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821번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것
나는 어렸을 때는 가수가 되고 싶었다. 춤추고 노래 하는게 너무 신나고 재미있었지만, 나는 그저 우리집에서만 명가수였고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소개조차 하지 못하는 부끄러움 많은 어린 아이였다. 학교란 곳에 들어가고 친구들을 사귀게 되고, 공부도 하고, 이런 저런 주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터 나는 줄곧 치과의사가 되어야지… 어린아이가 무턱대고 갖고 싶은게 생기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이제 가수가 아닌 치과의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꾸었다.
두 번의 수능시험을 보았고, 포기하기에는 너무도 아깝게 두 번이나 낙방하였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마냥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시작도 해보기 전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흔히 말하는 좋은 며느리가 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지만, 내가 더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남아있기에 한 번 더 대학원 진학을 시도했고, 너무도 감사하게도 세 번의 좌절은 겪지 않고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게 허락되었다.
입학 후 4년간의 시간을 잘 버텨내었고, 나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병원의 인턴을 지원했다. 이번에도 역시 내가 하고 싶은, 그냥 마냥 하고 싶은 교정을 배우고 싶어서 말이다. 평생의 진로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과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내 생각대로 흔들리지 않았다. 나름의 노력과 준비 덕분인지 맘졸이던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고 그렇게 나는 내가 그렇게도 원하는 의국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의 나는, 여자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이런 저런 고민과 생각이 많은 시기이다. 친한 친구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가정을 꾸리고 너무도 예쁜 아기들과 함께 너무도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느라 바쁘고 정신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간간이 밀려오는 나는 지금 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 나만 보고 바쁘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에 혼자 고민을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그들의 삶의 행복을 잠시나마 나눠달라고 한다. 이모라고 불러주는 꼬맹이들에 대해 택배로나마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며, 오랜 시간 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반가운 내 목소리를 들려주는 대신에 ‘이모 힘내세요!’, ‘이모 맛있는거 사주세요~’라고 꽁알꽁알 대는 꼬맹이들의 애교에 행복해하며, 지금의 나에 대한 고민 후 우울해있던 내 마음을 달랜다.
친구들과의 긴 대화 후에는 항상 이런 말이 남는다. “그래도 너는 니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고 있잖아. 지금 나는 나중에라도 니가 누릴 수 있는 행복과 기쁨을 누리고 있지만, 나는 나중에라도 너처럼 니 일에 노력하고 만족하고… 그럴 수가 없잖아. 넌, 지금, 니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이뤄내고 있는거야. 힘내. 그래야 우리 애기 나중에 교정해주지….”
그래… 그냥 나는 이제 엄마가 된 내 친구들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힘들다고, 나도 쉬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별을 보며 퇴근해도, 새벽 이슬을 맞으며 출근을 해도.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 아파도, 힘들어도,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도,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 그래, 어쩌면 내가 제일 행복한지도 모른다. 아니, 행복하다. 적어도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해 한번도 후회한적 없으니 말이다.
누군가 그랬다. “당장 눈 앞의 욕구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가장 눈부신 시절을 기꺼이 견딘 사람이 바로 청춘을 가장 성공적으로 보낸 사람이 아니겠는가?”
지금 나는 나의 눈부신 시절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내고 있다. 그것만으로 된게 아니겠는가. 행복하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이 자체로 말이다.
박채은
부산대치과병원 교정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