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치협 집행부의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되며 각 분과학회나 연구회의 춘계 학술대회가 거의 마무리 되고 치과의 차기 연도 건강보험 수가 계약이 이루어진다. 2025년도 수가는 3.2% 인상률로 작년과 동일한 수치로 5월 31일 타결되었다. 치과계 실태에 대한 공단의 이해 및 SGR외에 다양한 경제모형을 기반으로 재정위원회에서 산출한 수가 밴드에 대한 치과의 최대 요구치가 조정, 받아들여져 비교적 이른 시간 내에 합의되었다고 한다. 특히 올해는 의정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필수의료(부적절한 용어임, 기본권 의료가 적절하며 반대되는 용어는 부가의료) 등이 변수가 될 것으로 보여 조기 협상 타결이 합당해 보인다. 구강보건 주간이 있는 6월에는 보건복지부가 주최하고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주관하는 구강보건의 날 기념식이 6월 4일에 열린다. 장관과 복지부위원회 소속 국회의원과 관계기관, 유공자 200여분이 참석하고 협회, 치위생사회, 기공사회, 치산협, 치병협, 한국구강보건협회, 스마일재단, 서울장애인치과병원들이 ‘우리 건강 이 행복에서부터’의 슬로건 하에 참여하는 구강보건의 날 기념 부대행사로 무료 치과검진, 교육프로그램, 홍보 캠페인을 통해 구강검진의 중요성
지난 5월 9일 선배님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받고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주일전 임 후배로부터 선배님의 근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아직 건강하시구나 생각했는데 이 어인 청천병력 소식입니까. 선배님은 광주를 떠나 멀리 계시더라도 수십여 년 간 치과계를 위하여 함께 걱정하고 토론하고 결국 뜻을 같이하며 살아온 세월의 정이 얼마인데 그렇게 홀연히 가신단 말씀입니까. 黃一正(황해순)선배님은 1940년 7월 7일에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태어나 명문인 목포고등학교. 서울치대(16회)를 졸업하시고 본교부속병원에서 인턴 수련 후 군입대 제대하시고 1968년에 지방 광주시에서 치과개원을 하셨습니다. 바로 광주치과의사회 총무이사를 시작으로 전남치과의사회 총무이사, 광주광역시치과의사회 초대-2대 회장, 광주치과의사신협 2-3대 이사장, 전국치과의사신협 이사장협의회장, 치협 감사, 치협 의장 등 개원하고 계신 40여 년 동안 치과계의 발전과 국민구강을 위하여 참으로 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광주치과의사회관 건립 시(1991년)에는 직전회장으로서 1000만원을 건립기금으로 선득 기부하시어 모든 회원이 후원에 참여, 쉽게 숙원사업인 회관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선배
지난 십수 년간 치과계의 숙원사업이던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법안(보건의료기술 진흥법 일부개정안)이 드디어 2023년 12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전국 여러 곳에 의학 및 한의학 연구원이 설립된 것에 비하면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법안이 통과된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현재는 국립치의학연구원 설립을 위한 예비 타당성 조사를 앞두고 있으며, 이에 치과계를 비롯한 많은 이해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국립치의학연구원은 향후 대한민국 치의학 분야를 선도해 나갈 중추기관으로, 그 역할과 의의가 매우 크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구원 설립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입니다. 치의학 연구개발(R&D) 역량 강화와 미래 치의학 관련 기술 선점을 통해 구강건강 증진 및 신산업 창출 등 기대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입지 선정을 둘러싼 지역 간 경쟁과 갈등입니다. 연구원의 입지는 특정 지자체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닌, 치의학연구원의 발전과 치의학 산업 육성을 기대할 수 있는 곳으로 선정되어야 하며, 이를 통한 국가경쟁력 제고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국립치의학연구원의 성과를 극대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미식축구 경기가 슈퍼볼(Super Bowl)이다. 