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科學(비과학)과 未科學(미과학)
고대로부터 치의학은 의학의 일부로 여겨졌고 미용적이나 기능적인 측면에서 삶에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구강 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필요한 처치 방법을 알지 못하여 구전된 방법으로 처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처치 방법이 어떠한 기전을 바탕으로 하는지에 대한 근거는 다양했지만 희박했으며 이론적인 배경보다는 처치하는 이의 명성에 기대거나 종교의 힘을 빌리는 경우도 있었다. 내과의에 의해 경시되던 치과 치료가 현대 서양 학문의 형태를 갖추는데 18세기 프랑스 의사 피에르 포샤르의 역할이 지대했다. 피에르 포샤르는 치과 치료를 학문의 형태로 발전시켰지만 질환의 원인을 수천년간 지속되어온 ‘체액설’에 기댔기 때문에 백여년 뒤 루이 파스퇴르가 실험을 통하여 증명한 세균설을 기준으로 본다면 비과학적인 접근을 했다고 할 수 있다.서양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대부분의 의학적 지식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경험 의술로부터 얻었기 때문에 현재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해하기 힘든 주장도 있다. 히포크라테스가 치과와 관련하여 설명한 내용은 많지 않지만 그 가운데 ‘남성은 여성보다 치아의 개수가 많다’라는 주장은 눈길을 끈다. 이 주장은 이 후 이천년에 걸쳐 최고의 과학자로 칭송
- 유승훈 단국치대 소아치과학 교실 부교수
- 2016-02-19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