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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8번째) “기름 값이나 되었나요”

Relay Essay
제1798번째

 

“기름 값이나 되었나요”

  

오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나와 아내, 아내의 친구, 처형 네 명의 초보 농사꾼이 이른 새벽 화성 팔탄면에 있는 밭으로 향했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수확철이 돌아왔다.
아카시꽃이 다 시들었다고 소녀처럼 푸념하던 여인네들이 이른아침 밭 입구에 싱그럽게 달린 아카시꽃을 보고 탄성을 지르던 일….
아침 참으로 가져간 음식을 밭에서 먹으니 아카시꽃 향기가 봄날의 아침상을 가득 채우고 서해안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온몸이 상쾌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나는 밭골을 고르고 농사용 비닐을 펴고 세 사람의 여자 농군들은 고구마는 이렇게 모종을 심어야 한다며 서툰 솜씨지만 열심히 일하였다.
모종 값 8만원, 차 기름 값 8만원, 농사용 비닐 값 3만5천원, 간식비 등 대충 계산해도 이번 고구마 농사에 들어간 원가가 시장에서 사먹는 돈보다 많을 것 같다며 웃으면서 가져간 들깨 씨앗도 정성껏 뿌렸다.
농부들이야 그해의 농사 계획이 있어서 이것저것 열심히 수지를 맞추어 경영을 하지만 도시 사람들이야 전원생활의 막연한 호기심에 조금만 해보는 일이기에 농사를 해서 이익을 본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마음으로 기르고 즐거우면 족하다.
작년 김장철에 교직생활 하다가 정년을 끝내신 이웃 선생님이 김장배추며 무, 파 등 양념에 쓸 야채까지 손수 경작하신 것을 잔뜩 주셔서 거져 김장을 하였다.
그래서 올 봄에는 손이 가장 덜 간다는 고구마와 들깨를 선택해서 심었다. 농사 연습.
올 봄에는 가뭄이 극심했다. 토요일 일요일은 웬 친구 친척들의 결혼식 초대장, 부고 등이 많은지 밭에 한번쯤 물이라도 주어야 하는데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닌가….
가뭄이면 농부들이 가슴이 타 들어가는 것이 이해가 간다.
마음 먹고 일요일 새벽 혼자서 밭에 물을 주러 같더니 새벽잠 없는 이웃 할머니가 나오셔서 물을 못주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심어놓은 모종 몇 개 만 줄기가 보이고 다 시들었는데 그래도 물을 주면 가뭄이 타서 다 죽는 다나. 지금 가뭄이 깊어 줄기가 마르고 내 속이 바싹 말라 있는데 물도 못주고 돌아섰다.
그길로 농사 지어 놓은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 10월이 되도록 가보질 못했다.
그리고 10월 중순께 이웃 아주머니에게 전화로 제 고구마 살았냐고 물었더니 ‘다 살았다 한번쯤 와서 풀도 메고 해야지’ 하신다. 고구마가 생겼는지 모르겠다.
들깨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타작을 해야지 깨가 다 빠지게 생겼다’고 하신다. 생명이 물 한번 못주고 잡초 한번 뽑아주지 못해도 잘 자랐구나.
모두에게 연락해서 10월 27일 마지막 일요일 밭으로 향했다.
고구마가 몇 개나 열렸나? 들깨가 다 빠졌을까? 아니야 모종이 삼백이니 두개씩 열었어도 육백개는 될 것 아닌가. 차속에서 지래 짐작하는 말이 오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을 들판을 지나다 보니 어느새 밭에 도착. 초록색이 넘쳐난다. 와! 잘 자랐구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낫, 호미, 괭이를 들고 밭에 들어섰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낫으로 넝쿨을 자르고 고구마를 캐야지 호미부터 들이 되면 안된다고 한마디 하신다.
여인네들은 고구마 순이며 깻잎을 따기 바쁘다. 나는 덩굴을 자르고 고구마를 캐기로 했다. 첫 고구마를 들어 올렸다. 작은 호박만한 둥글고 커다란 고구마가 첫 번째로 나왔다. 모두가 그 크기에 놀라 대박이라며 뜻밖의 전리품에 즐거워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다.
시간이 갈수록 크고 작은 수확물들이 딸려 올라와 삼태기에 들려 올려 밭둑위에 쌓아 놓으니 허리가 아파도 즐거울 수밖에….
욕심이 난 우리들은 어느새 잘 다듬어진 고구마 순이며 들깻잎 잘 여문 들깨의 머리 부분만 가위로 잘라서 서울에 가서 말리고 타작하기 위해서 부대 속에 담았는데 점심시간이 되어도 일손을 놓지 않고 열심이다.
이런 맛에 농부들이 봄부터 여름 가을 힘들어도 농촌을 떠나지 못하는가 보다. 식사는 밭에서 짬뽕을 시켰는데 농촌이라 그런지 그 양이 서울의 두 배 정도다. 밭에서 먹는 막걸리 한잔, 짬뽕 한 그릇 이지만 어느 요리 집 보다 분위기 좋고 그 맛이 일품이다. 가을 바람이 따가운 햇살 속을 파고든다.
오후 3시가 넘어서 추수가 끝났다. 예상치 못한 수확에 들떠 내년에는 도라지도 심고 콩, 호박도 심자고 한다.
오늘 수확한 것도 트렁크에 넘쳐나는데 내년에는 소형 트럭이라도 사야 할 것 같다고 하자 모두가 웃는다.
올해는 적당히 심어놓고 수확만 했는데 내년에는 좀 정성을 들여야 할 것 같고 한 달에 한 번쯤은 농촌에서 하루를 땀을 흘려야 겠다.
갖고 싶은 것이 많으면 부지런 해야겠다.
이렇게 좋은 것을 휘발류 값 따지고 원가를 따지기 무리다.
가을걷이로 가슴속 넘쳐나는 수확의 기쁨에 비교나 될까.
기름 값이나 되었나요? 허리가 아파서 원가 생각이 나질 않네요.

  

윤양하
한울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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