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야기
인생 10년차가 되기도 전에 나는 엄마의 임종을 마주해야 했다. 새벽을 깨우는 누군가의 손짓. 엄마가 위독하시다. 가족들이 엄마 주위에 모여 기도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3개월 정도의 짧은 투병 기간을 엄마는 고스란히 기도의 시간으로 버티셨으며 특별한 유언 없이 떠나셨다. 집에서 치르는 3일의 장례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어린이가 염이며 입관식을 처음 보았으며 그 죽음의 장본인이 나의 엄마였으니... 나는 죽음이 무서웠다. 관계의 강제 종료가 주는 어이없음보다 움직이지 않고 시들어가는 엄마의 차가운 육신이 공포스러웠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누워계셨던 그 방에 감히 혼자 있지 못하였다. 엄마 추도식 1주기가 되기도 전에 아버지는 자녀 양육을 이유로 재혼하셨고, 나는 여전히 위로받지 못한 채 불쌍한 아이 정도로 회자 되었고 내 이야기를 늘어놓을 누군가를 찾지 못하여 학교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말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나를 생각해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내 유년 기억 중에 찾지 못하겠다. 사소하고 소중한 관계 맺기를 이때 학습하지 못하여서 나는 이후 꾸준히 실수하고 망치고 상처받으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대학동기들 딱 절반이 결혼하였을 때, 중간
- 이성희 분당구보건소 구강보건실 치과의사
- 2023-04-24 0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