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 기고 - 나성식 원장·강신익 교수
“가난한 치과는 미래가 있어도
가치를 버린 치과는 미래가 없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올해 역시 사상 최악의 경쟁과 양극화 현상이 국내 치과 개원가를 지배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불황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는 명언이 새삼스럽게 부각되는 이유는 바로 진정한 생존의 전략이 ‘기본’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치과의사들이 처음 진료실에서 가운을 입고 환자를 대했을 때 가졌던 당시의 그 마음, 그 자세로 되돌아가자는 의미에서 연속 기획 시리즈를 지난 1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 월요일자로 게재하고 있다.
특히 이번 호에서는 치과계 오피니언 리더들의 기고를 통해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되새겨야 할 제언들을 공유한다.<편집자 주>
기본이 무엇인지 몰라서
편법을 따르는 사람은 없다
인정받는 치과의사인지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 판단도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어
안녕하세요.
어릴 적에 충치 치료 후 치과에 간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 어금니 충치통증으로 치과를 방문하여 어금니 충치 치료를 모두 받았어요.
(6개)충치가 1차, 2차, 3차 이렇게 나눈다고 하더라고요.
전 2차라 신경치료는 안 받아도 된다고 해서 그냥 레진(?) 흰색으로 모두 치료했어요.
제 치아사진을 찍어서 충치 파악을 할 때 사진 찍고 상담하고 모든 것을 다 실장이라는 사람이 하더군요.
치료비와 치료 방법 등을 다 실장이라는 젊은 여자 분이 하더라고요.
(참고로 안내데스크에 여자 두분이 앉아계시는데 그 분 중 한 분이었습니다) 의사는 절대 아니죠,
우선 치료를 하란 말에 현금으로 하면 30만원 깎아준다고 해서 현금 지불해서 다 했는데요.
이 내용은 인터넷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치과진료 후 불만상담의 질문을 보여준 것이다.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라 놀랄 일도 아닐 수 있지만 진료 후 치과전반에 대한 불신의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진위여부도 중요하겠지만 진료실에서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다.
더 이상 설명을 하지 않아도 무엇이 문제인지, 이 환자가 하고자하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진료환경이 열악하고 경영의 압박이 우리 목을 졸라 오고 있다. 외부환경과 싸우고, 설득하며, 적극적으로 우리의 입장을 설명해야 될 것들이 많지만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먼저 하자. 내부정리가 잘 되어야 밖으로도 강하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수선한 집안의 어지러운 꼴을 하고서 어떻게 바깥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더 늦기 전에 내실을 다지는 일에 중심을 잡자. 차근차근 한 발 한 발 옮겨보자.
이 시대 최고의 치과마케팅은 ‘내 이를 무덤까지’ 일 것이다. 안과가 눈 빼는 곳이 아니듯이 치과는 이 빼는 곳이라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운동이라도 벌여야한다.
요즘의 환자들은 발치에 대한 거부감이 예전에 비해 매우 크다. 국민들로부터 진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면 우리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더 늦기 전에 꼭 챙기고 함께 하자. 시간이 많지 않다. 어렵다고 이것 저것 다 버리면 무엇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국민은 우리 치과의사들을 그래도 양식과 기본이 있는 전문인들의 집단으로 대하고 있다. 우리끼리는 이 핑계 저 핑계 다 대는 걸 모두 다 용서할 수 있지만 국민은 가혹할 정도로 완전한 윤리를 요구한다. 경기가 어렵다고 가격과 편법으로 승부를 하면 결국 공멸밖에 없다. 진료의 가치에 힘을 주자. 지금 당장 어렵다고 진료의 가치마저 내팽개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더불어 전문인으로서의 덕목을 버리면 다시는 찾지 못할 것이다.
진료실에서의 불편한 진실은 우리와 함께 하는 치과위생사, 간호조무사, 치과기공사들로부터 존경은커녕 우리를 질시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원장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절름발이 허수아비일 뿐이다. 경제적 이득만을 좇는 동물 그 자체일 뿐이다.
기본이 무엇인지 몰라서 이런 편법을 따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금 불편하게 살면 다 해결될 것들이 많다. 지금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고 부족한 것에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 즐겁게 살 수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초심을 잃지 말자 등 격언 같은 말들이 많다. 과연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불편하지만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의 판단도 하나의 기준으로 생각할 수 있다.
환자의 편에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야당 역할의 직원들이 보는 시선을 따갑게 의식하면서 진료하는 것도 방법이다. 성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해야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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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기본으로 돌아가자 ■ 기고 - 나성식 원장·강신익 교수
기본인가 비전인가?
의사들을 비난할 때 흔히 쓰이는 수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술이어야 할 의술이 상술이 돼버렸다는 한탄이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문서는 2500년 전 그리스의 코스라는 작은 섬에 의학교를 세운 의사 히포크라테스가 신입생을 받거나 졸업생을 내보내면서 맺은 일종의 계약에서 유래한 것이다. 여기에는 언제나 환자의 편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해를 끼치지 않겠으며 직업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겠다는 도덕적 선언 말고도, 나에게 의술을 가르친 스승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기꺼이 그를 돕겠다는 사회경제적 선언이 포함돼 있다.
히포크라테스와 인술은
의료인을 비난하는 용도가 아니라
맥락에 맞게 해석되어
새로운 비전과 기본을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술과 낙태 그리고 환자와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내용도 있다. 그리고 이 선서를 지키거나 지키지 않았을 때 상이나 벌을 줄 여러 신들의 이름이 나열돼 있다. 선서를 한 의사들의 진정성을 상과 벌을 줄 수 있는 신의 권능에 의지해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선서는 2차 세계대전에서 무자비한 살육과 인체실험에 협력한 의사들로 인해 무너진 의료의 이념을 바로 세울 필요성을 느낀 세계의사협회가 히포크라테스의 권위에 의지해 이 고문서를 현실에 맞게 고쳐 쓴 것이다.
