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수입 중에서 현금으로 수납 받은 금액은 부정기적으로 은행에 입금하게 된다. 그리고 입금할 때마다 그 마음이 편하지 않음을 느낀다. 마치 탈세 등의 불법을 저지른 사람으로 오인 받을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치과의사들은 세금이라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만 별일이 없기만을 바랄뿐이다. 하지만 세금을 모르면 모를수록 커져가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납세자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주저할 수 밖에 없다. 치과의 현금수입 중 대부분은 현금영수증을 발급한 금액이어서 세무서에 신고된 수입금액에 포함된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현금으로 받았다는 것이 잘못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세무서에 신고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게 된다. 사실 이명박 정부 이후 시행된 수입금액양성화정책으로 수입금액누락이 매우 어려워졌다. 현 정부도 2015년 들어 수입금액양성화정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가공경비계상이나 사업과 관련이 없는 비용 등을 검증하거나 사전에 예방하는 방향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국세청이 2013년 4월 1일 발표한 국세행정운영방안에 정부의 수입금액양성화 실적으로 2012년 민간소비지출대비 신용카드와 현금영수증 사용액이 88.6%(민간소비
사건개요상악 좌측 구치부에 임플란트 시술 후 식립된 임플란트의 골유합 실패로 매식체를 제거한 후 상악동염과 관련된 증상이 발생하여 이비인후과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과정환자(남/44세)는 #27 치아의 골드크라운 탈락으로 A치과의원에 내원하여 크라운 재수복을 하였으나, 저작시 통증으로 다시 내원하였다. 진단한 결과 #27 치아 치근파절로 판단되어 단순발치를 시행하였다. 발치 3개월 후 별도의 골이식 없이 치조정접근법을 이용한 상악동 거상술을 동반하여 임플란트 1차수술을 받았다. 5개월 후 2차수술을 받고 임플란트 크라운 보철물을 임시 부착하였다. 하지만 약 3주후 저작시 통증을 호소하였고, 2일 후 임플란트 골유착 실패로 진단되어 매식체를 제거하였다. 임플란트 제거 5주 후 심한 두통이 시작되어 6주 후 B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받았으나 ‘편두통, 일차찌름두통’ 진단하에 약물처방을 받고 퇴원하였다. 약 2주후 다시 두통 및 상악 좌측 부위 통증을 주소로 C치과의원에 내원하여 상악동염 의증 진단 하에 이비인후과 진료를 권유받고, D이비인후과에 내원하여 ‘만성 범부비동염, 코 선반의 비대’ 등의 진단 하에 약물 치료를 받았으며, 1주일 후에 E이비인후과에 내원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언론인, 영국 사람, 항일 독립투사 배설(裵設. 베델. Ernest Thomas Bethell)선생을 아십니까?“하늘은 무심하게도 왜 그를 이다지도 급히 데려 갔단 말인가! (천하박정지여사호 天下薄情之如斯乎)” 배설 선생의 서거를 안타까워한 고종 황제의 조문(弔文)입니다. 황제로부터 깊은 탄식을 자아내게 했던 배설 선생은 “내가 대한을 위해 싸우는 것은 하느님의 소명이다”라고 했습니다.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민족의 자주와 독립,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과 생애를 바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배설 선생은 우리정부가 선생의 항일 언론투쟁을 높이 평가하여 1968.3.1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추서하였고, 1988년 ‘뿌리 깊은 나무’가 선정한 ‘이 땅의 사람들’이란 제목의 근대인물 88명 중 유일한 외국인입니다. 이 책은 배설 선생에 대해서 “대한제국 말기에 어떤 한국사람 못지 않게 대한의 독립을 위해 일제와 싸우다가 마침내 이 땅에서 돌아가신 언론인”이라고 찬양했습니다. 또한 ‘대한 언론인회’는 2004.3.24 ‘언론인 명예의 전당’제1차 헌정자 7분 중 첫 번째로 선정하였습니다.일제의 침탈로 국권을 빼앗기고,
개원 19년차 정환영 원장의 좌충우돌 ‘저희치과’를 엿보면서 해본 것, 하고 있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함께 나누며 동료, 선후배의 치과 경영에 도움을 드리고자 이번 칼럼을 연재합니다.2013년 7월부터 스케일링이 후속 처치가 필요 없어도 연 1회에 한하여 급여화가 되었습니다. 이미 치주치료를 위한 치석제거가 보험 적용이 됨에도 불구하고, 스케일링도 보험이 되냐면서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치과에 내원하였습니다.스케일링 보험 정책을 홍보하면서 스케일링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인식되었고, 본인 부담이 줄면서 내원 환자수도 늘어났습니다. 요샛말로 잠재적인 스케일링 환자들의 포텐이 터졌다고들 합니다. 저희치과는 어땠는지 수치로 살펴보겠습니다.(편의상 연 1회 스케일링과 치석제거로 표현을 달리하여 서술하겠습니다.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를 1차년, 2014년 7월부터를 2차년으로 서술하겠습니다.)연 1회 스케일링은 비보험 스케일링에 비해 수가는 낮지만 1차년에 보험화 전의 비보험 스케일링 건수 대비 250%이상 늘었습니다. 게다가 2차년에는 1차년에 비해 올해 4월말 현재 20%이상 늘었고 2차년를 결산하면 50%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치석제거
