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자신이든 타인이든 생각을 변화시키는 일이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그런 변화는 지속되는가? 사회생활의 경험이 많아질수록 관계와 소통은 복잡하고 난해해진다. 이러한 이유를 팍팍해진 세상의 인심과 삭막해진 사람들의 인간미로 돌리는 걸 알아차린다. 어쩌면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지난 해 한동안 흥행했던 응팔(응답하라 1988)에 심취해 옛날을 회상하고 그리워하며 과도한 감정이입을 하기도 한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서로의 긍정적 울타리가 되어 살아가는… 지금의 눈으로는 너무도 비현실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한 그런 과거가 아닌가?
인간에게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은 어쩌면 몸의 세포 수보다 더 많고 복잡해서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이다. 자신이나 타인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은 이세돌보다 더 많은 기보를 입력하고 더 빨리 연산하고 찾아내는 알파고라도 많은 시간이 걸리거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은 상황 자체보다는 그들이 그 상황을 해석하는 맥락에서 더 좌우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떻게 느낄지는 당사자 과거의 여러 상황과 변수를 다 고려하더라도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관계와 소통을 포기하고 그만큼을 감수하며 사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상대와 부딪히고 갈등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방법이다. 또는 관계와 소통을 우선시하며, 타인을 이해하려고 내 마음의 술렁거림을 애써 누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를 상사로 두거나 누군가를 양육할 입장에 있는 상사이거나 흔히 선택하는 대처는 아닐까? 아니면 상대든 나이든 그런 맥락의 맞물림에서 충돌하거나 타협하거나 협력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에게 어떤 방법이 최선일지 알 수는 없다.
그저 나는, 잠시 멈춤을 시도하고 술렁이는 나의 마음을 알아차린다. 잔잔하게 일어나는 가슴의 콩닥거림과 약간 거칠어진 호흡을 주시한다. 그런 나의 몸과 마음을 지켜본다.
전신질환과 치주질환의 관계에 대해 많은 보고들이 있다. 이전보다 좀 더 넓은 시야에서 구강병을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치주질환을 잘 관리하고, 운동하며, 좋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늘 순위에 없는 일일 수도 있다.
오늘은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수없이 일어나는 생각과 타협하기로 한다. 내 몸을 위해서 10분간 일어서서 일하기, 점심 후 산책하기를 할 것이다. 마음에겐 한 잔의 커피와 오랜 친구와의 수다를 선물하자. 그래도 빈 순간이 있으면 잠시 멈추고 끝없이 이는 생각을, 마음을 지켜보기로 하자.
존 카밧진이 말하는 마음 챙김이 태평양을 건너고 현해탄을 넘어 소백을 지나고 태백산맥을 넘어서 강릉에 도달해서는 이런 탱자가 되고 말았구나. 그래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이 순간 이런 마음과 생각임을 감사하자. 그런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살아보자.
배수명 강릉원주치대 치위생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