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인테리어 업체의 ‘말 바꾸기’에 개원을 앞둔 치과 의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최근 평당 단가가 저렴한 업체와 계약했다가 시공 도중 추가 비용을 요구받는 개원의들이 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계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거나 갑자기 업체가 폐업하는 바람에 2차 피해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값싼 견적이 인테리어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치과 개원의들의 심리를 이용한 ‘속임수’라는 얘기다.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관련 업체들을 만나 실제 업계 상황을 들어봤다. # 싼 견적이 비지떡? 최선호 리더스디자인 대표이사는 “일부 인테리어 업체들은 계약을 수주하기 위해 평당 단가를 싸게 제시한다. 견적이 싸면 추가 공사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경우 업체는 세부 내역은 교묘하게 숨기고 항목을 퉁쳐서 견적에 표시한다. 치과의사가 나중에 ‘당연히 이 부분도 포함이 돼 있는 줄 알았다’고 하면, ‘견적에 포함되지 않았던 부분’이라며 발뺌하기 일쑤”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업체들은 개원에 꼭 필요한 시공을 생략한 뒤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방법을 쓴다. 특히 이런 항목에는 전기승압 공사비, 냉난방 설치비 등의 부대비용이 대다수다. 인테리어
국내 코로나19 대유행이 최근 소강상태를 맞고 있지만 일선 동네치과의 고통은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3월 22일부터 5월 5일까지 45일간의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기간이 끝나고 6일부터 생활 속 거리두기 형태의 생활 방역 체제가 본격 가동됐지만 치과 개원가의 표정은 아직 가시적 효과를 체감하기에는 이르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동안 누적된 손실은 물론 환자들의 발걸음이 아직 온전히 돌아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한 치과에서는 진료 가운 위에 임시 비닐 가운을 덧입고 한창 진료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직 점심시간이 조금 남았지만, 대기 중인 환자는 없었다. 해당 치과의 A 원장은 코로나19가 창궐할 때인 지난 3, 4월에 비하면 환자가 다소 늘었지만 아직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섰다고 보기에는 태부족한 상황이라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대표 원장으로서의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중에 환자와 의료진 보호를 위해 거추장스럽고 덥지만 비닐 가운을 입고 진료를 해 왔다”며 “생활 방역으로 전환된 이후에 잠시 벗었지만 최근 이태원클럽 발 확산 소식을 듣고 다시 꺼내 입었다”고 한숨을
“치무위원회는 치과의사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중요 부서로서 그 책임감이 상당히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역대 치무위에서 열심히 추진해온 여러 현안해결을 위한 사업들이 차질 없이 연속성 있게 진행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회무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제31대 치협 치무이사에 선임된 김용식 치무이사는 치무위 중점 사업으로 치과의사 인력 감축방안을 비롯해 국가구강검진제도 개선, 아동치과주치의사업 정착, 구강보건의 날 행사의 성공 개최 등 치무위 관련 사업과제 해결에 전력을 다해 나간다는 각오다. 먼저 김 이사는 과잉 공급되고 있는 치과의사 인력을 감축해 적정한 수급이 되도록 적극적인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 2017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주요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전망’에 따르면 치과의사의 경우 오는 2030년에는 3000명이 과잉이라는 전망이 나온 바 있다. 김 이사는 “치과의사 과잉 배출에 대해 회원들도 피부로 느끼고 있는 만큼, 치의 인력 적정수급을 위한 추계를 포함해 관련 연구용역 결과 등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안을 마련해 치의 인력 감축을 위한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김 이사는 국가구강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책꽂이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도서관처럼 매뉴얼화 된 치협 운영시스템, 투명하고 개방적인 회무, 회계집행 시스템을 만들어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최치원 총무이사는 치협 대외협력이사와 공보이사, 군무이사, 부회장 등을 두루 역임한 회무통으로 이번 제31대 치협 집행부 살림을 맡으며 사무총장직도 겸임하게 됐다. 그는 치협 대소사 운영방식을 매뉴얼로 만들어 어떤 행사, 사업이 진행되더라도 운영기준을 명확히 한다는 계획이다. 최 총무이사는 “조선시대의 의궤처럼 어떠한 업무가 진행되는데 있어 담당자가 바뀌거나 집행부가 바뀌어도 차질 없이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회무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며 “더불어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과감히 받아들이고, 예산운영 등에 있어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최 총무이사는 예산운영과 관련 임직원 업무의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교통이나 숙박 등 여비부분 지급기준을 바꿔 관련 예산을 최대한 절약하는 방향으로 나가겠단 뜻을 밝혔다. 더불어 치협의 주요 정책, 전반적인 회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나가며 주요 의제에 대한 임원 간 소통 강화, 화합에 적극 나서겠다는 다짐이다.
