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이의 도보여행 ❶ 서울 한양도성 걷기
성곽따라 걷다보면
곳곳서 탄성이 절로
서울성곽은 600년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멀고 모호한 조선의 역사를 손에 잡힐 듯 눈앞에 끌어다 놓는다. 풍수지리와 유교 교리에 맞춰 설계되고 지어진 서울성곽은 조선의 핵심을 통째로 에워싼 화수분 같은 역사의 이야기 샘이다. 파면 팔수록 더 진귀하고 신기한 역사이야기들이 성곽 돌덩이 사이와 사대문, 사소문 사이로 쏟아져 나왔고, 알면 알수록 내밀한 역사가 걷는 이의 마음속으로 흘러든다. 각 구간의 성돌이 품은 그 시간의 흔적들과 공간감은 오늘날에도 수백 년 간 지속된 순성놀이로 그대로 살아난다.
#수백 년 간 내려온 전통 걷기문화
순성놀이란 서울성곽을 따라 도성 안팎을 걷는 놀이를 말한다. 실학자 유본예(1777~1842)의 ‘한경지략’과 유득공(1748~1807)의 ‘경도잡지’를 통해 순성놀이가 오래된 한양의 풍습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순성놀이를 ‘봄과 여름철에 성안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 둘레를 따라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하는 멋진 놀이’로 설명한다.
한양을 사방에서 둘러싼 내사산(內四山·인왕산~북악산~낙산~남산)의 자연적인 지형을 따라 축조된 한양도성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도 방어형 산성이다. 사적 10호로 지정된 서울 한양도성은 길이가 총 연장 18.6㎞에 달한다. 이중 약 5㎞ 구간이 완전 멸실되었고, 13㎞ 구간이 온전히 남아있거나 복원중이어서 실감나는 성곽걷기가 가능하다.
태조 5년(1396)에 축성을 시작한 서울 한양도성은 49일 만에 1차 축성을 스피드 있게 마무리했고, 곧 2차 축성을 하며 사대문과 사소문 등을 완공한다. 이후로 세종(1422)때 흙으로 쌓은 구간을 모두 돌로 고쳐 쌓았으며, 숭례문을 완전히 해체하여 새롭게 지었다. 또한 숙종 30년(1704)에도 약 5년간에 걸쳐 대대적으로 성곽을 고쳐 쌓았다. 지금도 성곽을 걷다보면 태조, 세종, 숙종 당시의 축성기법이 혼합되어 있는 성벽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외의 왕조 때에도 치세가 편안할 때는 성벽을 고쳐쌓거나 문을 보수하고 고쳐짓는 일이 다반사였다. 비교적 근대에 고쳐진 흥인지문(동대문)은 고종 5년에 완전히 새롭게 보수했다. 이 때문에 흥인지문은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목조건축물로 꼽힌다.
서울 한양도성에는 풍수지리에 입각해 각 방향으로 네 개의 대문과 그 사이에 작은 소문을 두었다. 각 방위별 대문의 이름은 남대문(숭례문·崇禮門), 서대문(돈의문·敦義門), 북대문(숙정문·肅淸門), 동대문(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유교에서 사람이 지켜야할 다섯 가지 덕목으로 꼽는 오륜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따서 이름을 지었으나 북대문인 숙정문만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그 대신 숙종 때 축성된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탕춘대성의 홍지문(洪智門)에 ‘지’자가 들어갔고, 도성의 중심인 보신각(普信閣)에 ‘신’자를 넣어 이를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