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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0번째) 전역증 한장

Relay Essay
제1830번째

 

전역증 한장


내가 군에서 본 일이다.
웬 군의관 하나가 의무대장실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전역증 한 장을 내 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전역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대장의 입을 쳐다본다. 대장은 군의관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참모총장 직인을 확인하고는 “진짜다” 하고 내어준다. 그는 ‘진짜다’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전역증을 받아서 깔깔이 깊이 집어 넣고 경례를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인사 참모를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전역증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전역해도 된다는 전역증입니까?” 하고 묻는다.
인사 참모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전역증을 위조했나?” 군의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지 말입니다.”
“그러면 군에 말뚝이라도 박겠다는 건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3년을 오매불망 이 날만 기다렸습니다. 어서 도로 주시지 말입니다.”
군의관은 손을 내밀었다. 인사 참모는 웃으면서 “진짜다”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깔깔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전역증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군복위로 그 전역증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얼마를 걸어가 PX 뒤 으슥한 곳에 쪼그리고 앉아서 전역증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 보고 있었다. 그가 어찌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 종이가 대체 뭔데 그러오?”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위조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단기 군의관에게 쉽게 전역증을 줍니까? 포상휴가 한번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표창장 한 장 주시는 사단장님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8주간 영천의 칼바람을 맞으며 임관했습니다. 1년 동안 강원도 최전방 30년 된 얼음관사에서 겨울을 나고 1년을 버텼습니다. 그렇게 모은 교류점수로 후방으로 교류해 다시 2년을 국방부 달력만 보면서 버텼습니다. 그리하여 겨우 이 귀한 종이 한 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종이 한 장을 얻느라고 38개월이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 까지 애를 써서 그 종이에 집착한단 말이오? 그 종이로 무얼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전역이… 전역이 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3년간 야전에서, 군병원에서 고생하신 군의 40기 치과군의관 대위님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전역을 축하드립니다.
 더불어 전국 각지에서 고생하신 공중보건의 선생님들도 소집해제를 축하드립니다. 지난 3년간 참 부러웠지 말입니다. 모두들 사회로 나가셔서 건승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장용욱
예비역 치과군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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