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강인하실 것 같던 아버지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누구에게나 가슴 한켠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큰 키와 넓은 어깨 굵은 목소리의 아버지는 마치 만화 속 영웅처럼 꼬마 아들의 어려움을 척척 해결해내는 슈퍼맨 같은 분이었다. 어느덧 슈퍼맨은 늙고 지쳐 예전처럼 산을 옮길 듯한 기세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대신 그간 세월의 흐름은 그의 아들에게는 넘을 수 없어 보이는 거대한 지혜의 산맥으로 보일 뿐이다.
아직까지도 나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존재는 이처럼 큰 사람이다. 때론 부딪히고 거스르려 노력해 보았던 기억도 있지만, 결국 ‘아버지의 말이 옳았구나’라는 뻔한 결론만 확인할 뿐이었다. 이런 작은 존재였던 나도 어느덧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결혼을 하여 작은 가정을 이루고 놀랄만치 나와 닮은 작은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마냥 이쁘고 귀엽기만 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도 아들이 태어남과 동시에 하루하루 새로운 걱정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아이의 치아 맹출시기와 순서는 넓은 범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머릿속의 지식과는 다르게 우리 아들의 유치가 단지 조금 빨리 났다는 이유만으로 불안감에 휩싸여 각종 교과서의 치아맹출 단원을 샅샅이 찾아보는 것은 그저 초보아빠의 서투름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야간수유가 구강건강 관리에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야간수유를 하지 않으면 마냥 안자겠다고 보채는 아들과 매일 밤마다 신경전을 펼쳐야 했으며, 인사말처럼 건네던 ‘이를 잘 닦아야 합니다’는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함과 동시에 하루에도 여러 번 펼쳐지는 전쟁 같은 일상으로 다가왔다. ‘자기 전에 무언가를 먹었다면 꼭 이를 닦고 자야 합니다’라는 교과서적인 진리도 ‘곤히 잠든 아들을 깨워야 하는가 아니면 깨워 이를 닦고 다시 연장전을 치뤄야 하는가’라는 고민 속에서는 ‘무의미한 가르침에 불과했구나’라는 사실에 ‘그저 껍데기뿐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는가’라며 매일 반성의 연속이다.
소아치과 수련의로서 아이를 볼 때나 부모님을 대할 때 예전과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 분들이야말로 아직 핏덩이인 우리 아들에 비하면 청년, 아가씨나 다름없는 자식들을 키워낸 역전의 용사분들이 아니신가. 이를 잘 닦아야 한다고 이야기 할 때도 그 어려움을 알고 이야기 하는 것과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되풀이 하는 것에 불과한 것과는 당연히 큰 차이가 있으리라. 이렇게 보면 내가 우리 아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들이 나를 보다 성숙하고 멋진 사람으로 길러내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이 아이에게 나는 어떤 아빠로 기억될까? 우리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당당하고 근엄했던 항상 옳을 것만 같은 그런 아빠로 기억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늘 실수투성이에 매 소사에 안절부절 못하고 불안해하는 그런 모습으로 비춰질까? 옳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그것을 행하는 것에는 억겁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이제야 몸소 깨닫고 있다. 아들을 낳기 전에는 이미 다 컸다고 생각했건만 아들은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하루하루 더 철들고 더 배우고 있다.
부디 우리 아들이 나를 기억할 수 있는 나이쯤엔 내 기억속의 아버지의 모습처럼 뭐든 다 알고 있을 것만 같은 아빠이길, 슈퍼맨 같고 척척박사 같은 모습의 아빠이길 간절히 바래본다. 그래서 부디, 오늘도 나를 이렇게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아들에게 좋은 아빠로 남을 수 있기를 다시금 바래본다.
김유현 부산대치과병원 소아치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