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로부터 다시 연락이 온 것은 A가 이사를 온 지 2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다. A는 편의점에서 재고 정리를 하던 중이라 B가 보낸 스마트폰 메시지를 바로 확인하지 못했다. 일을 끝내고 확인했더니 오후 5시쯤에 잠깐 오피스텔에 들렀다가 돌아갈 거라는 내용이었다. 시계를 보았더니 오후 4시를 약간 지난 시간이었다. A는 점장에게 인사를 하고 곧바로 오피스텔로 올라와 방 정리를 했다. 그동안 손도 대지 않았던 캐리어에서 책들을 꺼내 대충 비어 있는 책장에 꽂았다. 냉장고에 보관 중이었던 편의점 도시락도 모두 꺼내 버렸다. B는 오후 5시 반쯤, 부스럭거리는 큰 비닐 봉투를 들고 초인종을 눌렀다. A가 문을 열었더니 B는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날씨가 너무 덥지 않니? 에어콘 좀 틀고 있지 그랬어.” B가 익숙한 손동작으로 리모컨을 조작했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지금 막 들어온 참이거든.” “너 아르바이트 하는구나. 어디서?” “여기, 바로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아, 거기? 일하기 편하긴 하겠다. 그런데 거기 은근히 손님이 많아. 바로 앞에 흡연 부스가 있어서 그런가.” 그건 B의 말이 맞다고, A는 생각했다. 유난히 담배를 찾는 손님이
그것은 실로 특이한 식물이었다. 독특한 문양을 가진 자갈돌을 촘촘히 박아놓은 것 같기도 했고 탈피를 앞둔 갑각류가 납작하게 엎드린 채 무리를 이루고 있는 듯도 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 식물에 대해 꽤 지식이 있다고 자부했던 A였기에 이 낯선 식물에 대한 호기심은 적지 않았다. A는 화분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그 식물을 만져 보았다. 차갑고 매끈했다. “그거 화분 말이야, 진짜 예쁘지 않아?” B가 화장대 거울 속에 비친 A에게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화분이 예쁘다는 뜻인지, 이 독특한 식물이 예쁘다는 뜻인지, A는 헷갈렸다. B는 거울을보며 선물로 받았다는 새 귀걸이를 조심스럽게 끼우고 있는 중이었다. B는귓불이 약해서 새로운 귀걸이로 갈아 낄 때마다 상처가 나곤 했다. “응, 예쁘다. 그런데 이건 다육식물인가? 이름이 뭐야?” “뭐라더라? 저기 파일에 보면 사진이랑 이름 있어. 한번 봐봐.” B는 익숙하게 화장 솜으로 귓불을 꾹 누르며 책상 위에 있는 파일을 가리켰다. B는 시내의 이름난 꽃집에서 매주 ‘그린 인테리어’ 수업을 듣고 있었다. 요즘 강남의 젊은 부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실내 조경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직접 화분을 만들거나 간단
산수국 어디론가 떠나면서 건네받은 산수국 지난날 영산나루 강둑에서 만나보고 잊고 또 잊었는데 보랏빛 겉 꽃잎은 호위무사처럼 벌 나비를 유혹한다 가까이 다가서 들어다 보니 당신 같은 참꽃도 피워 가는데 속절없이 변해가는 마음이 블루로 남았다 보랏빛 꽃잎 같은 시절의 속죄가 서럽기도 그립기도 하여 일찍 떨군 꽃잎들은 강 톱에서 외발로 서서 우는 왜가리 같은 흰 꽃 무더기로 변해간다 일평생 가져 보지 못한 찬란한 헛꽃의 꿈들은 당신이 떠나간 빈 허공에 하나 둘 셋 별을 메어단다 임창하 원장 임창하 치과의원
언제나 편하게 오늘 밤이 어때? 감미롭게 넘어가던 와인이 목구멍에서 걸린다.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그녀의 웃음이 부드럽게 살랑거린다. 뜻밖의 말이다. 뜻밖의 얼굴 표정이다. 마치 뜻하지 않은 연극 속 배우를 보는 듯하다. 20cm 거리의 그녀가 낯설다. 그녀의 숨소리는 잔잔하다. 와인 내음이 풍기지 않는다. 눈동자가 반짝인다. 내가 무슨 말을 했길래 그녀가 그런 대답을 했을까? 순간 기억이 가물거린다. 오히려 부드럽게 웃으며 나를 의아한 듯 바라본다. 그녀는 조용히 와인 잔을 입술로 가져간다. 웃음이 번지는 입술 속으로 와인이 스며든다. 옅은 초콜릿 색 입술이 선명하게 보인다. 어때, 오늘 밤? 그녀가 다시 한 번 나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와인이 스며든 그녀 목소리는 초콜릿처럼 달콤하다. 좀 더 나에게 다가오며 더 진하게 웃는다. 숨소리는 차분하다. 반쯤 남은 와인을 음미하지 않고 냉수처럼 벌컥벌컥 들이킨다. 와인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동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오늘? 좋지. 쉽게 대답이 나온다. 취기 때문에 나온 대답이 아니다. 놀라움에 나온 대답이다. 그녀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숨을 빠르게 가라앉힌다. 들숨날숨을 몇 번 크게 쉬면서 조용히
