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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6번째) 칭찬합시다

Relay Essay
제1796번째

  

칭찬합시다


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회의 성공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신부가 결혼 앨범 제작자를 고소한 사건으로 “얼굴을 괴물로 만들어 단 한 번인 결혼, 아니 일생을 망쳤으니, 정신적인 위자료까지 물어내라”는 주장이다. 반대로 피고는 “지독하게 까칠한 고객을 만나 앨범을 세 번 만들어도 만족하지 못하니, 두 손 다 들었다”며, 돈이 더 들더라도 빨리 끝내만 달라고 한다. 착한 신랑이 신부를 달래어, 앨범을 한 번 더 만들고 약간의 위자료를 받는 조건으로 조정이 성립, 2년 만에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발표 뒤에 만찬 건배사에서 필자는 짧은 강평을 곁들였다. 이 사건의 주범은 바로 신랑이라고. 앨범을 처음 펼친 순간 신랑이 “뷰티풀! 웬 선녀?”했다면 분쟁도, 재판 동안 신랑 신부 간에 금슬의 훼손도 없었으리라. 짐작하건대 신랑은 귀여운 신부를 놀리려고“이거 당신 얼굴 맞아?”또는“웬 화장빨!”했거나, 아니면 트집 잡기 좋아하는 친구의 험담을 꾸짖지 않고 맞장구 쳤을 수 있다.
이런 농담은 신부 가슴에 비수를 꽂는다.


영화 ‘A Face in the Crowd’(2011)는‘안면인식장애’라는 조금 생소한 정신질환자 얘기다. 사람을 알아보는 데에는 헤어라인과 턱선 같은 윤곽과, 눈빛이나 코 높이 같은 순간 식별의 랜드마크가 있어서, 볼에 점 하나 찍었다고 마누라를 못 알아보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은 코미디다. 반대로 ‘낯익음의 오류’가 있다. 익숙한 랜드마크만 보이고 늘어난 주름살과 쳐진 볼은 내 눈이 제멋대로 뽀샵을 하니까, 가족이나 친구의 늙음을 읽지 못한다.  매일 대하는 거울 속의 내 얼굴도 그렇다. 낯선 젊은이가 “영감님!”하고 부르거나, 30년 만에 만난 동창생의 주름진 얼굴에서,“나도 이제 늙었구나”하고 간접적인 깨달음(?)을 얻을 뿐이다. 


순간적인 변신(Transform)은 차원이 다르다. 극적인(Dramatic) 변화를 동반하는 치과교정, 심미보철 또는 성형수술에서, ‘정체성의 혼란’같은 정신적인 후유증이 연구 대상이던 시절이 있었다. 시술이 일반화되자 이제는 비포의 지나친 기대감과 애프터의 만족도 사이에 괴리(乖離)라는 더 큰 불씨가 자라나, 높은 소비자 의식, 부정확한 인터넷 지식과 SNS 바람을 타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치열한 경쟁과 추락하는 수가와 오르는 인건비 같은 경영압박의 잽에는 꽤 맷집이 센 의사라도, 지극히 주관적인 심미감에 관한 한, 무조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환자의 항의(Complain)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나마 환자만의 문제라면 설득하고 이해시켜 ‘신뢰의 추락’만은 면할 수 있지만, 주변의 부추김이 끼어들면 대화가 꼬이고, 부추김의 주체가 제3의 의사인 경우 치명타가 된다. 신뢰를 잃으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Rapport)가 무너지면서 의료분쟁으로 치닫는 것이다.


분쟁에 시달리고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뒤에야 “어설픈 정크정보로 무장한 미혼에 깡마르고 안경 쓴 초등학교 여선생님” 같은 농담으로 자위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의사의 양심에 비추어 납득할 수 없는 불이익은 막아야 한다. 예방에는 공동 대처 못지않게 개인적인 책임이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기본 상식이자 에티켓이요 돈도 들지 않는 손쉬운 일이다. 동료의사의 작품(시술 결과)을 무조건 ‘칭찬 먼저’하자는 것이다. 조류는 알에서 깨어나 처음 본 상대를 어미로 인식한다지만, 치료가 끝난 뒤 처음 만나는 가족이나 친지의 반응은 불행하게도 우리의 관할구역 밖이다. 그러므로 무심코 내뱉는 말 한 마디에 상처를 입어 다른 의견(Second Opinion)을 들으러 온 환자에게는, 환자 본인을 위해서라도, 밝고 긍정적인 설명이 바람직하다. (자신이 믿는) 불만에 집착하여 유리한 정보만 찾고 있는 사람은 부정적인 눈빛 하나에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먼저 진심어린 칭찬을 하자. 그 다음에 환자의 불만이 합리적이면 그의 입장에 서서 개선책을 함께 찾는 것이 순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 않는가?  단점을 찾아내어 그 환자와의 새로운 관계 형성에 이용하려는 의사는 없겠지만,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런 인연은 필연적으로 악연으로 끝나,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신뢰의 실추’가 불러일으킬 엄청난 피해는 결국 모든 의사에게 매우 공평하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짙은 신부화장과 지나친 뽀샵으로 자신에게도 낯 설은 결혼 앨범을 펼쳐든 신부에게, 사랑에 넘치는 신랑의 칭찬 한 마디는 평생의 행복을 약속할 축복이다. 필자가 대한치과교정학회 대전·충남지부 제6대 회장에 취임한 한병주 선생에게 임기 중 “칭찬합시다” 캠페인을 권고한 이유다.


임철중
전 대의원총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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