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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1848번째] 하의실종

Relay Essay
제1848번째

 

하의실종

 

노출의 계절이다.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겠지만 1970년대 소위 유신 시대에는 ‘잘 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많은 규제가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남자들의 장발과 여자들의 짧은 미니스커트 단속이다. 그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군사 정권 시절에는 가능했다. 죄명은 우리의 고유한 미풍 양식을 해치는 행위로써 사회기강의 해이와 풍기를 문란케 한 경범죄이다. 유신 정권은 경범죄 처벌법을 만들어 긴 머리를 한 남자와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갔다. 단속 경관들은 주로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거리를 한 손엔 가위, 다른 한 손엔 30센티미터 자를 들고 다녔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음악다방이나 시외버스 터미널 대합실에서도 단속을 했다.


대로변에서 짧은치마를 젊은 여자의 무릎 아래, 경관이 꿇어 앉아 허벅지에 잣대를 대고 재는 모습은 한마디로 엽기 그 자체였다. 평소 짧은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여성들은 경찰이 보이면 치마끈이 엉덩이에 걸리도록 끌어내렸다. 남자들은 여자 친구가 큰 길에서 치마를 밑으로 내리는 걸 도와주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졌다. 경찰이 부르면 바로 돌아서서 도망가고, 제발 이제 다시는 부르지도 말라고 절규하던 시절, 이 때문에 엉뚱하게도 송창식의 노래 ‘왜 불러’가 금지곡이 되고 만 것은 코미디 같은 실화이다.


경찰들의 단속은 형에게도 찾아왔다. 평소 장발로 한껏 멋 부리던 사회 초년생 형과 길을 가는 중에 갑자기 맞은편에서 마주친 단속반 일행을 피할 수 없었다. 더벅머리가 된 형은 그 길로 이발소에 가서 아예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다. 이발을 하는 내내 굳게 다문 형의 눈에서는 그렁그렁 눈물방울이 맺혔다. 그들이 서슬 퍼렇게 가위 들고 설치며 깎고 잘라낸 것은 오로지 우리의 머리카락뿐이었을까?


이제는 한낱 옛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오늘날 길거리의 풍경은 어떠한가? 30여 년 전과 비교하면 참으로 대조적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지금 그때처럼 무릎 위 치마 길이를 잰다면 30센티미터 자로는 어림없고 줄자를 가지고 재어야 할 판이다. 투피스는 그래도 짧으나마 상의와 치마 구분이 된다. 짧은 원피스 차림은 그야말로 하의 실종이다. 처음 볼 때는 ‘과다 노출증’을 가진 환자쯤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보편화되어 있는 것 같다. 이른바 하의 실종의 평준화가 된 셈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하의 실종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보다 긍정적인 면에 의미를 더 두고 싶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감추는 것은 더 이상 미덕이 아니며, 오히려 당당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미의 잣대가 되는 시대라는 생각이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가이드라인이 있긴 하지만 만족을 중시하는데 동조하고 싶다. 요즘 같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자신감을 갖는 것이 나름 정신 건강에 좋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옷의 기원사에 나오는 여러 가지 설(說)중에서 수치설이 있다. 인간이 피복물이 생긴 후에 수치의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우리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는 맨 처음 벌거숭이로 살았으나 아무렇지도 않았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지혜의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죄를 짓고 지혜의 눈을 뜨기 전까지는 수치심을 전혀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염두에 둬야할 것은 의복이 그 사람의 품위와 인격을 나타내주는 만큼 때와 장소를 구분할 줄 아는 지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자기의 개성과 욕구를 한껏 뽐 낼 수 있도록 건강을 가꾸고 드러내어 과시하면서 100세 장수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광화
김광화치과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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