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증례 발표중심 활동 실전적 노하우 공유 폭 넓혀 경오치연은 1990년(庚午年) 임상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관련 학문의 지식, 기술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기본에 충실한 Super G.P를 그 목표로 4명의 임상의로 출발한 Study Group이다. 1990년대 초에는 지금처럼 연수회나 세미나가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혼자서 모든 분야에 대해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많았다. 처음에는 Laminate cr 등 학부시절에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분야나 미진한 부분에 대한 해외 연수자들의 Seminar나 연수회에 서울, 부산, 광주, 일본 등으로 한 명 씩 대표를 보내 요점 정리 한 것을 다시 모여 공부하며 하나 하나씩 내실을 다졌고, 때로는 직접 연자의 초청 강연, 임상 관련 책 Review, Journal reading 등을 병행하였으나 지속적인 Study Group의 발전을 위해서는 임상 증례 발표가 중요하다는데 뜻을 같이하고 증례 발표 중심의 활동으로 진정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점에 대하여 서로의 지적과 반성을 하면서 좀 더 진일보된 임상 활동을 하여 왔다. 그러던 중 타 지역 Study Group과의 교류가 시작되어 1997
한순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어떠한 고통도 감내 하리라는 그녀는 이미 욕망의 포로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가 대기실에서 다정스레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한 동안 치과에서의 낙이었다. 그 마지막날 할머니께서 틀니를 장착하고 체어에서 내려오자 당신께선 정작 체어에 오르길 거부하셨던 할아버지께서 진료실로 들어오셔서 주름진 두 손을 쭈글쭈글한 할머니의 두 뺨에 대고 부벼대면서 어린 아이처럼 기뻐하신다.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원장님 고맙습니다. 우리 할망구 이렇게 젊고 예쁘게 만들어 주셔서”하며 연신 큰절을 한다. 정작 할아버지의 주름진 그 얼굴에 아름다움이 넘쳤다. “하나만 물어볼께요. 모랄이 뭐죠?” 그는 아침햇살이 쏟아지는 창을 뒤로하고 하지 말아야 할 잘못을 저지른 어린애가 엄마 앞에 항변하는 듯한 억양으로 자신에게 다가와 막 자리를 잡으려는 그녀에게 눈을 맞추며 오랜 단절의 시간을 밀어내려 했다. 그녀는 그가 밤새워 부산으로 달려와 해운대 바닷가에서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술기운을 빌려 그녀에게 전화했음을 알아차렸다 “나는 모랄을 몰라.” 동시에 그녀는 ‘모랄은 집에 두고 왔지!’ 하며 되뇌인다. “안돼, 어디든 가서 쉬었다가 돌아가!”라
Celestial family. Bronze, 53×27×47cm, 1997 우주가족 주영숙(作) ’59 :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졸업) ’75 : 미국 Oklahoma주립대학교 대학원(M.BS) ’97 : 덕성여자대학교 총장 ’78~ 현재 :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2001년은 테러와 전쟁의 한해였다. 100여층의 어마어마한 건물 2동에 사람을 가득 실은 여객기들이 건물로 돌진 충돌함으로써 두 건물이 화염에 휩쌓이고 폭삭 내려앉아 수천명이 죽는 아비규환을 연출했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이 테러는 부시정권의 강경 일변도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은 힘으로 굴북하는 존재가 아니다. 누르면 누를수록 그 반작용은 더욱 세어지는 물리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진정한 복종은 강압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宗敎(종교)란 무엇인가. 한자어 그대로 ‘으뜸되는 가르침’이다. 신의 이름으로 테러를 자행해서 수천명을 죽이고, 정의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며,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수억의 사람들을 외면하고 세계최강의 군사력이 부족해서 또 1000억 달러로 전쟁을 준비한다면(MD) 그것이 과연 정의로운 신의 뜻이겠는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많겠지만 인류의 성자인 예수가 이번 경우에 어울리는 말을 해서 옮겨본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를 전파하게 하심이라” 2002년 새해에는 평화와 자유와
겨울 나루터 전석열(作) ’59 : 전북 임실군 청웅 출생 ’84 : 경희대 치과대학 졸업 ’94~5 : 서울‘광영회’ 회원전 출품 ’94~현재 :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THE IMPRESSION’회원 ’94 : 현대미술대전 사진부문 금상 ’95 : 동아국제사진싸롱, 대전일보국제사진전등 사진공모전에서 다수 입상 및 입선 ’97. 9 : 대전시민회관 개인전 ’97. 9 : 청웅 전석열사진집 발간 25㎝×25㎝ -84Page ’2000~: 대전광역시 치과의사회 사진동우회장 대전 예치과의원장
창·간·35·주·년·특·집 기 백 (氣魄) 이상득(作) 1952년 4월 5일생 1978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1981년 사진활동시작 1984년 자연사진입문 1993년 개인전[무주리조트 초대전] 1994년 개인전 [허스갤러리] 1998년 개인전[후지포토살롱] 현 재 제중치과원장 세월의 풍상을 겪어도 흔들리지 않는 깊게 내려뻗은 뿌리가 있습니다. 모진 바람이 세상을 휘둘러도 변하지 않는 기개가 서려 있습니다. 수많은 무리에 뒤섞여도 세월의 흐름을 담은 강건한 그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치의신보 창간 35주년 앞서가는 정론지가 되겠습니다.
