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801번째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연일 계속되는 매서운 추위에 온몸이 움츠려든다. 항상 그랬듯이 계절이 추워지면 큰 시험이 우리를 기다린다. 수능시험 때도 보온병에 핫팩을 들고 갔었고 국가고시 보던 날 아침도 눈이 펑펑 내렸었던 것 같다. 4학년 후배들이 국시 준비에 한창인 것을 보니 1년 전 이맘때가 생각이 난다. 이 고비만 지나면 모든 고생이 끝나고 달디 단 행복의 열매를 맛보게 되겠지 라는 생각은 역시나 착각이었다. 달콤한 열매는 분명 있었지만 그 달콤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 힘든 시간은 끝나고 탄탄대로의 인생을 걸어갈 것이라는 생각은 큰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은 지 이미 오래지만 항상 현실은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충격을 동반한다.
대학병원에서 인턴과정 중에 있는 나 같은 경우는 아직 학생과 같은 기분이다. 매일 보던 동기들과 교수님과의 병원 생활이 지겹기도 하지만 아직은 생활에 큰 변화가 없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그에 반해 말로만 듣던 냉혹한 개원가의 찬 바람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마땅한 일자리나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동기들의 소식도 적잖이 들려오니 그 다급함과 초조함이란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는 고심 끝에 들어간 병원에서는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져 이직을 고려중이고, 어떤 동기는 좋은 원장 아래서 양질의 교육과 입이 벌어질 만큼의 월급를 받고 일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심지어 어떤 친구는 벌써 어디선가 개원준비를 한다고 한다. 모두 같은 날 같은 시간 면허를 취득했지만 어찌 이리 다양하단 말인가.
남들보다 빨리 좀 더 높이 올라가는 경쟁이 미덕이었던 교육과정 때문인지 어딜 가더라도 서로 경쟁과 비교를 부추긴다. 우리도 그것이 익숙해졌는지 남의 것을 보면 내 손에 들고 있는 것과 비교부터 하게 된다. 하지만 빨리 얻어진 것은 언젠가는 그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뛰어난 운동선수나 배우들을 봐도 그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뚜렷한 소신을 기반으로 오랜 연습과 무명의 설움을 딛고 나서야 비로소 눈부신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 한참 앞선 친구들을 보며 반성과 후회만을 반복하기보다는 현재 자신에게 주어진 길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가지는 것이 보다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뚜렷한 목표가 없어도 좋다. 첫 시도에 정답을 얻지 못해도 좋다. 소신을 가지고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한다면 그로 인한 만족감은 물론 기다렸던 좋은 기회도 찾아 올 것이라 믿는다.
지금의 세태는 안타깝게도 비겁함이 약이 되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한 약간의 꼼수들이 보편적이 것이 되어버렸고 그렇지 못하면 우둔하다는 걱정어린 조언을 건넨다. 이 모든 것이 남의 것과 나의 것을 비교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세상은 예상치 못한 일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지 않는가. 언제나 그랬듯이 긍정적인 생각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인생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아름답게 적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초조함은 잠시 접어두고 미래의 빛나는 모습을 위해 자신을 예쁘게 다듬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덧붙여 4년 전 치전원 입시를 준비하며 자기소개서에 한줄 한줄 써내려갔던 소중한 다짐과 포부를 잊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일 년에 한 두 번씩 있는 동기 결혼식에서나 생사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모두의 얼굴에서 자신감과 만족의 웃음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김종수
부산대학교 치과병원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