한 기업형 사무장치과 100여명이 세무당국으로부터 추가로 과세 추징을 당하고 있다.기업형 사무장치과의 탈세 수법은 교묘했다.페이닥터들이나 명의대여 원장들의 급여 전부나 일부를 현금으로 지급한 후 소득신고 일체를 누락하거나 축소 신고하는 방법으로 세금을 탈루 했다.특히 일부 지점은 페이닥터의 친인척이 근무하는 것으로까지 위장해 탈루하는 수법도 썼다.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페이닥터들을 통해 세금탈루에 나섰다면, 치과위생사 등 수백명의 내부 근무자에게도 유사한 수법을 써 배를 채웠을 개연성은 충분하다.세무전문가들은 기업형 사무장치과의 이 같은 행태는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가 분명하며, 죄질이 무겁다고 입을 모은다. 소득ㆍ수익ㆍ행위ㆍ거래 조작 또는 은폐에 해당한다는 것으로, 세금추징 외에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벌금형은 물론 징역형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세추징을 당하고 있는 기업형 사무장치과 페이닥터들은 본사 수뇌부의 지시에 따랐을 뿐,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수뇌부가 추가로 과세 추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내부 근무자가 알 수 없도록 최대한 비밀유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벌금·징역형 등 형사처벌 불이익을 당
공원 공터에서 쑥이나 봄나물을 캐는 아주머니들이 있다. 사실 그다지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그분들을 그냥 아주머니로 볼 때는 그랬다. 그러나 누군가의 어머니로 보았을때 그 행위에 대한 해석은 완전히 달라졌다. ‘아주머니들’이라고 읽었을때는 ‘개념없음’이나 ‘무조건 취하고 보는 욕심’의 행동으로 해석했었고, 그래서 별로였다. 어느순간 아주머니를 누군가의 어머니로 바꿔 생각하자 그 행위는 가족에 대한 사랑, 혹은 거룩함으로도 읽혀졌다. 그런 어머니들의 행동은 자신의 이미지관리 차원을 넘어서 있다. 먹여살림의 거룩하고 절박한 몸짓이다. 세상 모든 어머니가 자기관리가 우선이었다면, 역으로 지구상의 모든 가족과 자녀들의 이미지는 엉망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는 재밌는 확대해석을 해본다. 자신은 어떻게 보여도 아랑곳하지 않는 어머니들이란 곧 우리가 보기 좋지 않게 여기는 아주머니들의 또다른 얼굴인것 같다.이쯤에서, 서울에서 대학원과정을 밟고 있을때 한번씩 올라오셨던 우리 어머니가 떠오른다. 오실 때마다 인절미를 해서 양손에 한보따리씩 싸든 채 뒤뚱뒤뚱 버스에서 내리시는 모습을 볼때면 퍽 유쾌하지 않았다. 그것을 내가 들어야 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고, 무거운 것 들고 다
화를 참지 못하고 표현하다니… 화를 내서 좋은 결과를 얻어낸 일이 과연 있을까? 화를 내기는커녕 미워하는 마음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틀어지고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불편한 관계가 지속된다. 얼마 전 한 모임을 준비하면서 미움이 싹터서 일을 그르치게 되었던 경험을 하였다. 나름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다스릴 줄 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을 무렵이었다. 모임을 위하여 모두들 애를 쓰고 있는 중에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회의 도중 사사건건 시비를 내어 방해만을 일삼는 회원이 있었다. 차라리 나오지 않는다면 도움이 되겠다는 의견도 일축하고 준비를 해나갔다. 만족스럽진 못해도 나름 잘 마무리하고 있었는데, 추진력이 바닥이 났을까? 모임 전날 그 동안의 회한이 밀려오며 갑자기 미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행사당일 나가기 조차 싫게 되었고, 결국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자’이야기가 떠오르며 어리석음과 사랑이 부족하였음을 고백한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제게 돌아올 몫의 재산을 지금 나누어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는