“단돈 250원이 없어 치과를 가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치과에는 치과의사가 없고, 의사가 대신 진료를 보죠. 테라피스트가 이를 뽑습니다. 치료 중에는 석션이 망가져 바닥에 침을 뱉곤 합니다.” 치과의사 이병중 원장(57)은 아프리카 르완다의 상황을 위와 같이 묘사한다. 치과의사가 50명이 채 안 되는 국가. 이 원장은 지금 이곳에서 치과의사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두 번째 삶의 터전으로 르완다를 선택한 데에는 한 청년의 간증이 결정적이었다. 청년은 우연히 가족을 죽인 사람의 아들을 만나 용서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밝혔는데, 이는 이 원장의 삶에 큰 전환점이 됐다. 청년은 약 80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르완다 대학살’의 생존자로, 집 안 장롱에 숨어 누이가 강간당하고 아버지가 타 부족에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지켜봤다. 당시 청년의 나이는 10살이었다. 이 원장은 그의 일화를 듣고 인생 2막에 대한 기틀을 다졌다. 이 원장은 “상상할 수 없는 용서의 간증을 듣고 아프리카 선교를 결정했다”며 “결혼 25주년을 기념해 여행지를 정하던 때에 그의 얘기를 듣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이 아프리카 르완다라는 확신이 섰다”고 결정 당시의
5월의 어느 날,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건물 1층 로비와 2층 복도에 마련된 사진전시회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어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인 작가 한 명을 만나볼 수 있었다. 치과의사에서 사진작가로 제2의 삶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임창준 원장(이엔이치과의원)이다. 임 원장은 대한구강악안면임플란트학회, 대한심미치과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임상 분야에 탁월한 성과를 이뤄왔다. 수십 년간 치과의사로 살아오며 숱하게 임상 사진만을 찍어온 그가 사진작가로 새길을 선택한 시도는 신선한 변화였다. 임 원장이 사진에 첫발을 들여놓은 건 본과 3학년 때였다. 당시 서울치대 사진 동호회 ‘포토미아’ 회장인 친구의 제안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소위 ‘똑딱이’라고 불리는 휴대용 카메라를 들고 방방곡곡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그러나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고, 가정을 꾸리며 삶은 그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사진과 재회하게 된 때는 환갑에 이르렀을 때였다. 임 원장은 “내가 어느 한 곳에 빠지면 몰입하는 성격이라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식을 다 키우고 나니 그제야 아내가 사진을 허락했다”라며 웃음 지었다. 몇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사진계는 그가 학생 시절 느끼던 분위기와는
코로나19 치료를 마치고 격리에서 해제됐다가 다시 확진판정을 받은 재양성자에 대해 정부가 감시를 중단키로 했다. 특히 이 같은 조치를 소급 적용함에 따라 최근 재확진자 방문 후 자가격리됐던 일부 치과 관계자의 격리도 해제됐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5월 19일 0시부터 확진자의 격리해제 후 관리 및 재양성자의 관리방안의 적용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18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정부는 코로나19 재양성 확인 사례가 지속 보고됨에 따라 지난 4월 14일부터 우선적으로 확진환자에 준하는 조치를 시행해 왔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재양성자 및 접촉자에 대해 적극적인 감시, 역학조사 및 바이러스학적 검사 결과 재양성자에게 감염력이 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특히 재양성자 285명의 접촉자 790명을 조사한 결과, 재양성자의 재양성 시기 접촉만으로 감염된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재양성자 108명의 바이러스 배양검사 결과 모두 음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재양성자의 접촉자 중 신규 확진이 된 특이사례가 3건 보고됐으나, 역학적으로 다른 감염원 노출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재양성자 및 접촉자에서 바이러스 배양이
