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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4번째) 나의 하루

Relay Essay


제1834번째

  

나의 하루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등교하면 그때부터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씽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시작으로 세탁기를 돌리고 이불을 개고 청소기를 돌리고 이방저방을 정리하고 늦은 아침을 먹으며 한가로이 TV를 본다.
얼마 전 20년간 경영하던 치과를 접고 집에 들어앉아 전업주부의 생활을 시작했다.
편하기만 할 거라는 내 생각은 하루 만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학교 등교하자마자 준비물을 잊고 왔으니 갖다 달라는 딸아이의 호출에 세수도 않고 학교에 뛰어가기도 하고, 비오는 날 챙겨주지 못한 우산을 들고 학교 운동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기가 일쑤고, 다른 엄마들이 문제없이 척척 준비하는 학교과제도 엉망으로 준비해 아이를 난감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집안일이란 것이 안하려고 맘먹으면 할 일이 거의 없지만 맘먹고 덤비면 끝이 없는 중노동이라는 걸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집에서 쉬면서 이것저것 못해봤던 일들을 하며 여유 있고 재미있게 보내겠다는 나의 각오는 이미 물 건너간 지 오래다.
늦은 결혼과 출산으로 얻은 나의 아이들은 엄마의 많은 나이를 부담으로 느끼는 걸까…….
가끔은 내가 모르는 이상한 어휘를 말하며 두 아이들만의 언어소통을 할 때는 나 혼자 외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세대차이라는 게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물밀 듯 밀려온다. “뭐라고 말한 거야?”라고 물으면 “헐, 엄마 그것도 몰라, 대박!”이라며 자기들끼리 깔깔대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하기도 하다.
컴퓨터로 하는 오락도 모자라서 휴대폰으로 하루 종일 게임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없는 그 동안에 이렇게 지냈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탄다. 나름 틈틈이 전화해서 책 읽으라고 아이들을 다그쳤었는데 아이들의 익숙한 게임 모습에 내가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먹먹하다.
치과에서는 환자 보면서 막힘이 없었던 것 같은데 나에게 집안일은 뭘 해도 잘할 수 없었던 인턴 생활 같다. TV보다가 찌개 태워먹기 일쑤고, 정수기물을 틀어놓고 다른 일하다가 부엌을 물바다로 만들기도 하고, 버리면 안 되는 아이들 물건을 버렸다가 쓰레기통을 뒤기도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가 마트 가는 바람에 불낼 뻔한 일이 생기면서 집안일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지금은 돌아가신 친정엄마도 직장생활을 하시다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전업주부가 되셨다. 엄마도 처음에는 음식이며 청소며 잘 하는 게 거의 없으셨지만 나중에는 꽤 능숙하게 집안일을 하셨던 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엄마가 집에 계시는 것이 너무 좋아서 학교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달려 왔었다.
“학교 잘 갔다 왔니? 배고프지 않니?”라는 그 말이 정말 좋았다. 엄마가 주무시고 계셔도 음식을 만들고 계셔도 전화로 친구와 수다를 떠시더라도 나는 엄마의 존재만으로도 만족했고 행복했다. 엄마가 집에 계신 후로는 텅 빈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친구집에 놀러가거나 밖에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가 다른 젊은 엄마들처럼 능숙하게 아이들에게 잘해 주지 못하지만 어릴 적 나의 경험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려고 노력한다. 길지 않을 수도 있는 나의 전업주부생활이 다소는 서툴고 사고 투성이지만 아이들이 나의 존재만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찰깍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뛰어 들어오고 있다.
“엄마 집에 있었네. 나 배고파!” 
“오늘 학교생활은 어땠어? 재미있었어?”
종알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오후 일과를 시작한다.

  

조선경
서울시여자치과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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