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858번째
꽃보다 고운 연두!
“꽃보다 붉은 것이 단풍이요, 꽃보다 고운 것이 연두!”라는 말이 있습니다. 11월 초 이른 아침, 맑은 하늘 아래 피어난 단풍에 차가운 햇살이 비칠 때의 단풍 색깔은 장미보다 더 붉고, 개나리보다 더 노랗지요. 계절의 여왕으로 5월을 꼽지만 4월 중순에서 하순으로 넘어갈 즈음, 산과 들에 피어오르는 새순들! 그 여린 듯 부드러우면서 촉촉한 생명이 느껴지는 연두를 보노라면 갓난아기의 꺄르르 웃음이 느껴지고, 수줍은 소녀의 작은 손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연두색 이파리에 낮은 햇살이 역광으로 비치기라도 하면 세상에서 제일 고운 색이 연두라는 말에 이의를 달고 싶은 자 없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니가 젤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연두’라 대답합니다.(물론 가족을 제외한 질문이겠지요.) 연두를 즐기기 위해 산으로 들로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연두를 잘 기록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 공부하고, 산으로 들로 연두 보러 다니려면 체력이 필요하니까 마라톤과 MTB를 즐기고, 다양한 연두를 보기 위해 그림과 사진 보기를 즐겨하며, 연두를 더욱 싱그럽게 하기위해 음악을 곁들인다고 술 취한 어느 날 지껄인 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세상을 보는, 즐기는 관점이 바뀌게 된 두 번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게 된 것과, 그냥 어느 봄날 연두가 환하게 빛나며 내 가슴에 들어온 것입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보면서는 그림을, 건축물을, 산과 들을 아이를 돌보듯 따뜻한 눈으로 아름답게 보는 시각도 있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당위성을 기준으로 삶을 만들어가던 대학생 시절 어느 해 봄, 무심히 걷던 산길에 내리는 햇살을 받은 연두색 나뭇잎이 그렇게 예쁘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나뭇잎인데. 역광으로 빛을 머금은 나뭇잎이 부드러운 바람에 나부끼면서 반짝반짝 빛나던 그 날은 함께 놀러간 여자에겐 별 감흥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세상에서 젤 좋은 연두는 5월 중순이 넘어가면서 사나운 초록색으로 변합니다. 여름이 되면서 나뭇잎은 초록색을 지나 군청색이 감돌게 되고, 가을이 되면 노랗게, 빨갛게 단풍이 들게 됩니다. 연두만 못하지만 초록색도 좋고, 심술궂은 녹색도 좋고, 단풍도 좋지요. 큰 산에 오를 필요 없이 가까운 공원에, 야산에 가기만 하면 자연이 우리를 반깁니다. 가로수와 길가의 꽃을 유심히 보면 지자체에서 상당히 신경쓰고 관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린 그저 눈과 가슴을 크게 열고 즐기기만 하면 되지요.
우리는 최고 미인 김태희나, 최고의 예술작품 고흐의 그림보다 자연을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꼽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나무가 일렬로 줄지어 있거나, 바위가 사람이 의도적으로 조각해 놓은 것 같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멋진 광경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지요. 자연은 그냥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길가에 소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자연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겠지요.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과, 느낄 수 있는 마음만 열어 놓는다면 우리는 항상 흐뭇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형재
좋은사람 좋은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