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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4번째) 느림의 미학

Relay Essay
제1784번째

 

느림의 미학


내 핸드폰번호는 아직 010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국번도 네자리가 아닌 세자리로 시작한다. 당연히 스마트하지 못한 핸드폰이다. 심지어는 요금제도 99년도 요금제이다. 그러니 5천만의 메신저라고 하는 *톡도 안 하고 있고, 국민게임이라는 애니*이 무엇인지 모른다.


모임이나 어디서든 핸드폰을 꺼내면 다들 의아한 눈으로 쳐다본다. 평소에 바쁜 일정이나 하는 일을 보면 굉장한 어얼리 어답터 같은 분위기인데 핸드폰은 골동품이니 말이다. *톡의 단체채팅도 안 하니 요새 가끔 학회 같은데서 스마트한 이사회를 하지만 혼자서만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고, 나 한테 연락을 위해서는 별도의 문자를 보내주어야 한다는 총무의 원성도 들어야 한다. 문자도 이전 문자내용을 정리하지 못하니 기억으로 더듬어서 주고 받아야 한다. 상당히 내가 불편할 것이라고 다들 걱정해 주면서 왜 안 바꾸냐고 의문을 갖는다. 그런데 정작 본인인 나는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예전을 생각해 보면 환자가 없으면 원장실에서 신문도 읽고, 정말 심심하면 전공서적도 읽으면서 환자를 기다렸었다. 지금은 환자가 없어도 할일이 굉장히 늘어났다. 병원업무나 내가 외부에서 하는 강의나 회의준비도 해야 하지만 그것은 예전에도 하던일이니 그냥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메일도 체크해야 하고, 문자로 들어온 내용도 해결해야 하고, 인터넷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도 해야 한다. 거기에 만약 블로그 관리도 하고, 페*스 북이나 트*터도 해야 하면 해야 할 일은 늘어난다. 그러면서 *톡으로 대화도 많이 해야하고 애니*도 하면서 하트도 날려주어야 한다. 세상은 더 바뻐졌고 할일의 양은 늘어났고, 더욱 문제는 처리해야하는 속도도 아주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편지를 보내면 일주일정도 잡고서 받아 볼 수 있던 것이 지금은 당일배송이라서 클릭한번으로 오전에 물건 주문하고서 오후에 받아보는 세상이다.


나의 비겁한 변명은 핸드폰이 스마트하지 않아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지장이 없으면서도, 핸드폰이 스마트해진다면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강박증이 발동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넉넉하지 않는 나의 시간에 무언가가 더 들어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두렵기까지하다. 우리는 너무도 바쁘게, 빠르게 그리고 복잡하게 살고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많아서 그렇게 사는 것이 예전의 일상이었다면, 지금은 도리어 나 혼자 있어도 바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너무 많아진 것이다. 다들 바쁘게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그게 아무런 목적이 없는 중독성 있는 단순한 일의 반복이기도 하다.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게임을 한다는 이야기는 일리가 있지만, 게임을 하기 위해서 별도의 시간을 낸다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인지는 모르겠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생활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답답해 보일지 몰라도 우리의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기기들도 버리고, 나만의 세계를 가져야 한다. 도리어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못하면 바보가 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 보아야 한다. 나만의 세계에서 여유와 휴양을 하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경쟁사회에서 빨리빨리라는 말은 어쩌면 한국사회에서 일상화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됨으로 혹시 우리가 잃어버린 다른 것이 있지는 않을까? 그 잃어버린 것을 오늘부터는 좀 찾아야 하겠다.


송윤헌
아림치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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