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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선배, 허세욱

Relay Essay-제2050, 51번째

내가 허세욱 선배를 처음 만난 것은 십여 년 전 대한치과의사문인회(치문회)의 세종문화회관 월례모임 자리에서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치문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유명 문인들을 초청하여 문학 강좌를 개최하는데 때마침 허세욱 선배가 연자로 초빙되었던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리남성고 선배이신 허세욱 교수님의 문학세계와 학문적 업적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나에게는 미리부터 흥분과 기대에 차 있던 만남이었지만, 막상 얼굴을 뵙고는 감히 말문조차 떼기도 어려워 그냥 조용히 앉아 말씀만 듣고 있었다.

이 전에 사진으로는 간혹 뵈었었지만 그토록 인물이 훤칠한 미남이신 줄은 미처 몰랐다. 가녀린 모습의 학자풍으로만 상상하고 있었는데 인자한 모습과 정감 어린 목소리를 가진 키 큰 호남 형이셨던 것이다.

문학 강좌가 끝나고 화기애애한 여담이 오갈 때 허 선배님이 번역한 중국시인 ‘지센’의 ‘배’를 지금도 자주 암송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좌중이 모두 놀라는 것이었다. 그 시가 한동안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후로 이미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한 번 외워보라’는 허 선배님의 말씀에 암송을 시작하였는데, 비록 짧은 시이지만 너무나 심오한 깊이를 품었기 때문에 낭송이 끝났어도 좌중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치문회 원로이신 김영훈 선생님이 말문을 여셨는데 ‘그 시 다시 들을 수 있겠냐’는 주문이셨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낭송을 반복했고 그 감동은 함께 자리했던 회원들의 가슴에 긴 여운으로 남았다고 한다.

이후로 허세욱 선배님과 둘만의 문학적 밀월이 시작되었다. 수필을 쓰던 나는 허 선배님과 자주 만나며 그의 깊고도 넓은 문학세계를 마음껏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내 졸작은 일일이 선배님의 손길을 거치며 따끔한 충고와 지도를 받았다.

‘글은 소리굽쇠야. 먼저 자기가 얻어맞고 울어야 옆에 있는 다른 소리굽쇠가 따라 울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감명을 주지 못하는 글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겠나!’, ‘겉마음으로만 글을 쓰면 거짓과 허식이 눈에 보여. 그러니까 글을 쓰기 전엔 마음을 비우고 잡생각을 하면 안 되지.’, ‘자네 소설 (황금벌판)처럼 마음이 앞서면 읽는 사람 입장에선 짜증스러운 내용이 되지. 그러니 여유를 갖고 글을 써야 해. 쓰기 전에 일백 번을 생각하고 쓰고 나서 일백 번을 다시 읽어라! 그래야 참된 글귀가 완성되지. 그 작품은 개작해!’, ‘수필문장은 간결하고 전달하려는 뜻이 명료해야해. 되도록 짧은 글귀에 실리는 내용이 많을수록 좋지. 불필요한 어귀는 전달하려는 의미에 혼선을 일으킬 뿐이야.’
첩첩산중 시골구석인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신 허 선배님은 가난 때문에 고향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셨지만, 한학에 대한 학구열과 남다른 재능이 대단해 이미 중학시절에 논어와 맹자에 심취하셨다.
당시 이리 남성고는 후에 국회부의장까지 지내신 당대의 한학자 윤재술 선생님이 교장이셨다. 한학공부를 위해 지방 유명사학에 진학하고 싶으셨던 선배님은 고등학교 초학년 때 당돌하게도 남성고 윤재술 교장 선생님을 무작정 찾아간다. 그리고 다짜고짜로 교장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 학교에 편입을 시켜주면 나중에 큰 한학자가 되어 꼭 은혜를 갚겠다고 간청하셨다.

턱도 없는 일이었지만 이를 범상치 않게 본 윤재술 교장 선생님이 ‘네가 한학공부를 했다면 내 앞에서 사서삼경을 아는 대로 외워라’고 명하신 것이다. 긴 시간에 걸쳐 사서삼경을 암송하던 이 어린 학생에게 특별편입의 허락이 떨어졌고 그리하여 허 선배님은 나의 고등학교 20년 선배님이 되셨다.

그리고 1972년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국어교과서에 실린 당시 중화민국 국립 타이완대학의 30대 젊은 교수이자 중문학 박사인 허세욱의 번역시 지센의 ‘배’를 접하게 된 것이다.

남성고를 마친 허세욱은 한국외국어대학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 국립 타이완대학 초청 장학생으로 뽑혀 대만으로 건너가 타이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 대학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중국어로 시와 수필을 발표, 중국문단에 등단한다. 그리고 80년대 초에 귀국하셔서 한국외국어대 중문과 교수로 부임하신 후 미국 아이오와대와 버클리대에서 수학하시고 1999년까지 고려대 교수를 역임하셨다.

타이완대 시절 일찍이 중국문예협회의 ‘중국문학상’을 수상하고 학문과 예술을 모두 아우르는 문사로 ‘중국고대문학사’, ‘중국근대문학사’, ‘중국현대문학사’를 비롯한 시집, 수필집 등 모두 170여 권의 저서를 내셨다. 이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현재 북경 중국국립도서관에 ‘허세욱 특별실’이 따로 마련돼 있다.

2008년에 출간하신 수필집 ‘송정 다리’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시간적 원점이 멀어질수록 기억은 새로운데 막상 고향 그 자리에 서면 나는 낯선 나그네가 된다. 고향 집은 날로 황폐하고, 눈 익은 우물가는 새로운 얼굴뿐이다. 그래서 고향은 찬비에 젖고 나는 때마다 훌쩍 떠나왔다. 징검다리였던 송정다리가 철근 콘크리트 다리로 바뀔지라도 나의 고향사랑과 지구유랑은 계속될 것이다.’ 구구절절 모두가 가슴에 와 닿는 명문장이 아닐 수 없다.
 
40여 년 전 당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허세욱 역 지센의 ‘배’를 회고한다. ‘저 배 바다를 산보하고/ 난 여기 파도 흉용한 육지를 항행한다/ 내 파이프 자욱이 연기를 뿜으면/ 나직한 뱃고동 남 저음 목청/ 배는 화물과 여객을 싣고/ 나의 적재단위는/ 인생이란 중량.’

연암의 ‘열하일기’를 ‘속열하일기’로 새로 엮으시며 연암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대륙 방방곡곡을 수없이 헤메시던 허세욱 선배는 마지막 답사에서 돌아오신 후 열흘만인 2010년 7월 1일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부음을 접하고 오로지 황망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어언 5년의 세월이 덧없이 흘러갔다. 서재에 꽂힌 선배님의 수많은 저서 맨 앞장에는 빠짐없이 ‘영진 아우에게’로 시작되는 친필 증정사가 적혀있다. 비록 일상에 젖어 선배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창작활동에 충실하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론 그 가르침을 이어받아 진솔한 수필문학에 더욱 정진할 생각이다.

김영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심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