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커피는 달달한 음료라고 생각했다. 처음 어머니께서 드시던 커피를 한 모금 뺏어먹고 나서는, 나는 어머니께 커피를 마시고 싶다며 종종 때를 쓰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커피보다는 어린이용 커피라면서 코코아를 마시기를 권유하셨지만, 어린 내 입맛에 커피가 너무 맛있었다. 결국 어머니께서는 나의 성화에 못 이겨 종종 커피를 타주셨다. 어머니께서는 커피믹스의 프림이 몸에 안 좋다고 생각하셔서 인스턴트커피 가루에 우유를 잔뜩 넣고 설탕대신 꿀 가루를 타서 주셨다. 어릴 적에는 뜨거운 음료를 싫어했기 때문에 항상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차갑게 마시거나 냉동실에 넣어두고 얼려먹곤 하였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없을 때는 얼린 커피우유만큼 맛있는 간식이 없었다. 빨리 얼려 먹고 싶은데 기다리기가 힘들어서 30분마다 냉동실문을 열어서 얼어있는 부분을 먹고 다시 얼리기를 반복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부터는 커피는 어릴 적의 먹고 싶어서 안달 났던 음료의 모습은 아니었다. 졸음을 쫓아주는 음료였고 어머니께서 타주시는 커피가 아닌 커피믹스나 편의점 캔 커피의 형태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릴 적만큼 커피를 그 자체로 간절하게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도 달달한 믹스커피와 다양한 편의점 커피를 즐겨마셨다. 돈이 없을 때는 집의 믹스커피나 편의점의 싼 캔 커피를 마셨지만, 가끔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에는 빨대가 붙어있는 화이트모카, 모카초코 등의 이름을 가진 커피를 사서 마셨다. 출출할 때 커피를 마시면 적당히 배도 부르면서 기분도 좋아져서 고등학교시절 소소한 기쁨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카페 커피는 매일 마시기에는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등교할 때 항상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가곤 했다. 사실 카페에서 파는 커피나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카페에 가는 것이 돈이 아깝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지만 대학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몰려서 카페에 가는데 나만 가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회사동료에게 드립커피 내리는 법을 배우시고는 드립커피 용품과 원두를 사들고 집에 오셨다. 어머니께서는 그라인더를 이용해서 커피콩을 갈았는데, 그때부터 커피의 향이 집안 가득 퍼졌다. 나는 카페에서나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광경도 좋았고 커피의 냄새도 너무 좋았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내린 커피는 그 당시의 나에게는 생소했던 아메리카노였다. 나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돼서 까지도 카페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는 아이였다. 맛도 없고 배도 안차는 물 같은 아메리카노 대신 항상 달달하고 이것저것 씹히는 프라푸치노를 즐기곤 했었다. 나는 그렇게 드립커피를 즐기지 못했고, 드립커피는 어머니 아버지만 가끔 드셨다.
그러다가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된 것은 다이어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다이어트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친구들과 카페에 가서 평소에 즐기던 달달한 음료를 마시기는 부담스러워서 마시기 시작한 것이 아메리카노였다. 그러던 중 아메리카노가 칼로리가 낮고 신진대사 촉진, 에너지 소모를 일으켜 아메리카노 열량보다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하게 한다는 등의 아메리카노가 다이어트에 좋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더 자주 마시게 된 것 같다. 자주 마시다보니 분명 예전에는 달지 않은 그 맛이 싫었는데 우유를 타지 않은 커피의 깔끔한 맛이 꾀나 괜찮게 다가왔다.
자주 마시다보니 아메리카노가 좋아진 나는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께서 커피를 내리실 때면 언제부턴가 나도 관심을 가지고 같이 마시게 되었다. 나중에는 내가 먼저 마시고 싶어져서 커피를 내리고 어머니 아버지께서 내가 내린 커피를 함께 드시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에게는 식사 후에 식탁에 모여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는 너무 소중한 습관이 생겼다. 가끔 집에 갈 때 아메리카노에 어울리는 달달한 케이크를 사가는 습관도 생겼다. 깔끔한 아메리카노와 달달한 디저트 조합에 푹 빠져서 나는 이제 친구들과 만나서 맛집에 가는 것보다는 커피향이 가득한 카페에 앉아서 커피에 케이크를 먹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커피와 디저트 자체로도 좋지만 커피와 디저트가 있을 때 생성되는 포근하고 여유 있으면서도 수다스러운 분위기가 너무 좋다.
이지수 단국치대 예과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