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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0번째) 진홍의 거리

Relay Essay
제1770번째


진홍의 거리


언젠가 시내 교차로 신호등 앞에서 초등학교 1학년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얼굴이 빨개지고, 코피가 사방으로 튀벅이며 작은 목구멍에서 나오는 비명을 지르면서 뺨을 맞고 있었다.


찰싹 찰싹 사정없이 내려치는 사람은 그 아이의 엄마이다. 노트 한권 어디갔냐고 아이를 죽일듯이 윽박지르며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를 때리고 있었다.


그 소리가 너무나 컸기때문에 차 안에서 내가 그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순간 나는 그 아이가 되어 버렸다. 철썩, 철썩 맞는 순간마다, 내가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죄책감을 가져야 했고, 그 죄책감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라고 몸부림을 치고, 참기 힘든 아픔에 비명을 질러야 했고, 나는 왜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를 증오해야만 했다.


나는 차라리 세상에 나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단지 이 생각만 있었던 것 같다.


차라리 이세상 이란 곳이 존재하지 않아서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가혹한 피의 향연을 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한겨울 날씨에, 피가 튀겨 나가면서 얼어버리는 광경을 묵도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피의 가루 까지는 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세상에 엄마 없음을 더이상 탓하지 않고도 살수도 있었을텐데, 세상에서 누군가에 의해 아무 의미 없이 살해 되더라도 원망도 가지지 않았을텐데…


죽음이, 더이상은 나를 죽음으로 몰아가지 못함을 알았을텐데…


그냥 두어도 죽음 그 자체로 죽어버릴수 밖에 없었음을 알게 되었을텐데…


내가 어쩌자고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이 피빛 자욱한 고통을 맞이하며 울어야 하는가.


그리고 상처받음에 대한 아픔으로 맑은 피빛 눈물이 종달새 다리만큼 가녀린 목덜미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 흔한 세상일.


너무나 힘들어 죽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그때 그상황.
그러나, 난 그냥 죽지도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다.
가슴속에 터져버린 피 한 덩어리 한 무더기를 쓸어담고, 일그러진 장면을 그냥 그렇게 만지작 거리면서 그위를 지나갔다.
나는 그냥 지나치기만 했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면서 그냥 지나쳤다.
진짜 나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에, 유명하지는 않지만 한 천재적인 시인의 시를 옮기고 가자 한다.
내 친한 벗, 재훈이의 동생이다. 정재학 시인이다.

  


진홍의 거리

 

승마복을 입은 패기 넘치는 여인이
화석같은 건물 틈바귀에 끼어서 말을 걸고 있다.
-말은 어디에 있나요?
-고래의 뼈와 바꾸었어요.
-술취한 뒷골목은 잔인하지만, 있지도 않는 고래뼈를 그리워 하거든요.
-이곳은 하늘 까지도 벽돌이군요.
-이런 진홍의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 것일까요?
-천장의 하늘이 말라가서
가끔씩 가루가 날린답니다.
주위의 핏빛만이 가득해요. 물론 좋은 일은 아니죠.
저 천장은 하늘 이었을까요?
하늘 일까요?
회색짙은 거리,
아무것도 찾아낼수 없는 거리, 그리고 진홍의 바람
내 흰자위가 멀리서 부터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화석이 되어버린 빌딩 옆에서.
눈꺼풀이 닫히질 않아 다른 바람을 쐬고 싶다.
마른 물감을 숨 쉬는 것같이
온몸에 들어온 진홍의 입자들.
빠져나가지 못한채 서걱거리며 비틀리고 있다.
내 몸이, 노을에서 해가 나고
호수로 해가 지는 섬이었으면
-벽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열쇠가 있다면 내게 파시겠어요?
그녀는 조랑말이 되어 가고 있었다.
화석이 되어버린 거리에서
치렁치렁 방울 소리가 들렸었다.
치렁이는 울렁이는 아픔은
죽은것처럼
이렇게 죽어 있기를 바란거란다.

  

손대형
청양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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