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763번째
구강건조증과 통섭의학 (하)
<2056호에 이어계속>
수년전 노모께서 뇌지주막하출혈로 인해 응급수술을 받으시게 되었다는 급한 연락을 받았다. 그 당시 지방에 머물고 있던 터라 급히 서울로 이동하면서 조절할 수 없는 회한과 슬픔이 밀려왔다. 늘 체력이 골골하셔서 일찍 돌아가실 거라 예측했지만 참 유별나시게 강한 정신력과 의지를 갖고 계신, 늘 말씀은 조용하게 하시지만 몸소 실천하시고 자식들을 위해 불평대신 당신의 몸을 희생시키는 쪽을 선택하시는 그야말로 우리들의 전형적인 부모님이시다.
자식 중에 유달리 애착을 많이 보이셨던 자식임에도, 직업을 가져 바쁘다는 구실로 또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딸자식으로서 맘처럼 옆에 있어 드리질 못했다. 맘쓸까봐 다른 형제들이 우선 일처리를 하다 위중한 상태가 되면 연락을 받는 완전 불효자식이다. 다행히도 평생 채식을 하셨던 체질덕분에 특별한 지병이 없으셔서 고령임에도 여러 번의 큰 수술을 이겨내셨고,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과정, 혼수상태에서 기관지절제, nasal tubing의 영양공급과정이 지속되었다. 현재는 기적적으로 강한 의지로 회복하셔서 노령에 맞는 정도의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시다.
의치를 reline하고 조정해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심으로써 딸에게 영원히 남길 상처와 회한도 가져가신 어머니시다.
경기도 일산에서 수서까지 교통체증 때문에 왕복 3~4시간 걸린다는 핑계로 자주 가뵙지도 못하던 어느 날 병실에 누워계신 노모의 입안을 들여다본 순간 경악을 하였다. 구강건조증이 악화되어 구강점막이 얇고 투명한 플라스틱처럼 연구개까지 덮여있었다. 30년 임상에서 처음 본 소견이었다. 아! 통증 때문에 침조차 삼키시지 못하셨겠구나…그 때 밀려오는 죄책감, 아픔, 그 순간의 마음, 어떤 표현이 가능할까. 간병인이 잘 알아서 하고 있겠지 했던 무심함의 결과였다. 다른 형제들이야 당연히 환자의 사소한 안위에만 신경을 쓴다. 소위 국내 최고의 병원에 속하는 S의료원에서, 간호병동에서 지시한대로 했다는 간병인. Nasal tubing으로 인한 구호흡에 의해 야기된 구강건조증 환자의 입안을 알코올 스폰지로 닦아냈단다…노모 병상 옆에 병원에서 제공한 알코올 스폰지가 담긴 통이 있었다. 앞으로 절대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시키고, gauze에 saline을 적셔서 수시로 수분공급을 하고, 인공구강타액효소를 도포해드리고 플라스틱점막이 탈락되어 나오는 점막에는 Admuc을 발라드리는 등의 과정을 통해 플라스틱점막이 벗겨져 나오고 새살이 돋고 서서히 점막의 건강이 회복되었다. 어떤 이유로 구강 내에 그런 연고들을 도포해드려야 하는지 담당주치의에게 설명하고 사전에 승인을 받았다. 신경외과 담당의사는 솔직히 사과하였다. 사실 구강건조증에 대해서는 인지해 본 적도 없노라고. 그렇다면 누가 담당하여야 할 영역일까? 돈 되는 진료에는 너도나도 영역을 넘어 영역다툼이 치열하다. 구강건조증에 대한 관리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중증환자들이 많다는 것을 미루어 알 수 있는 사건이다.
필자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은 치과의사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행운과 즐거움이 있다. 세미나를 통해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치과의사가 이처럼 스펙이 뛰어나고 똑똑해도 되나 싶다. 최고 상위권에 속해야 치과의사가 될 수 있는게 현실이다. 솔직히 치과기술(?)을 배우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현재 구분되어진 영역을 벗어나 그 틈새를 연구하고 연결해주는 통섭의학에 인재로 쓸 수 있는 배경, 두뇌를 갖춘 이들이다. 이들을 알량한 진료의 과당경쟁에 밀어 넣지 말고 그 최고의 자존감과 두뇌에 걸맞게 과거 우리 선배들이 미처 하지 못했던 영역에 심취하게 할 수 있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본다.
이수빈
아라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