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닮은 이집트, 아비도스를 향해 가는길…
“아쌀라무 알레이쿰!”… 2011년 이집트 혁명이 있기 전, 카이로대학 그랜드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과 서방의 화해를 강조하는 역사적 연설에 앞서 ‘앗살람 알레이쿰’ 하고 인사하자 3000여명의 청중은 환호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아랍어로 ‘안녕하십니까?’ 정도의 보통 인사말이다. 누군가 인사해온다면 그냥 똑같이 ‘알레이쿰 살람’ 하면 된다. 본래 뜻은 “신의 평화가 당신에게”이고 화답은 “당신에게도 평화가” 이다. 사실 무슬림들 간에 사용하는 인사라고 하지만, 어느나라나 그렇듯… 여행자가 현지어로 인사하는 것에는 대게 환한 미소가 따르기 마련, 당신 무슬림이냐고 따져 묻거나 난 기독교인이라고 정색하지 않는다.
이제 이집트 여행이야기를 하려하지만… 앞서 이것은 얘기하고 싶다. 서방식 사고와 세계관에 익숙한 우리는 이슬람에 대해 대체로 무지하며, 때로 무례하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종교나 정치가 아닌 문화와 풍속,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우리의 개고기 문화에 서양 사람들이 어떤 편견을 가져왔는지를 생각한다면… 그의 몇 배 몇 십배 정도의 무지라고 해두고 싶다.
여행이야기에 굳이 이 이야기를 보태는 건, 우리는 서방국가도 아닌데 전 세계의 23%를 차지하는 이슬람과 여전히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무슬림 인구의 비율은 1900년 12%에서 2010년 23%로 두 배 증가했다. 참고로 기독교는 같은 기간 다소 줄어 32%이다. 유대-기독-이슬람은 같은 구약성서를 경전으로 하고 있다. 대장금에 환호하는 전 세계 23%의 그들, 실제로 한국 드라마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더욱 인기있다. 우리와 문화코드가 비슷(?)한 그들을 멀리하는 건 국가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보는 방송에서는 폭탄과 테러, 차도르나 부르카를 입고 고통 받는 여인, 양떼와 목동만을 보여줄 뿐이다.
한국에서 이슬람은 거의 폭력적인 외계문명 정도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을 보통 두려워하거나 무시한다는 점이다.
“우리와 닮은 그들, 방심하다”
이집트는 한 때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10년 전 처음 이집트에 갔을 때 보았던 카이로 시내와 작년 이맘 때, 딱 10년 뒤 아내와 다시찾은 이집트는 오랜 독재정권 때문인지 몇년 전의 혁명 때문인지, 관광객이 줄어들고 검문검색이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오래 전 그 땅에 살던 고대이집트인들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만큼이나 변화가 없어보였다. 오히려 관공서와 박물관, 여객터미널 등 교통시설, 지하철은 물론 주변 점포들의 네온사인과 간판에 이르기까지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는 모습의 카이로는 우리와는 달리 황량한 돌산과 사막을 배경으로 한 덕에 더욱 침체되어 보였다.
재스민 혁명으로 시작된 아랍의 봄에 이집트도 무바라크의 오랜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첫 민선 대통령이 선출되었지만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이슬람식 통치 방식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면서, 이를 지켜보던 군부는 정국혼란을 이유로 민선대통령을 몰아내고 다시 군인출신 대통령이 권좌에 올라 독재국가로 돌아가는 모양새이다. ‘그런 카메라 들고 다니면 위험해!’ 지나치는 이집션이 한마디 하고 간다. 그 혼란의 와중에 나는 폭풍의 눈에 있었다. 그야말로 잠시 고요했던 순간이다.
내가 이집트 민주화의 성지가 된 타흐리르 광장에 서기 한달 전 쯤, 바로 그 자리에서 수백명이 사망하고 외국인 기자가 성폭행을 당했다. 사실 그곳에 가서야 정확히 안 일이다. 왜 다른 여행자를 쉽게 볼 수 없었는지… 그리고 내가 귀국한 후, 시나이반도에서는 버스가 폭발했으며 타흐리르 광장은 다시 시위와 강경진압이 이어졌다.
잠깐 방심한 순간 또 다른 독재자가 나타난다. 그들의 새로운 군인출신 대통령을 보니… 어쩜 우리와 똑같을까? 혹시, 머리 벗겨진 군인은 다 위험한 걸까?