서른이 되면 굉장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중, 고등학교 학창시절에는 스무 살이 되면 자유를 만끽하며 꽃다운 20대를 보낼 줄 알았다. 스무 살이 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여전히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취업에 대한 걱정으로, 스펙과 학점에 대한 준비로 20대 초반을 보냈다. 취업, 입학 등의 수많은 경쟁의 회오리를 지나 보내면 바래왔던 자유와 행복이 있을 줄 알았다.‘송지은’이라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 제목처럼 ‘예쁜 나이 25살’에 치전원에 입학한 후 또 다른 치열한 경쟁과 수많은 시험 관문을 매번 통과하고 보니 벌써 29살… 내가 상상했던 서른 즈음의 나는 10대, 20대 때의 나와는 다른 훌쩍 성장한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지만, 현실은 눈앞의 과제와 시험들을 힘겹게 헤쳐 나와 지치고 상처투성이인 ‘어린 아이’의 모습이었다. 자유와 남들이 말하는 행복을 여전히 원하지만, 그건 또 다른 나의 10년 뒤 모습일 뿐이었다. 그래도 25살에는 꿈을 위해 열심히 나아가는 나를 응원하며 나의 행복은 5년 쯤 뒤로 미루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생활과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주어지지 않는 일상에서
사건개요제3대구치 발치 후 경부심부감염의 진단하에 경부농양배농술 치료를 받음. 치료과정 환자(남/35세)는 파노라마 방사선 사진 촬영 후 우측 상하악 구치부의 치석제거술을 받고, 국소마취 하에 #18의 단순발치와 #48의 외과적 발치 후 항생제와 진통·소염제를 3일분 처방 받았다. 다음 날 환자는 목이 아파서 입 벌리기가 힘들다는 증상을 호소하였다. 3일째 목이 더 붓자 환자는 B이비인후과를 방문하여 ‘경부심부감염’ 의증 진단 하에 상기도 증기흡입치료를 받았고, 같은 날 인후통을 주호소로 C병원 응급실을 방문하여 경부 CT촬영 결과 ‘좌측 악하공간의 심경부농양’ 진단 하에 이비인후과에 입원하였다. 4일째 C병원 치과와의 협진 결과 ‘양측 악하공간의 심경부농양’ 진단 하에 항생제 및 진통·소염제 주사 등 보존적 치료를 받았으며, 1주일후 경부 CT 결과 ‘양측 악하부 농양’소견으로 양측 악하공간의 심경부농양 절개 및 배농술을 시행 받았다. 8일째 #48 부위 봉합사를 제거한 후 추가적인 항생제와 진통·소염제 주사 등 보존적 치료를 받고 1주후 퇴원하였다. 환자는 경부농양배농술을 받은 좌측 목 부위가 당기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상태이다.분쟁쟁점환자: 우측 상하
서울을 도읍으로 삼은 지 600년이 넘었으니 시내 동네, 골목 어디 한군데라도 오랜 역사의 자취가 배어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굴곡과 혼란으로 말미암아 궁궐 같은 덩치큰 일부를 빼곤 그 많은 흔적들이 대부분 뭉개지고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변명이라도 하듯 무언의 표지석이 한편에 앉아서 텅빈 흔적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관심을 갖고 보면 성내라고 불린 사대문 안에는 이런 표지석이 의외로 많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대학교 연건캠퍼스는 창경궁과 맞닿은 곳이라 여느 성내 마을에 못지않게 많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옛 창경국민학교를 허물고 지은 치과병원 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병원 입구에 있는 표지석에 따르면 이곳은 조선 세조때 뛰어난 관리이며 큰 학자인 이석형(李石亨, 1415-1477)이 살던 집터였다. 그는 진사, 생원, 문과의 과거시험에서 연속 장원급제하였으며, 요직인 집현전을 거쳐 한성부윤, 대사헌을 역임한 인물이었다. 그는 뜰 한가운데 작은 연못을 파고 그 옆에다 이엉을 얹은 정자를 짓고는 계일정(戒溢亭)이라 이름하였다. 후손더러 명성과 권력, 재물과 복을 얻는 데 넘치는 일이 없도록 항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까? 구구단을 외우라는 아버지 지시에 열심히 구구단을 외웠으나 모두 외우지 못했던 나는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시는 소리가 나자 금세 자는 척 연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어린 생각이지만 설마 아버지가 자는 아이를 일부러 깨워 구구단을 외워보라고 채근하지는 않으실 것이라 속셈을 했으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버지 앞에서 구구단을 더듬더듬 외우는 나를 혼 내시기는커녕 오히려 귀엽다며 안아주셨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오랫동안 남는다. 그 이후로도 부모님, 선생님께 두통, 복통 등 이런저런 꾀병을 부려 위기를 벗어난 적도 여러 번 있었는데, 어렸을 때 흔하게 써먹었던 꾀병의 요령이 누구에게나 무용(武勇)의 추억으로 아련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꾀병을 부리게 되면, 일단 상대방의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징벌이 유예되며,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을 수가 있고, 운이 좋으면 용돈이 쥐어지기도 한다. 훗날 나의 꾀병조차 안아주는 누군가의 따뜻한 품이 나에게는 소속감이 되어지고 진한 사랑의 감정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것이다. 비록 꾀병이지만, 내가 아프다는 데 안아줄 줄 알았던 사람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실망감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