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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2번째) 장흥의 추억

Relay Essay
제1782번째


장흥의 추억


 벌써 2년 반이 지난 2010년 4월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보건복지부의 교육이 끝난 후 집으로 가는 길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왠지 무거운 전화벨이 심상치 않더니 공보의 배치 추첨에서 기피지역인 전라남도로 친구와 같이 배치되었다는 전화였다. 공보의 배치는 원하는 지역만 써서 제출하면 거기서 무작위로 선출되는 소위 말해 복불복 시스템이었다. 200명의 공보의 무작위 배치 중에 1/4이 전라남도로 배치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가 막상 배치되고 나니 막막했다. 일가친척과 같은 연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도청에서 실시하는 시군 배치 제비뽑기라도 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목포 도청으로 향했다. 그런데 왜 슬픈 예감은 항상 빗나간 적이 없는 것인지 50명중에 38번을 뽑은 것이다. 운이 없음을 한탄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장흥으로 배치되었다. 배치 받은 후에는 워낙 좋지 않은 순번을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장흥에라도 배치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실상 내가 근무하게 될 대덕보건지소를 가보니 읍과도 30km정도 떨어져 있어 우리나라 땅 끝이나 다름이 없어 절망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 관사로 이사를 하면서 대한민국이 이렇게 넓구나 새삼 느꼈던 기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관사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따듯한 물이 나오지 않고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 나와서 아침마다 씻으려면 커피포트에 물을 데워서 그 물로 씻어야 했다. 4월 말이라서 기름이 떨어져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봄, 4월이 몸이 오들오들 떨릴만큼 춥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오후 6시만 지나면 어두워짐에도 불구하고 주변거리에 불을 제대로 켜놓지 않아 캄캄해서 밖을 돌아다니기는 힘들었다. 낯선 타지여서 어려운 환경에 적응하기는 생각보다 쉽진 않았고, 이곳의 열악한 조건들은 공보의들의 모임에서 주된 소재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같이 일하는 성격 좋으신 치과여사님과 다른 여사님들의 도움으로 적응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단점들만 있었냐하면 그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체념반·적응반으로 장흥에서의 생활이 점점 익숙해져갔다. 대다수의 함께 혹은 근처에서 일하는 공보의들이 본가와 멀리 떨어져 관사에서 거주하고 있어서, 공보의들끼리 모임도 자주 가지게 되었고, 내가 있던 보건지소에서 보이는 ‘천관산’이라는 유명한 산을 같이 등반하기도 하고, 장흥 삼합과 철마다 나오는 신선한 조개와 새우 등을 먹으러 다니며 여유롭고 한적한 시골생활을 나름대로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얻은 상대적인 만족에 불과할 뿐, 공보의들이 매일 피부로 느끼는 근무환경이나 생활환경 자체가 좋아진 것이 아니였다. 지금도 많은 공보의들이 행정편의적 배치로 인해 본래 거주지와 너무도 멀리 떨어진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기본적인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남모를 고생을 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장흥에서의 공보의 생활을 바탕으로 작년부터 대공협의 이사직을 시작으로 하여, 올해 부대표직을 맡고 있다. 올해 초 각오와 긴장으로 시작된 일이 이제 임기 말이 되었다. 공보의 대표2인이 2014년부터 대의원이 된 일과 보수교육점수의 원만한 합의 등이 있었지만 벽오지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중보건의사들이 당장 느낄 수 있는 애로사항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점에 있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벌써 공보의 생활이 6개월 남짓 남은 지금, 빨리 끝나길 바라는 마음 반, 여유로운 시간이 끝나간다는 아쉬움 반이다. 오늘도 벽오지에서 성실히 근무하는 선생님들께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가재근
대한공중보건치과의사협의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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