그러니까 고대의 선서가 스승과 제자 사이의 계약이라면 현대의 선서는 의사라는 직업의 명예를 되찾기 위한 의사집단의 일방적 선언인 셈이다. 이후 의사들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환자와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전문가 집단이므로 사회가 그들의 자율적 권위를 인정하고 충분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는 무언의 도덕적·사회적 계약이 성립되는데 이 계약의 정신을 프로페셔널리즘이라 한다.
지금은 거대한 상업화의 물결로 인해 그 근본정신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의사들은 이렇게 역사적 경험을 통해 축적된 무언의 도덕적 계약을 의사직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1세기 초에 유럽과 미국의 의사들이 프로페셔널리즘으로 다시 태어나자는 운동을 벌였던 것도 이렇게 돌아갈 기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잠시 비슷한 운동이 일어났지만 역사적 경험이 다른 탓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돌아갈 기본에 대한 축적된 경험이 부족했던 탓이다.
치과의사들도 의사들의 뒤를 이어 전문직의 지위를 얻는데 성공했지만 프로페셔널리즘의 정신을 위협하는 상업화의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창기 미국 치과의학의 역사는 이해타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스캔들로 얼룩져 있다. 윈브란트라는 작가는 그 역사를 기록한 자신의 책 제목을 ‘뼈아픈(excruciation) 치과의학사’라고 했을 정도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네트워크치과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안 아픈’ 파커(Painless Parker)다.
그는 환자의 신뢰를 얻기보다는 기상천외한 마케팅으로 환자를 끌어 모아 많은 돈을 번 치과의사로 ‘안 아픈’은 그의 이름이자 상표였다. 캘리포니아 치과의사협회가 진짜 이름만으로 개업을 할 수 있도록 강제하자 자신의 법적인 이름을 ‘안 아픈’으로 바꾸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이것은 초창기의 아주 극단적인 사례지만 미국의 지금 상황을 보아도 상업적 이해타산이 진료환경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공영방송인 PBS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돈과 치과의사(Dollors and Dentists)’를 보면 그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더 참담하다. 지난 몇 년간 치과계 내부의 전쟁이라고 할 만한 일이 벌어졌고 일단은 협회를 비롯한 주류의 승리로 정리가 돼가는 듯한 모양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기본을 찾은 건 아니다.
상업화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는 점에서는 미국과 한국의 치과계가 똑같지만, 거기에 대응하는 체계적 전략을 마련하려는 노력을 보면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미국의 치과계를 대표하는 ADA뿐 아니라 치과계의 양심으로 불리는 ACD(American College of Dentists), 그리고 위생사, 기공사, 기자재 산업, 치의학교육자 등의 대표들이 모두 모여 치과계의 미래 비전을 논의하는 치과정상회담을 여는가 하면, 미국치의학교육협회(ADEA ; American Dental Education Association)는 대규모 태스크포스를 꾸려 치의학 교육의 중심 가치와 교육목표를 재정의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해 활발한 토론의 씨앗으로 삼고 있다.
그 태스크포스의 이름이 ‘변화와 혁신 위원회’다. 그리고 변화를 주도할 여덟 가지 원칙 중 첫째가 성찰적 사유(Critical Thinking)다. 과거의 기본으로 돌아가기보다 자신들이 제시하는 비전을 통해 새로운 기본을 창출하겠다는 각오다. 세계 어디서나 보수적이기로 정평이 있는 의료계에 이만한 혁신의 바람이 분다는 사실은 그만큼 상황이 절실하다는 반증일 수 있다.
이러한 미국 치과계의 변화를 보면 우리들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우리에게도 돌아갈 기본을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고 10년 전 대의원총회를 통과한 치과의사윤리선언, 헌장, 지침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문서는 상업화의 물결에 노출되면서도 의료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의 산물이고 부족하고 결함이 많지만 치협의 공식문서다.
그런데 치과의사협회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오늘까지도 이 문서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 내용이 공개되면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들의 치부가 드러날 것이 두렵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대폭 개정해 현실에 맞도록 고치면 될 일이다. 미래의 비전을 통해 새로운 기본을 만들지는 못할망정 그나마 가지고 있는 기본마저 숨긴다면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은 위선적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지금 통용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2500년 전 고문서의 권위에 의탁해 그 세월동안 변치않고 이어져 온 의료의 중심 가치를 천명한 것이다. 의술이 인술이라는 규정은 유교문화권인 동아시아 전통사상에서 가져온 개념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간 정보통신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선서와 인술의 의미가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따라서 히포크라테스와 인술은 의료인을 비난하는 용도가 아니라 맥락에 맞게 해석돼 새로운 비전과 기본을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치과의사윤리선언과 헌장 지침도 마찬가지다. 눈앞의 이익이 아닌 치과의사 개인의 ‘행복’과 치과의사 전문직의 ‘미래’를 고민하는 치과의사가 많아지면 좋겠다. 인문학은 그런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생과 역사의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치과대학 최초의 의료인문학 교실을 개설한 필자의 소망이다.
영국의 치과의사들이 좌우명으로 삼는다는 경구는 비전과 기본을 고민하는 지금의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직업으로서의 치과의사 전문직과 치과의사 개인에게 주어진 국민과 환자의 신뢰와 존경이 합당함을 끊임없이 증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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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2196호(2014년 1월27일자) ‘기본으로 돌아가자’ 연중기획 첫 번째 시리즈에 게재된 1면 사진 속 치과들은 해당 기사의 특정한 사실과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