냐고 물어본 것도 노무라상이다. 노무라상이 주었다는 신문 기사는 푸르메 재단의 장애인시설 치과진료봉사활동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기사 속에 봉사활동을 함께 한 노무라 부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어떤 인연으로 일본의 치과위생사가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푸르메 재단의 치과진료봉사에 참여하게 된 걸까? 궁금함은 커져만 갔고, 내 본래 목적이었던 장애인진료센터 견학과 함께 그 궁금함도 해결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12월 6일 화요일 하야시 선생님을 따라서 미토장애인진료센터에 가게 됐다. 거기서 만난 노무라상은 밝은 미소와 한국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진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녀에게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든 그녀의 시아버지인 노무라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젊은 시절을 서울의 청계천 빈민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계속 해오셨으며 얼마 전 국민일보에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는…도쿄로 돌아온 저녁 바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 기사를 읽게 됐다.


그리고는 국민일보와 기독신문 등 일련의 신문 기사를 통해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의 과거 청계천에서 행했던 빈민 구제 활동,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한국 사랑과 그 자식에게까지 이어지는 한국에 대한 관심과 활동을 알 수 있었다.


언젠가 사랑하는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노무라 목사님.


노무라상에게 메일을 썼다. 신문 기사를 읽었노라고 정말 존경받으실 만한 분이시며 기회가 된다면 한번 뵙고 싶다는 내용의 조악한 일본어 메일이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노무라 목사님에게서 한통의 초대편지를 받게 됐다.


그렇게 2012년 12월 29일 노무라 부부와 함께 노무라 목사님 댁을 찾게 됐다.


야마나시현 야쓰가다케산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 시골집은 목사님 부부가 두 마리의 리트리버 폴리와 모리와 함께 살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언제라도 이곳을 찾는 손님을 위한 따스한 방이 준비돼 있고, 주말이면 작은 목회가 열리는 베다니 교회로 변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첫날 늦은 저녁 시간에 도착해 간단한 인사 뒤에 바로 잠자리에 들었고, 다음날 하루가 시작됐다. 한겨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따스한 햇살이 통유리로 환히 비쳐 들어오는 거실에서 노무라 할머니의 맛있는 음식이 준비된 식탁 앞에 앉아 아침 식사 시간을 가졌다. 간단한 한국어 단어를 사용하시는 목사님은 커다란 사진북과 오랜 옛 사진들을 펼쳐놓으신다. 그 사진 안에는 내가 태어날 무렵인 1970년대의 청계천과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자신을 목사가 아니라 그냥‘할아버지’라고 불러달라는 노무라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있어 청계천 빈민가야 말로 진정한 신학교였다고 말씀하신다. 20년에 가까운 젊은 시절과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모두 걸고 청계천 빈민의 구제와 선교활동을 위해 애썼던 노무라 할아버지. 옛날 사진을 일일이 설명하고 그 시절을 회상하는 모습에는 깊은 애정이 가득 담겨있었다. 평범한 나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삶이지만, 할아버지의 자녀들에게로 이어진 그 마음은 나와 동년배인 노무라 부부와 나를 알 수 없는 인연으로 묶었고, 이런 만남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2006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청계천문화관에는 할아버지가 기부한 옛 사진과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됐다고 한다. 내가 지금 일하는 장애인치과병원이 바로 그 청계천문화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으며, 목사님이 활동하셨던 답십리, 용두동, 사근동 일대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설명해주는 목사님이 더 신나하신다. 아마도 수없이 같은 이야기를 들었음직한 가족들도 역시 적당한 추임새와 흥미를 가지고 함께 시간을 나눈다.


어둠이 슬슬 찾아오기 시작하는 저녁이 되자, 배고픈 겨울 여우를 위한 먹이를 앞마당에 준비해 놓고, 어둠속에서 여우를 기다리신다. 너구리는 욕심쟁이라서 한 마리가 다 먹을 걸 가져가 버리지만, 여우들은 자기가 먹을 만큼만 먹고 돌아선다는 할아버지의 설명. 커텐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 밤 세 마리의 여우가 할아버지가 준비해 놓은 고기를 먹고 숲으로 돌아갔다.


그 2박 3일 간의 시간은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시간을 잊은 듯한 그 공간에서 두 마리의 리트리버와 할아버지, 할머니, 여우, 딱따구리 그리고 숲속의 사람이 그림처럼 살고 있었다. 평화롭고 따스했다. 무교인 나로서도 종교가 가지는 그 끝없는 포용력과 사랑이 이런 식으로 함께 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할아버지의 플루트 연주가 거실에 함께 했고, 편안한 유머와 맛있는 음식이 식사시간을 채웠으며, 배고픈 겨울 여우의 방문이 마당을 밝혔다. 


지난 2월 노무라 할아버지는 한국을 방문해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책임을 묻고,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울밑에 선 봉선화와 진혼곡을 플루트로 연주하셨다. 뉴스를 통해 그 모습을 보면서 난 그날 야마나시에서 들었던 플루트 소리와 위안부 할머니들을 자매라고 말씀하시던 노무라 할아버지를 다시금 떠올렸다.


이제 날도 많이 따스해졌으니 봄 햇살 아래 슬슬 청계천으로 산책을 가야겠다. 커피도 마시고 청계천문화관에도 들려서 옛 사진들을 구경해야지. 그리고 사진도 예쁘게 찍어서 노무라 가족들에게 보내드려야겠다.

  

황지영
서울시립장애인치과병원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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