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842번째
꼴찌마의 마주
96전96패. 내가 갖고 있는 경주마 차밍걸의 성적이다.
경주마는 우승을 못할 경우 연패(連敗)로 친다.
1922년 마사회가 생긴 이래 최다 연패기록을 수립했다. 그리고 현역마 중 최다출주 기록을 갖게 됐다. 이제 기록을 보유한 명마가 되었다.
사람들은 왜 똥말을 퇴출시키지 않고 갖고 있느냐고 반문한다. 똥말이라고 부르는것도 싫다. 나는 꼴찌마의 눈망울을 보면서 희망을 잃지 않았다. 주루에서 최선을 다해 꼴찌를 모면하는 모습에 격려를 보냈고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리고 차밍걸을 통해 행복을 느꼈다. 이러한 모습에 감동되어서인지 차밍걸 팬클럽이 생겼다. 차밍걸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자기들도 희망을 가졌다고 많은 팬들은 말한다.
최다 연패를 기록하던 날 경마공원에서는 많은 경마팬들이 1등말보다 꼴찌마 차밍걸에게 더 많은 박수를 보냈고 베팅도 많이 해주며 격려했다. 소시민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감동의 도가니였다.
많은 매스컴들이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가질 줄은 몰랐다. 차밍걸이 스타가 되는 날이었다.
중앙일보 기사를 필두로 동아일보, 경향신문, SBS, MBC, 채널A(동아채널)등 많은 기자들이 모여 취재열을 올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자들은 기삿거리가 되어야 몰려든다는 속성을 나는 안다.
어려운 시기에 뒤쳐진 꼴찌들에게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의 박수를 보내기 위함이었으리라.
차밍걸은 2005년 출생한 8살짜리 제주산 암말이다. 처음부터 체중도 적고 약골 이였다. 기대하기 힘든 말이였다. 보통 경주마가 500kg이상인데 430kg이다. 2008년부터 출주시켰으니 5년째가 된다. 5년 동안에 96회 완주는 대단한 기록이다. 보통 경주마들은 1년에 10~12번을 뛰는 것이 고작이다. 2달에 3번꼴로 뛰었으니 대단한 기록이다. 한번 출주하면 체중이 10kg정도 빠지고 며칠 동안 끙끙 앓는다. 그러나 차밍걸은 회복이 빨라 한달에 두번도 뛰었다. 체중이 보통 경주마보다 100kg정도 적게 나가는 것이 장점이 되어 관절염이나 골막인대 질환 등 경주마들이 고생하는 질병에 시달리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오랜 기간 동안 롱런 할 수 있었다. 사람도 비만해지면 허리와 무릎에 질병이 생기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노름방에서는 노름 잘하는 놈이 최고이고 노래방에서는 노래 잘하는 놈이 대우 받는 것이 세상의 상식이다. 1등만을 기억하는 마주세계에서는 더 심하다. 1등 아니면 전부 패배로 치고 시상식도 1등만 열어준다. 경마장 마주 전용실에 가보면 1등으로 들어오는 마주들은 기세등등하고 꼴찌마 마주들은 침묵에 빠져 기가 죽는다. 마치 자기가 1등한 것처럼 사기충천한다. 어쩌다 연말 송년회에 가보면 그해 성적이 좋았던 말들의 마주들은 기세 등등 개선장군이 된 듯한 기분이다.
세상사도 한가지다. 공부 잘해 좋은 직장 구하고 돈 잘버는 아이를 가진 부모는 자랑하고 싶어 근질근질하고 온통 자랑거리이다. 그렇지 못해 뒤처지고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소외되고 관심 밖이다. 돈 잘 번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다. 부족한 자식에게 더 애정을 갖게 되고 고통을 이겨내며 부모 자식 간에 깊은 애정을 나누고 희생하는 부모의 삶이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돈을 많이 버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나누고 극복하고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데 있다.
나는 차밍걸의 눈망울을 보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100전 도전에 희망을 걸고 있다.
비록 돈벌이는 안 되지만 1등만 대접받는 세상에서 꼴찌 인생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능력이 부족하다고 쉽게 버리거나 포기하고 홀대받는 것이 세상사다. 일등이 있기 위해서는 꼴찌의 역할도 중요하고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런 사회풍토를 만들어야한다. 우리사회에 부족한 사람에게 배려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차밍걸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차밍걸이 주루에서 사라질 날이 멀지 않다. 스타가 된 차밍걸을 은퇴 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나의 고민거리가 됐다. 나에게 행복을 준만큼 더 행복하게 여생을 보내게 해주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은퇴이후에도 많은 이에게 기쁨을 주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결승선에 도달하는 순간은 함성과 탄성이 교차되며 누구나 1등하길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변영남
대한치과의사학회 명예회장 / 성신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