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820번째
박쥐(하)
<2113호에 이어 계속>
출근을 해 진료를 하는데 자꾸만 출근길에서 만난 박쥐의 모습이 생각 나, 진료가 잘 되지 않는다.
선한 눈망울이며, 격렬하게 저항하며 크게 벌린 붉은 입이며, 온갖 힘을 다해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애쓰는 검은 날개며, 허우적거리며 허공을 휘젓는 앞발과 뒤뚱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는 뒷다리의 힘겨운 모습 등등이 계속 나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다.
스잔한 마음을 달래는데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행여나 하는 마음에 아침 박쥐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대체 박쥐란 동물이 어떤 동물인지 알고픈 욕망이 솔솔 일어나 백과사전을 펼쳐 봤다.
아니, 박쥐의 종류가 이렇게 많단 말인가?
큰 박쥐 종류로 쟈바 큰 박쥐, 인도 큰 박쥐(Pteropus giganteus), 오가사와 큰 박쥐(P. Pselaphan) 등등이 있고, 작은 박쥐 종류로 관 박쥐(Rhinolophidae), 애기 박쥐(Vespertilionidae), 큰 귀 박쥐(Molossidae), 긴 가락 박쥐(Miniopterus schreibersi), 집 박쥐(Fuliginosus), 토끼털 뿔 박쥐, 큰 발 윗수염 박쥐, 멧 박쥐, 동양 애기 박쥐, 토끼 박쥐, 흡혈 박쥐, 쇠 불 박쥐(Murinaurata ussuriensis) 등 18종이 넘는다 한다.
그럼 내가 본 박쥐는 어떤 박쥐일까?
크기가 작은 것으로 봐 아마 집 박쥐나 멧 박쥐가 아닐까 생각된다. 박쥐들은 날아다니는 유일한 포유류로써 군집으로 동굴이나 나무등걸에 모여 산단다. 비엽(鼻葉)이라는 특수기관이 있어서 초음파를 일정한 방향으로 집중적으로 보내 곤충 등을 잡아먹는다고 한다.
또 이런 박쥐들은 수천마리씩 무리를 지어 야간에 모기, 나무좀 등 해충을 잡아먹는 익충(益蟲)이란다. 이런 좋은 동물을 잘 못 알고 병원균이 어떻고 광견병이 어떻고 하며 지레 짐작하여 아침에 좁은 소견을 보인 듯하다.
흡혈박쥐는 많은 박쥐들 중에 작은 한 종류이며 흡혈박쥐 역시 그 나름대로 인간에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란다. 또 구아노 역시 군집으로 사는 박쥐들의 배설물이기는 하나 그 자체로 천연의 비료이며 많은 미생물들의 먹이가 되어 자연환경의 큰 순환고리라고 한다.
아침에 본 박쥐는 흡혈박쥐도 아니고 구아노로 뒤범벅인 된 박쥐도 아닌데 공연히 호들갑을 떨면서 좁쌀알 노릇을 했다.
저녁 7시가 넘어 퇴근을 했다. 박쥐의 모습이 궁금하고 꺼림칙해 한달음에 박쥐가 있던 중앙광장으로 달려갔다. 겨울 저녁의 어둠은 일찍 왔다. 아무런 이상이 없기를 바라며 세세히 박쥐가 있던 곳을 살폈다. 한 겨울 저녁어둠과 검은 아스팔트는 모든 것을 뭉개 알아볼 수 없게 했다.
깜깜한 현실이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박쥐를 행복하게 하는 듯 해 참 다행이다. 야행성인 아침의 박쥐가 산새나 제비처럼 날아다니지나 않나 하는 막연한 바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어둡다.
여느 때와 달리 일찍 아파트 문을 나섰다. 잰 걸음으로 중앙광장으로 향했다. 오늘도 역시 꼬마 녀석들이 재잘거리며 발랄하게 뛰어 논다. 죄를 진 것도 아닌데 왜 마음이 급하고 허접하고 서슬차지 못한지 모르겠다.
난 중앙광장에서 어제보다도 더 큰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건 아닌 거야! 이래서는 안 되는 거야!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내가 죄인인가 보다!
이것은 시조새 화석이다! 여러분 압착된 시조새를 보셨습니까? 시조새 화석은 수억 년 전 기상변화와 지각변동에 의해 숙명적으로 형성돼, 지금에 와서 인간에게 과학이라는 선물을 주지 않는가!
그런데 오늘의 시조새는 선죽교의 핏자국처럼 선혈을 머금고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짓눌린 두개골과 하얗게 압착된 뼈로 된 새로운 시조새이다. 그렇게 만들려고 해도 어려울 거다. 이는 지나가는 승용차에 깔려 생긴 시조새다.
시조새 화석과 사람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압착된 박쥐의 주검은 확실히 다르다. 화석의 주검은 자연현상에 의해 필연적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지만 박쥐의 주검은 자신의 뜻과 달리 외부의 괴물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박쥐가 죽임을 당할 때를 생각해 본다.
굉음과 함께 달려오는 타이어 바퀴는 얼마나 무서운 공포였을까? 바퀴가 지나가며 내는 “아작”하는 소리의 고통은 얼마나 참혹했을까? 아무리 순간이라 할지라도 죽임을 당하는 박쥐의 공포와 고통이 왜 내 머리 속에서 이명(耳鳴)처럼 계속 울리지?
이는 어제의 잘못 때문이리라…….
뭐 흡혈박쥐가 어떻고 구아노가 어떻고 광견병이 어떻고 하면서 좋지 않게 잔망(孱妄)을 떨다가, “아작”하는 박쥐의 고통에 내가 지금 힘겨워하고 있다.
박쥐야! 미안하다!
신덕재
중앙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