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개봉한 영화 ‘트루먼쇼’를 처음 시청하고 난 뒤 긴 여운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초등학생이였던 필자가 이따금씩 공상하곤 했던 내용이였기 때문이였을까. 영화를 본 후 며칠간은 하늘에서 갑자기 조명장치가 떨어지지는 않을지 시도때도 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숨겨진 곳에 카메라가 있는 것은 아닌지 물건들과 괜한 눈싸움을 하기도 했다. 지금 돌아보면 웃음이 나오는 순간들이지만, 그 어린나이에도 내가 볼수 없는 누군가가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생각은 역시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더 크면서 접한 조지 오웰의 ‘1984’나 ‘메트릭스’ 같은 작품들은 “나”와 내가 속한 “세상”의 관계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게 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상상 속에나 있을 법했던 영화와 소설 같은 일들이 눈앞에 펼쳐진 세상과 큰 차이가 없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사실 인터넷과 같은 통신수단의 혁신적인 발전과 보급은 그들이 그저 통신수단만이 아닌 일상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게 하였다. 그 중 Social Network Service (SNS)의 비약적인 성장은 개인의 일상이 더 이상 개인의 영역을 넘어 공공의 영역으로 공개될수 있도록 하였고, 실제로 이런 이유로 2006년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당신”을 선정하기도 했다. 그 후 약 10년이 지난 요즈음 SNS는 우리 일상의 큰 부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모두가 사용하는 SNS 어플리케이션 없이는 당장 약속장소가 삼겹살집에서 치킨집으로 변경되었다는 소식과 약도도 받아볼수 없다. 뿐만 아니라 많은 follower를 소유한 SNS 계정을 갖고 있는 유저들은 여러 상품들을 협찬받고 광고성 업데이트를 하며 수익을 보기도 한다. 이것은 ‘트루먼쇼(1998)’에서 봤던 곳곳에 묻힌 간접광고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유저들은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과 교류를 말하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면 그 자체로의 파급력과 상품성을 띄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채널을 통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공유하고자 하는 것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것들에 노출된다. 나의 사생활과 세상이 한층 더 밀접해진 것인데, 이런 현실을 두고 영화와 같은 삶을 살게 됐다고 꼭 꿈만 같다고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009년 미국 Sundance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은 작품은 ‘We Live in Public’이라는 영화로 90년대 “.com” 경제가 활성화 될 무렵의 경제버블을 타고 수많은 부를 쌓은 조쉬 해리스라는 한 선구자의 삶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90년대에 “리얼버라이어티” 컨셉의 개인방송 채널의 활성화를 예고하고, 뉴욕 도심에 지하벙커를 만들어 무작위로 신청자를 받아 숙식 등 모든 것을 제공하는 대신 모든 사람들의 일상을 서로 볼수 있도록 수천 대의 카메라와 모니터를 달아 일종의 실험을 진행했던 내용도 포함 되어 있는데, 이 다큐멘터리에 비춰진 다소 충격적인 모습들은 현시대의 우리 모습과 비교 해볼만 하다. 무대에 선 사람들은 일종의 퍼포먼스를 하게되는데 일상이 무대가 되면 삶이 퍼포먼스가 되는 것은 아닐지. 내가 설 무대에 대한 선택권은 누구에게 있는지. 이것이 우리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러한 시대를 열어온 스티브 잡스 본인마저 생전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통신기계 사용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한을 두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하다. 혹자는 현명한 시대적 역행이 다음 단계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막연한 제한을 두기에는 기술의 편리성과 보편성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도 블로그와 메신저등 3~4개의 SNS를 사용하고 있고, 그 중에는 지인들과의 순수한 소통과 재미를 위한 계정도 있지만 업무적인 필요로 인해 무작정 사용을 중단할수 없는 계정도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으로서, 기술과 수단을 자주적으로 선택하고 사용하는 주체로서의 SNS를 대하는 나의 자세를 돌아보고, 나를 세상과 이어주는 기술과 개인의 행복한 삶의 현명한 공존 방법에 대해서 우리 모두 한번쯤 깊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선행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4학년 총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