“아비도스로 가는 길…”
장소와 화제를 바꾸어… 이집트 남부의 아스완, 밤새 나일강을 따라 침대기차를 타고 온 길이다. 비행기 값보다 비싼 침대열차지만 하루 숙박을 겸하니 일정을 소화하기에는 비행기보다 좋은 선택이었다. 더구나 나일강을 따라 달리는 사막의 침대열차라니… 당연한 선택이다. 사실 10년 전 왔을때 보다 오른 물가와, 1/10로 줄어든 관광객을 노리는 바가지, 일정상의 여러문제, 불안정해진 여행시스템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많은 추억과 이야기를 담게해준 아스완, 그 아스완에서의 아름다운 섬들과 신전들, 사기꾼 선장과 열폭, 바로 앞에서 터진 폭탄테러 등을 이야기해야하는데 다음기회로 미루는 것이 아쉽지만 지금은 아비도스로 가야한다. 아비도스에 가는 이유 하나, 오시리스 신화의 중심지이자 고대이집트의 영웅 람세스 2세와 그의 아버지 세티 1세의 신전을 볼 수 있는데 이는 BC 1300년경, 제19왕조 때의 건축물이다. 특히 대부분의 신전들은 나일강의 범람으로 물에 잠기기를 반복하여 화려한 유채색의 부조는 거의 손상되어 있다. 하지만 아비도스의 신전은 여전히 화려한 채색과 독특한 건축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BC 3300년경에 조성된 초기 이집트 왕묘들도 있는 곳이다.
절대 포기할 수 없었던 그 곳. 오시리스의 아비도스를 가기위해 아스완에서 갔던 길을 되돌아 룩소르에 도착했다. 룩소르에서 아비도스는 차로 2~3시간 달려야하는데, 여행객이 거의 없어 과거와 같이 투어가 운영되지 않았다. 결국 개인승용차를 빌려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지평선 멀리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과 전형적인 이집트의 시골마을들을 지나고 비포장도로의 당나귀를 탄 사람들, 흙벽돌로 지은 집과 야자수, 특히 발굴된 유물의 잔해들이 길가에 끝을 모르고 방치되어 있었다. 어느 나라에선 박물관에 고이 소장할 그것들을… 참 흔한 풍경이다.
우리가 타고가던 차를 몰던 젊은 이집션 친구는 사실, 일종의 알바인 것으로… 룩소르의 ‘만도르’라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모든 일을 하는 자(?)의 친구로 소개받았는데, 아비도스 신전을 한번에 찾아가지도 못했다. 만도르가 하는 일이 늘 그런 편이지만 신뢰할 수 있는 친구이며, 덕분에 여행객의 발길이 닿지않는 사막의 시골마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 가면 그곳사람이 되어야… 인샬라~ 룩소르의 만도, 아스완의 만도친구 찰리는 꽤 유명하다. 그들은 사실상 호객꾼이지만 교통, 숙박, 관광에 한식도 직접 만들어 준다. 만도의 한식은 닭볶음탕이 전부다. 맛은 없지만 고마워서 먹어진다. 이일 저일 한국인들의 부탁을 들어주다보니 늘어난 일들일 것이다. 배낭여행 경험자들은 그들을 굳이 찾을 필요없지만, 가능한 무엇이든 도와주므로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아비도스에 가는 이유 둘, 아비도스 신전에 조각된 헬리콥터와 비행기, UFO를 닮은 물체를 직접 보기위해서다. 알수 없는 비행체 혹은 UFO라 불리는 존재는 다양한 모습으로 역사속에 등장한다. 성경을 비롯해 고대 바빌로니아의 ‘에타나서사시’, ‘길가메쉬서사시’, 고대 인도의 경전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비행체 등이다.
그것들은 인류가 하늘을 나는 무언가를 발명하기 전에 기록된 것으로 발굴당시 인류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이러한 관심과 흥미가 증폭되어 다음 여행지인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시리우스 우주과학 연구소를 찾아가기도 했다. 공상만화 같지만 UFO를 연구하는 실제 연구소 이름이다.
드디어 도착한 아비도스, 오시리스 신을 숭배하던 중심지로서 과거에는 큰 영화를 누렸으나 지금은 작은 시골마을로 관광객은 우리가 나올때 쯤에야 신전에 들어서자마자 헬리콥터를 찾는 외국인 몇 명을 보았을 뿐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찾아간 세티와 람세스의 신전에는 지금껏 그 많은 이집트 신전에서 보지못했던 색채들이 남아있었다. 다소 바랜듯 했지만 모든 것이 온전했을 당시를 상상하기엔 충분했다.
천장에는 이집트인들의 우주관이 조각 되어있고 거대한 기둥들이 곳곳에서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팀을 이루어 간 것이 아니기에 시간은 자유로웠고, 어딘가에 있을 고대 비행체를 찾아 이곳저곳 그럴듯한 곳을 찾아다녔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관리인에 물어 찾아낸 비행체는 천장에 그것도 처음 들어온 빛이 비치는 입구쪽에서 볼 수 있었다. 사진으로 봤던 그대로 였다. 헬리콥터, 잠수함, 제트기, UFO 등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훼손, 수정, 복구 등의 과정을 통해 ‘우연히 이렇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고 ‘고대 혹은 외계문명의 기록이다’는 주장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집트의 사하라 사막은 태초에 바다였고 지구의 기준으로 아주 오랜 기간 푸른 초원이었으며 최근에서야 사막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종교의 뿌리라는 이집트 신앙과 초고대문명,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 이 매력적인 나라가 빨리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동수 모아치과네트워크 그룹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