푸른 상흔 치명적이다 아프다, 푸르다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다 아프다, 푸르다 기억한다 지워지지 않는다 푸른 상흔 젊은 날의 맑고 깊은 떨림이 있어 목숨 걸고 사랑해야 한다면 상처가 위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푸른 상흔 자유롭게 유영하라 지내온 상처를 덮쳐 가듯 덮쳐 간만큼만 홀로 서자 홀로 서 기다려보자 늦은 비를 기다리듯 늦은 시를 갈망하듯 치명적이고 푸르디푸른 상흔은 갓 올려진 푸덕거림으로 소중한 당신을 아름답게 하리라 당신의 아름다움을 누구나 사랑하게 되리라 푸르디푸른 상처를 들어 보여준 당신은 사랑이어라 깊고도 깊은 사랑이어라 임창하 원장 임창하 치과의원
여보! 여보! 들숨이 배꼽까지 내려오지 못한다. 가슴에서 멈춘다. 힘껏 아래뱃살에 힘을 주지만, 들숨이 평소처럼 아랫배로 내려오지 못한다. 날숨을 가쁘게 내뿜는다. 가슴이 답답하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어깨가 파르르 떨린다. 화장실 거울 속에 창백한 얼굴만 비친다. 찬물로 얼굴을 씻는다. 한 번 더 들숨을 쉬어본다. 들숨이 따뜻하게 가슴에서 퍼지지 않는다. 아래뱃살에 힘을 줄 수 없다. 세면대에 기댄 손들이 후들거린다. 어지러울 뿐이다. 담당의사 말들이 거울에 띄엄띄엄 쓰인다. 판결문처럼 들렸다. 여러 가지 검사 결과 두 사람 모두 정상 수치입니다. 원인불명의 난임인 듯합니다. 그 동안 면담했던 그 의사가 맞나 싶을 만큼 얼굴에 웃음이 없다. 의사는 며칠 전까지 웃는 얼굴로 소곤거렸다. 남편은 매우 건강한 남자입니다. 아내분도 혈중 호르몬 검사, 난관조영술 초음파 검사 등 모두 정상입니다. 정신과 치료와 병행해서 앞으로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하면서 난임원인을 찾아야겠습니다. 의사는 그렇게 말해야한다는 듯 말을 했다. 우리 앞에 진료기록부와 검사지를 마치 판결문처럼 내밀면서. 남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남편은 눈가에 핏줄을 세우며 겨우
‘여자 선생님이라서 좋아요.’ 치과에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실 때에 나는 긴장이 된다. 젠더에 의미를 부여 받는 일은, 그 의미가 아무리 긍정적이라고 하더라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저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두 가지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해 내야만 하는 것이다. 한 가지는 저 환자분의 불편한 구강 내 병증을 치료하고 편안하게 저작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통상적인 치과의사로서의 역할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저 환자분이 내면 깊숙이 가지고 있을 ‘여성 술자에 대한 기대 심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하는 ‘여성 치과의사’로서의 역할이다. 10여 년 전에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왔다. 그 분들 중에서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유난히 의미를 부여했던 분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받았던 ‘냉대’과 ‘기대’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 새내기 시절 아직 빳빳한 가운을 입고 서 있던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남자 원장님은 어디 갔냐고 반말로 물어보던 환자 분이 있었다. 그래, 이런 냉대는 차라리 괜찮은 편이었다.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래가며 여자 선생님이 계신 치과를 찾아 멀리서 왔다고 하소연했던 보호자
요즈음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다. 예술사조로서의 ‘미니멀리즘’이 아니라, 생활양식으로서의 ‘미니멀리즘’ 말이다. 이는 복잡하고 정신없는 현대인의 삶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소유를 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삶과 관심사에 집중하고자 하는 삶의 양식이다. 번역을 하자면, ‘최소생활주의’, ‘최소주의 삶’ 정도가 되겠다. 일본의 어느 미니멀리스트는 똑같은 옷만 세 벌 구입하여 매일 똑같은 코디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는 아침마다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까?’라는 고민에서 해방되어 행복하다고 했다. 