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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1838번째]치과의사와 포정해우

Relay Essay

제1838번째


치과의사와 포정해우


“선생님 저도 이다음에 커서 치과의사 될거에요!”


“그래? 왜?”


“되게 쉬워 보이는데요, 그런데도 돈은 되게 많이 받잖아요!”


바람은 아직 쌀쌀하지만 그래도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은 따스하게 느껴지던 토요일 오후, 진료 받는 아버지를 유심히 지켜보던 꼬마 아가씨가 갑작스레 밝힌 장래희망. 아이의 아버지는 혹시라도 실례가 될까봐 제 눈치를 살폈지만 저는 무척이나 유쾌해 졌습니다.


사실 어린 소녀가 했던 천진한 이야기는 30년 전 그 나이 즈음의 제가 지금의 제 나이와 비슷한 아버지에게 했던 이야기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당시 제 이야기를 들으신 아버지 역시 오늘의 저처럼 빙그레 웃고 넘어가셨지만 내심은 무척 기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장자의 포정해우(庖丁解牛)에는 서툰 백정은 무리해서 뼈를 가르기 때문에 매달 칼을 바꿔야하고 솜씨 좋은 백정이라도 뼈를 피해 살을 가르기 때문에 일 년에 한번은 칼을 바꿔야 하지만 포정은 살과 살 사이의 공간으로만 칼을 움직이기 때문에 십구 년을 써도 칼이 새것 같았고 마치 춤을 추듯 쉽게 소를 해체 했기에 이를 지켜보던 문혜군이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며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치과계에는 갓 치과의사가 되어서 처음 진료를 시작할 때는 이의 썩은 부분 하나만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 온전한 이 하나가 보이고 더 시간이 지나면 입안 전체가 보이다가 좀 더 지나면 사람 전부가 보이게 되고 더 나아가면 환자의 표정만 보고도 환자의 진단은 물론 경제 사정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이것은 “처음 소잡는 일을 할 때는 보이는 것이 오로지 소뿐이라 어찌 해야 할지 몰랐지만 3년이 지난 후 부터는 온전한 소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아 눈이 아닌 마음으로 일할 뿐입니다”하는 포정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경험이 많으신 노교수님이 농담을 섞어 가면서 하는 진료는 마치 어린아이가 병원 놀이를 하는 것 마냥 편안하고 즐거워 보입니다. 수백, 수천번을 해본 진료이기에 진료를 하면서도 주변 상황과 환자의 어려움을 충분히 배려할 여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그런 경지에 미치지 못한 미숙한 치과의사가 진료를 할 때는 진료를 하는 그 자체에만 급급해서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환자의 얼굴에 심하게 물이 튀지는 않는지, 입술을 너무 당겨서 아파하지는 않는지, 혹은 너무 심한 공포감으로 인해 가벼운 접촉도 동통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은지, 환자에게 협조를 구하는 목소리가 부드럽지 못하고 날이 서 있지는 않은지 등등 환자가 불편해 할 모든 부분을 배려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보 의사가 진료하는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몹시 힘들어 보입니다. 치과의사는 “아, 좀 크게 하세요! 조금만 참으세요! 원래 아픈 겁니다!” 식으로 끊임없이 짜증 섞인 소리를 지르고 그런 의사의 흥분이 그대로 전달된 환자는 여느 때라면 가볍게 넘길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해서 점점 더 상황을 어렵게 만들어갑니다. 여기에 더해서 힘들어 하는 환자를 진정 시켜야 할 의사 역시 환자의 작은 반응에도 ‘내가 뭘 잘못한건가? 아닐 거야.’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변호하기 바쁘니, 의사와 환자의 소통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결국 온몸을 적시는 땀과 간단한 치료조차 쉽게 마무리 못 했다는 자괴감만이 남습니다.


남의 이야기 하듯 하긴 했지만 사실 위에 쓴 이야기는 불과 얼마 전까지 제가 진료하던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그러던 저였는데 어느 새 옆에서 지켜보던 꼬마 친구가 “치과의사는 참 쉬운 직업이네요. 저도 할래요” 하고 이야기할 만큼 편안하게 진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니 포정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덧 일 년에 한번 칼을 바꾸는 백정정도는 된 것 같아 유쾌해 진 것입니다.


“그래 우리 OO이 라면 틀림없이 훌륭한 치과의사가 될 수 있을 거야”라는 30년 전 아버지가 저에게 해 주셨던 대답을 그대로 되풀이 하면서 당시 아버지가 속으로 삼키셨을 것이 분명한 한마디를 저 역시 속으로 몇 차례 되뇌면서 가볍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십년은 힘들게 고생한 다음에 말이야.”

  

이승훈
이수백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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