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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y Essay 제1876번째] 유산여독서라…

Relay Essay
제1876번째


유산여독서라…
(遊山如讀書)  


제가 2년 전에도 ‘산과 물은 서로 거스르지 아니하니…’라는 제목으로 게재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백두대간을 비롯한 수많은 산줄기에 있는 분수령들을 우리 인생에 비유하면서 글을 올렸습니다. 오늘은 산행을 자기수양의 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산과 교감하는 것을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왜 산에 오르는가에 대한 물음에 한 유명한 산악인은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등산이 건강에 좋기 때문이라고 얘기합니다. 물론 그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산행은 그 자체로 정신수양이며 건강은 자연히 따라온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않을까요?


조선조 대학자 퇴계 이황선생(1501~1570)의 시비의 제목이 ‘독서여유산(讀書如遊山)’입니다. 이는 청나라 대 문장가 기효람의 서재에 있다는 시의 제목인데 선생은 한 차원 높여 ‘유산여독서(遊山如讀書)’라고 하였습니다. 기효람이 독서의 즐거움을 산행중 신비로움에 비유하였지만 퇴계선생은 산행을 독서에 비유하여 정신수양의 좋은 방법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산에 드는 것이 책을 읽는 것과 같다니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선생은 명종 때 을사사화(1545년)등 어지러웠던 조정에서 물러나 낙향하였습니다. 그리고 안동 도산서원에서 북쪽으로 약 십이삼 킬로미터 떨어진 청량산(870m)을 자주 올랐다고 합니다.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수려한 청량산에 오른 뒤 돌아오는 하루의 여정은 정말로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 중에 많은 사색을 하고 나라의 안녕을 걱정하셨겠지요. 도산서원의 방에 앉아 글을 읽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 많은 마음의 수양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책에서는 지식을 얻지만 지혜는 고요한 사색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선생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제 외람되지만 산행을 수양으로 생각하는 저의 산행 철학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산행을 하면서 항상 염두에 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관수세심(觀水洗心), 관화향심(觀花香心), 관목유심(觀木柔心), 관암강심(觀岩强心), 그리고 관봉덕심(觀峰德心)입니다.


우리가 산에 들기 시작하면 먼저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는 숨이 차지 않아도 물가의 반반한 바위가 보이면 잠시 앉아서 흐르는 물줄기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그동안 세속에서 묻은 온갖 때들을 그 물에 씻어내서 마음을 닦아 정갈하게 합니다. 관수세심(觀水洗心)입니다. 이어서 골짜기로 더 깊이 들어가면 여기저기 향기로운 꽃들이 피어 있습니다. 그 꽃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면 더욱 반가워하겠지요. 그러면 저의 마음도 향기로 채워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집니다. 관화향심(觀花香心)입니다. 골짜기를 벗어나면 이제 능선으로 오르게 됩니다. 대부분의 능선에는 멋들어진 나무들이 조금씩 숨이 차면서 올라오는 저를 손짓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야가 트이고 사방으로 유연하게 뻗은 나뭇가지들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 마음도 그렇게 부드러워집니다. 관목유심(觀木柔心)입니다. 이윽고 능선을 한참 지나 정상에 가까워지면 커다란 바위들이 간간히 떡 버티고 있습니다. 오래 세월을 풍파에 시달렸지만 믿음직스럽고 우직하게 보입니다. 저도 그런 바위들을 닮아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관암강심(觀岩强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참 더 땀을 흘리고 나면 드디어 정상의 봉우리가 시야에 나타납니다. 멀리 다른 봉우리들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봉우리들은 항상 그 자리에 서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저를 맞아 줍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그 품에 안고 있습니다. 저는 그 후덕한 모습을 배워 너그러운 마음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관봉덕심(觀峰德心)입니다.


우리가 산의 정상에 이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많습니다. 첫째로는 하늘을 봅니다. 부끄럼이 없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는 수많은 다른 산봉우리들을 봅니다. 혼자서 사는 세상이 아님을 명심합니다. 또한 산 아래로는 많은 것들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부릴 수 있는 아랫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보살펴야할 사람들이 그 만큼 더 많아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산이 저를 지켜볼 때는 마치 제가 제 발등에 기어오르는 작은 개미 한 마리를 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어떻게 제가 겸손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왜 산에 오르느냐고 제게 묻는다면 산은 자신의 품으로 오라고 저를 부르고 저는 기꺼이 그 품에 안기노라고 대답하겠습니다. 치의신보를 보고 이 졸필을 읽어보신 모든 분들은 산행을 가시거든 그 산의 품에 안기는 마음을 가져보십시오. 산이 높은 것이 꼭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러나 그 만큼 많은 것을 볼 수는 있습니다. 비록 낮은 산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몸을 기꺼이 산에 맡겨 보십시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산에서 보는 모든 것들과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그러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신의 모습과 안식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종오
전주 서울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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