몇 벌 안 되는 옷이기에 오히려 더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개성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무의미한 삶의 선택지를 과감히 버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몇 가지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물론 그와 같은 극단적인(?)형태의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집에는 적어도- 내가 모르는 물건은 없다. 물건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내 자신을 ‘초보 미니멀리스트’ 라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필요로 할 때 적절히 꺼내 쓸 수가 없다면, 그 것이 ‘물건’이든 ‘지식’이든 없는 게 낫다’
혼자 먹는 식탁 저녁 식탁에 홀로 앉아 밥상에 올라앉은 기억들을 먹는다 하루해의 조각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모인다 밥알이 반찬들을 헤집는다 재잘거리던 새들 노랫소리로 날아오르고 장미 무늬 접시에 넘치던 짙은 향기 서로들 노란 주둥이 활짝 벌려 짹짹거리고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았을 그 작은 새들, 어느 강가에서 시간을 따라 기억의 강물로 흘러갔을까 아파트 베란다 창문으로 길게 누운 해 그림자 바라보며 죽은 한 건너편에 있는 너를 생각한다 끊임없는 광야 길을 걷고 걸어서 어디쯤 갔을까 너는 배가 고팠을까 그 겨울은 따뜻했을까 빗살로 길게 누워 있다 이내 일어나 붉게 타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하루해 집에 있어 식탁에 앉아 화려한 밤 속으로, 그 고요한 적막 속으로 외로움 한 사발 시원하게 마시련다 아, 맛 좋다 자, 성찬을 즐기자 주여! 이 식탁에 복을 주옵소서 원하옵건대 제발 혼자 먹는 식탁은 사양합니다. =========================================== 신용카드 부끄러운 벌거벗은 내 몸이 구겨지고 접혀지고 압축되어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판에 녹아들고
★ 희망의 나라로 위암 수술 후 양전자 단층촬영(PET 검사) 결과, 경식은 죽음의 그늘을 의식했다. 위 전체를 잘라내는 극한의 수술을 받았지만, PET 촬영 검사 결과 광범한 암 전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암 진단 후 환자는 대체로 5단계의 심리 변화가 온단다. 첫 단계가 현실 부정, 둘째 단계가 ‘하필이면 내가 왜’하는 분노, 셋째 단계가 아픈 상황과 타협, 넷째가 생의 포기로 오는 우울, 다섯째가 죽음에 순종하는 수용. 이라는데 - 내과 전문의로 30년 임상 경험이 풍부한 경식은 수술 후 항암 치료 초기엔 ‘왜 하필이면 내가’ 라는 둘째 단계부터 심적 갈등을 시작 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너무 부정적인 것을 알고 바로 5번째 단계로 죽음을 수용했다. 고통의 항암치료를 의료진은 강행 했지만, 그 고통을 ‘내 십자가’로 믿고 지고 갔다.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다물결 건너 저편언덕에 산천 경계 좋고 바람 시원한곳 희망의 나라로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 찬 희망의 나라로 경식은 치과봉사자 김 원장의 권유로 현재명 작곡의 가곡 ‘희망의 나라로’를 매일 맘속으로 불렀다. “원장님(그는 경식을 지난 20년간 늘
5월의 황금연휴 전날, 치과에 낯익은 노부부가 들어왔다. 서울에서 대전 근처로 귀촌하신 분이신데 오랫동안 사용하시던 틀니가 헐거워져서 비닐 봉지에 싸가지고 고치러 오셨다. 대전 근처 치과에서 하셔도 되는데 일부 러 여러 번의 교통편을 이용해서 오신 거다. 수리가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할머니는 치과 근처에 있는 세 딸들의 집을 방문했으나 모두 문이 잠겨 있 어서 다시 치과로 오셔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틀니 수리가 되었다. 늦어도 당신 집이 편하신지 대전으로 가려 하신다. 움직임이 편치 않아 보여 오늘 쉬시고 내일 가시라고 권해드렸다. 출가한 세 딸이 있으나 눈치가 보이시는지 둘째 딸이 성격은 못되어도 사위가 편하다고 하시며 그 집으로 가신다며 병원 문을 나섰다. 노인을 뵈올 때마 다 항상 나를 연관시켜 본다. 우리들의 현재와 미래가 투영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바쁜 생활로 가족이 모두 모이긴 정말 힘들다. 모처럼의 연휴로 가 족 모임을 하기로 했다. 모처럼의 맑고 화창한 날이다. 항상 자식들의 소 식을 기다리고 계시는 친정 부모님과 나의 세 딸이 모였다. 우린 낀 세대 가 된 것이다. 옛날 같으면 우린 노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