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826번째
변화와 신념
600여년전 고려말에 조선의 세번째 왕이 된 이방원과 고려의 마지막 충신인 정몽주가 만나서 술 한잔을 마시며 나눈 시조가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먼저 이방원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새로이 시작되는 왕조에 동참할 것을 은근히 권유하자, 정몽주가 “이몸이 죽어죽어 일백번 고쳐죽어…”하며 자신은 고려의 왕조에 변함없는 충성을 다 할 것이라는 뜻을 전했던 것이지요.
역사적 사실의 선악은 해석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 지금 그것을 가리려는 뜻은 없습니다. 단지 변화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두 시조의 내용은 각각 ‘변화’와 ‘신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변화와 신념은 묘한 관계입니다.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마치 신념이 없는 듯하고, 신념있게 행동하다 보면 변화된 상황을 놓쳐 판단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둘은 상반되지만 아주 중요한 개념이라 서로 놓치지도 말아야 하며 또한 치우치지도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해 갑니다.
다행인 것은 그 변화가 파도가 치는 것처럼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변화들이 소리도 없이 쌓이다가 어느 순간 큰 변화가 온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늘거리며 쌓이는 눈에 큰 나무의 굵은 가지가 뚝 부러져 버리듯이 말입니다.
변화와 신념의 관계가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름드리 나무로 의연하게 서있다가도 작은 눈송이가 쌓여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면 가지 하나를 뚝 부러뜨려 내는 것.
자잘한 변화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 그것은 신념이 없는 가벼운 행동이겠지만, 큰 변화의 시기에 변화하는 것은 신념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새로운 미지의 곳으로 두려움없이 뛰어드는 용기는 신념이 없다면 불가능하니까요.
요즈음 세상은 참 빠르게 변화합니다.
오랜 인간의 역사에는 이런 변화의 시기가 몇 번 있었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어떤 틀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10년 후일지 100년 후일지는 아무도 모르죠. 단지 우리가 사는 지금은 변화의 시기라는 것입니다.
이미 가지고 있던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면 새로운 많은 것들이 보인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정몽주의 충정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요즈음은 이방원의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개가 좋아보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변화의 시기에는 그 기준조차 변할 때가 있으니 더욱 어렵죠. 마음을 가볍게 갖고 새로운 것을 즐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관심을 갖고 즐기다 보면 내게도 큰 변화의 물결이 찾아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때에는 용기를 갖고 새로운 세상으로 뛰어드는 것이죠.
생각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바로 나를 바꾼다는 말입니다.
이효연
소래안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