우리나라의 첫 서양식 치의학 교육기관은 경성치과의학교이다. 조선총독부의원 치과과장과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였던 나기라 다쓰미[柳樂達見]가 진남포의 실업가 토미다 기사구(富田儀作)의 재정적 후원을 받아 1922년 4월 2년제 야간으로 설립한 것이다. 교사는 총독부의원 건물 일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사 일부를 빌려 사용하였다. 1년 후 주간 3년제로 바꾸었고, 6년 뒤인 1928년 9월 저경궁터에 학교건물을 신축낙성하고, 1929년 4월 병설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개교하여 4년제 치의학사를 배출하게 되었다. 광복과 더불어 1945년 11월 경성치과대학으로 발족하고, 1946년 8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과 더불어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및 부속병원으로 개편되었다. 1959년 1월에 2년제 치의예과가 문리과대학 이학부에 신설되어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뀌었다.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치의예과)이 1966년 12월,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치의예과)이 1967년 12월 인가되었다. 이어서, 경북대, 조선대, 전남대, 전북대, 원광대, 부산대에 치과대학이 발족한데 이어, 1992년 3월에 강릉대학교 치과대학(치의예과)이 인가되어 전국에 11개 치과대학 시대가 열렸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학회의 본업은 학술활동을 통한 해당 학문의 발전이다. 치과계에도 치의학회 산하에 30여 개 이상의 인준 학회가 있고, 인준을 준비 중인 학회도 있으며 학회로의 발전을 준비 중인 연구회도 다수 있다. 학회는 학술대회와 학회지 발간으로 대표되는 학술활동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며 해당 학문을 대표하는 플랫폼으로서 외부의 자문에 응하고 관련 산업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며 관련 해외 학회와 교류의 통로가 된다. 즉, 학회는 이와 같은 학술 활동을 통해 이미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실천성을 강조한 의미의 “사회적 가치 혹은 사회 공헌”의 측면에서 학회의 역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사회는 시민단체만이 아닌 기업이나 대학도 그 본연의 역할을 넘어선 사회 공헌의 역할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을 홍보의 차원을 넘어선 본연의 역할을 확대, 발전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통해 전공지식 구현과정을 교육할 뿐만 아니라 남을 섬기고 협력하는 리더십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령사회 및 초고령 사회의 대비를 위해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커뮤니티 케어 사업”에 학회와 지
막내아들이 결혼식 청첩장을 준비하면서 반드시 초청해야 할 하객들의 수를 알려 달라고 했다. 일단 친척들과 친한 친구들을 염두에 두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일로 인연이 맺어진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을 알고 나조차도 놀라웠다.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전화번호를 입력해 두었는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누구인지 연상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여서 이번 기회에 삭제해 버렸다. 지금까지 불필요한 일과 소중하지 않은 상대에게 많은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과 내 가족을 먼저 챙기며 살아야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를 옭아매어온 쓰잘 데 없어 보이는 인간관계를 없애버려야 여생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무게도 줄어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도 하게 되었다.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장단에 놀아나지 말아야겠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 치고, 추임새도 넣어가며 신명나게 놀다보면 내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알아서 내가 만들어 놓은 마당에 들어와 함께 놀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아 만족스럽지 못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때마
정필훈 가족들의 그룹전을 뜻할 수도 있고 정필훈이 가족을 그린 전시회일 수도 있다 4대가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가족들이 틈틈히 그린 그림쪽이 더 맞겠다 정필훈 모친, 본인, 아들, 손녀, 외손녀 4대 5가족이 동양화, 유화, 칼라 매직으로 모두가 취미로 그린 작품을 모아보았다 2세 외손녀 작품부터 91세 모친작품까지 어머니는 54세 때 5아들을 다 대학 보낸 후 취미로 동양화를 배우며 그리기 시작하였다 저는 치대 미술반을 설립하는 애착에서 무채색의 화려함 땜에 유화에서 동양화로 아들은 애비 허물을 덮어쓰고도 내색없이 힘들 땐 드럼과 유화 구상화로 침잔시키며 친손녀는 엄마 배속의 여동생을 탯줄까지 묘사한 D형 곡선을 낙서하듯 그리고 외손녀는 2세 추석 때 내 동양화 붓을 뺏어 머리카락 한 올만 있는 할아버지와 라니를 첫눈 오는 날 3세 때는 “아, 그림 그리고 싶다” 같이 산책하던 난 외손녀 그 말에 행복했다 어머니는 응급실 단골로 마지막 잎새처럼 계획한 90세 전시회를 치루며 건강을 회복 전시회는 손녀들과의 조그만 약속이기도 나에겐 연꽃 그리며 속세에 물들지 않기를 정년 맞아 떠날 때는 말 없이 조용해야 하거늘 그리울 때 그리는 것이 그림임을 생각해본다
■ 2020년 5월 21일 이후 세미나 일정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