“얘, 네가 보기에 엄마는 영어를 어느 만큼 하는 것 같니?” 나는 순간 아이의 내게 향한 처연한 눈초리를 놓칠 수 없었다. “엄만..., 그냥 보통이지 뭐..., 됐어요? ” 아이고.., 한숨이 나왔다. 아주 옛날부터 취미사항을 기록하는 난에 노상 올랐던 것이 만인의 취미인 책읽기, 음악 듣기, 결혼하고 나서는 거기에 요리가 덧붙여졌다. 하지만 사실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죽자 사자(?) 하는 경우가 많기에 진정한 의미의 취미라고는 하기 어렵다. 거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외국어 공부가 있다. 그렇다고 몇 개 국어가 유창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하루하루 일과중에 투자하는 시간을 본다면 단연코 취미생활에 하나 끼어 줄만한 일감이다. 내게는. 대학 들어가자마자 내가 투신했던 항목은 남산 등성이에 자리 잡은 독일 문화원에 다니는 일이었다. 괴테-인스티투트라는 너무도 독일다운 이름을 가진 그 곳은 소녀적부터 선망했던 독일적인 낭만이 담뿍 담긴 장소였다. 그 곳에서 나는 비록 상대방이 하는 말은 못 알아듣더라도, 최소한 내가 하고자 하는 뜻은 전달 할 수 있는 ‘Survival German’을 습득했다. 그 후에 독일어란 것이 쓰이는 곳은 지구상에 독일과 그 인접한
나는 그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고 싶다. 그들의 고통을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놓치지 않는 가까운 이웃이 되고 싶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하지만 가끔은 그 ‘평등’에 의문이 생길 때도 있다. 정신지체부자유 아이들을 만날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똑같이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기다리다가 세상에 나오는데, 왜 누구는 장애아로 태어나고 누구는 비장애아로 태어나는 것일까 하는 물음이 나도 모르게 생기곤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말한다. 비장애아와 장애아도 똑같은 인간이라고. 그들은 평등하다고. 하지만 말로 떠드는 것처럼 실천하는 이들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있을까? 내가 보기에 장애아를 비장애아와 똑같이 인격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 주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회적인 편견과 사람들의 시선이 장애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상처가 된다. 나도 보통 인간과 다를 바 없다. 비록 내가 장애아이들을 위해 무료로 치과장비를 기증하고 또 진료까지 해준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아무런 편견없이 아이들을 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본다
La mer 유혜경(作) ’90 조선치대 졸업 대전광역시 치과의사 사진동호인회 “IMPRESSION” 회원 대전 성남치과 원장
지금은 아련한 옛 추억 속에 묻혀 버린 지 오래지만 나에게도 한 때 인생에 대해 방황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담배연기 자욱한 허름한 지하 찻집에 앉아 ‘솔베지 송’을 들으면서 긴 시간 고독에 잠겨보기도 했고, 코스모스가 만발한 가을의 들길을 홀로 거닐며 나름대로 삶의 의미를 곱씹어보기도 하였다. 흰 눈이 장독대 위로 소복히 내려앉은 추운 겨울엔 자취하는 친구 방에 모여 앉아 막걸리로 몸을 녹이면서 나름대로의 인생론을 펼치며 밤 깊어 가는 줄 몰랐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씨익 웃음이 나오지만. ‘제까짓 애들이 인생을 얼마나 살았다고....’ 인생이란 ? 가수 최희준의 ‘하숙생’이 한창 유행할 즈음의 소년시절에 있어서의 인생이란 ‘나그네 길’이었고 안병욱 선생님의 수필을 탐닉 하면서는 ‘오늘이란 깃발을 매달고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되었다가 다시 ‘연극 무대’로 슬며시 바뀌기도 하였다. 이렇듯 수시로 바뀌어가던 나의 인생관이 지금까지 변함 없이 지속되어오는 계기가 있었다. 그건 어느 한 여학생의 편지를 받고 부터이다. 주변에서 문학소녀라고 불리우던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나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으로 자주 만날 수 있지만 우린 곧 잘 글
하늘에 걸린 십자가 장수일(作) 경희치대 ’76년 졸업 대전광역시 치과의사 사진동호인회 “IMPRESSION” 회원 대전 장수일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