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의도 치의" 왜? 일반진료 안되나 헌법소원
대학병원 교정과 수련의 출신의 30대 후반 A원장은 지역사회에서 개원 7년차에 접어들며 주변에 ‘교정 잘하는 치과’라는 평을 듣고 있다. 개원가에 나와 임상케이스가 쌓일수록 자신감이 붙어 이제야 진짜 진료에 눈이 뜨인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옆 상가건물에 ‘교정과’를 표방한 치과의원이 신규 개원했다. 알고 보니 자신보다 몇 학번이 낮은 교정과 전문의가 전문과목을 표방하고 나선 것.
“원장님은 전문의가 아니세요?”, “옆 병원 전문의가 더 교정을 잘하는 것 아니에요?”라는 환자들의 질문에 화가 치미는 마음, 어쩔 수가 없다.
내년부터 거리의 시민들이 전문과목이 명시된 치과간판들을 만날 수 있게 된다.
2014년 1월 1일부터 전문의가 자신의 전문과목을 병원 외부에 홍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전문과목을 표시한 치과의원은 표시한 전문과목에 해당하는 환자만을 진료해야 한다’는 의료법 77조3항이란 단서조항이 있긴 하지만, ‘치과의사도 전문의가 있다’는 사실이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드러남에 따라 이를 바라보는 치과계 각 구성원의 심정이 복잡하다.
자신들의 진료권이 침해된다고 생각하는 전문의들의 반발과 이들에게 적절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개원가의 고민, 경과조치를 요구하는 기존수련자들의 집단행동 등 전문의제도가 안고 있는 문제 전반이 연쇄적으로 폭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전문의들은 치과계가 우려해 왔던 데로 지난달 26일 의료법 77조3항의 위헌 판결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관련법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낸 상태라 재판부의 판결이 주목되는데, 소송을 진행하는 측에서는 의과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재판부가 위헌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앞서 전문의들은 의료법 77조3항과 관련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전문과목 표방여부에 대한 심각한 고민들을 해 왔다.
치주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한 페이닥터는 “진료영역을 제한하는 법도 그렇고 주변 개원가와 마찰도 피하고 싶어 개원 시 전문과목을 내세우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치과진료의 특성상 연계된 진료가 많아 하나의 전문과목 진료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드물고, 전문의이기 이전에 치과의사로서, 또 환자편의적인 차원에서 진료영역에 대한 규제가 옳은가라는 의문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법 77조3항에 대해서는 시기가 문제였지 곧 법적인 문제제기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생각보다 빠른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재판결과에 따라 전문의들이 전문과목 표방여부를 재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의들의 병원 개원 시 표방이 확실 시 되는 과목들은 교정과나 소아치과 등 진료영역이 확실한 분야. 그러나 전문과목만 진료해 경영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치주나 보존, 구강내과 전문의들도 자신의 전문성을 살리는 것이 병원홍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전문과목을 표방하려는 경우가 상당수인 것으로 파악되며, 이 같은 인식의 밑바탕에는 의료법 77조3항의 규제력이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시각이 깔려있다.
전문의가 의료법 77조3항에 위배되는 행위를 할 경우 복지부장관이나 해당지역 지자체장은 시정명령에 이어 업무정지 15일 등의 처분을 내릴 수 있는데, 치과계 일각에서는 법 시행에 따른 관리·감독이 엄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규제 근거가 되는 전문과목별 진료영역 구분문제는 진료영역이 겹치는 경우의 수가 8000여 가지에 달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오는 등 애초에 각 분과학회와 공직의 교수들이 정확한 영역구분에 난색을 표한 상황이라 관련법의 이행여부를 정확히 판단할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 문제와 관련 치협은 전공의 교과과정에 명시된 진료항목들을 근거로 진료영역을 구분해 가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분과학회와 정부, 시민단체 관계자와 법률전문가가 참여하는 ‘치과 전문과목별 진료영역 구분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분쟁이 생기는 건별로 대응해 나가겠다는 대책을 세우고 있다.
전문의의 진료영역에 대한 분쟁은 전문과목을 표방한 치과의 위법행위에 대한 주변 개원의 또는 지역치과의사회의 고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전문의의 전문과목 표방문제와 관련 개원가에서는 기존수련자들이 먼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존수련자 700여명이 지난 5일 전문의시험 응시원서를 접수, 이에 따른 현장 반려를 명분으로 이달 중 행정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번 소송에 동참하는 한 기존수련자는 “전문의들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수련과정에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누구는 전문과목을 표방하고 누구는 못한다는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앞서 국민권익위원회가 치과 기존수련자들에게 경과조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던 만큼 관련 소송에 자신 있다”고 밝혔다.
#실패한 의사전문의제 왜 답습 하려하나?
이 같은 움직임에 일반 치과의사로만 살아온 비수련자들은 ‘자신들에게도 전문의 자격취득기회를 달라’는 측과 ‘2001년 치협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의결했던 소수정예 원칙을 고수하자’는 측 두 갈래로 입장이 나뉘어졌다.
전문의 자격취득기회를 요구하는 측은 신설 전문과목을 통해 전문의제도 시행에 따른 모두에게 공평한 경과조치를 이제라도 달라는 입장이며, 소수정예 원칙을 고수하는 측은 앞서 선배치과의사들이 올바른 전문의제도 정착을 위해 희생했다는 점을 내세우며 제대로 된 의료전달체계의 안착을 위해서라도 의료법 77조3항이 강력히 지켜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의료법 77조3항의 강력한 시행을 주장하는 한 개원의는 “과거 소수정예 원칙을 세울 때는 무엇보다 치과에서 필요한 적정 전문의 수요를 고려해 가장 올바른 치과 의료전달체계를 세워야 한다는 고민이 바탕에 있었던 것”이라며 “현재 1차 의료기관까지 모두 전문의가 진료하고 있는 의과의 잘못된 예를 들어 의료법 77조3항의 위헌성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치과계가 그때그때의 혼란에 우왕좌왕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전문의의 배치문제, 이에 따른 정원수 조절과 일반 개원의들의 역할 등을 다시 처음부터 논의하는 등 올바른 치과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개원의는 “전문의가 실제 전문과목만 진료하고 있는지 일일이 다 살펴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기에는 불안하다. 전문의의 전문과목 표방문제를 놓고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법적인 판결을 떠나 혹여 전문의와 비전문의 간 감정싸움으로만 치달아 치과계 분위기가 더욱 악화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무언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의제 갈등 요소 빠른 조정 필요
지난 2008년 1회 전문의가 배출된 이래 올해 6회에 이르기까지 총 누적 전문의 수는 1571명.
전문의들이 아직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페이닥터나 공직의 펠로우, 군의관 등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아 내년부터 등장하는 전문과목 표방 치과가 개원가에 바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향후 2~3년 안에 전문의들이 고스란히 개원의로 안착을 시도할 것이라는 예상과 매년 300여명의 신규 전문의가 배출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전문의와 비전문의 간 갈등 요소에 대한 시급한 조정·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 구강외과 전문의는 “구강외과의 특수성을 살려 양악수술 등 전문진료를 할지 일반진료를 할지 고민이 크다”며 “전문과목 표방이 장점이 될지 오히려 환자를 제한하는 단점이 될지는 누구도 예측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