올해도 1억 2천만 명이 시청한 이 슈퍼볼 경기에는 야구공부터 하프타임 쇼, 그리고 수상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 광고가 따라붙는다. 특히 슈퍼볼 중간에 삽입되는 광고의 효과가 탁월하여, 기업들이 30초당 700만 달러(약 84억)가 넘는 광고비를 지불하면서 제품 마케팅에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투명교정장치(clear aligner)인 인비절라인(Invisalign)을 운영하는 Align Technology사는 2020년부터 이와 같이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지니고 있는 슈퍼볼을 운영하는 National Football League (NFL)의 공식 후원사를 맡고 있다. 투명교정으로 치열을 교정한 우람한 미식축구 선수들이 빠짐없이 인비절라인의 광고에 등장한다. 2024년 NFL 시상식도 이 회사가 주최하였다. 또한 교정장치물을 담는 케이스에 구단의 로고를 인쇄하여 치과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을 구단에 지원하는 등의 소소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유명 가수나 운동선수들과 같은 셀럽들이 인비절라인을 이용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에서는 투명교정이 치열 교정
3년 2개월 간의 군의관 생활을 드디어 마쳤다. 홀가분하면서도 정들었던 군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남는다. 그동안의 군 생활을 돌아보며 소회를 자문자답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개원가와 사뭇 다른 군대에서의 삶이 독자들에게 흥미로우리라 생각한다. 1. 본인의 근무지는? 필자는 공군으로 배정받았다. 첫 2개월은 충북 괴산의 육군학생군사학교(속칭 훈련소)에서 군사 교육을 받았다. 나이 서른 먹고 아침저녁으로 달리기와 체조를 하고, 20kg에 달하는 군장을 메고 산을 오르며 훈련을 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살이 3kg나 쑥 빠졌다.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동시에 제일 건강했던) 중 하나로 기억한다. 그 후 원주 제8전투비행단에서 2년간 복무하였고 서울공항(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서 남은 1년을 보냈다. 공군 치과 군의관 대다수는 비행단에서 복무한다. 비행단 내 항공의무대대에 치과 진료실이 하나씩 있으며 대부분 치과 군의관 한 명만이 배정된다. 비행기 소리가 커서 좀 불편하지만,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보면 가슴에 웅장함(소위 말하는 국뽕)이 차오른다. 2. 공군을 포함하여 요즘 군대 치과는 시설이 어떠한가? 놀랍게도 상당히 준수하다. 외산 근관 모터와 NiTi
딱 1년전 이곳에 화이트코트 세레머니와 원내생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마음에 대한 글을 기고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이 그렇게 멀지 않은데 벌써 1년이 지나 어느덧 1달 후면 원내생 생활이 끝나게 된다. 원내생은 치과의사가 되고자 하면 피할 수 없는 실습기간이다. 몰랐는데, 우리나라만 그런 것 또한 아니며, 외국 치과대학도 마찬가지로 원내생 시스템이 있었다. 면허도 없는 학생일 뿐이지만 그 기간동안 환자를 직접 마주하기도하고, 여러 진료들을 옵저베이션 하면서 임상에 보다 더 가까운 교육을 받게 된다. 원내생, 말그대로 student dentist로서의 생활은 풍요로웠다. 행복으로만 가득하진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사건사고도 많았고 감정적으로도 다채로웠다. 처음 환자를 만나던 날 떨려하던 마음이 우스워질만큼, 이제는 원내생으로서의 생활은 너무도 익숙해졌다. 원내생 초반, “잘 안맞네” 라는 선생님의 혼잣말을 잘못 알아듣고 난데없이 어깨 안마를 해버린 우리 원내생들이, 이제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진료에 스며드는 지경이 되었는데, 원내생이 끝난다니 아쉽기도 하다. 원내생 기간 동안 나는 크라운 치료, 레진 수복 치료, 발치를 해 보았다. 진료 하나하나가 주는 스트레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가상 사례) 67세 여성 김 모 씨는 치아 상태가 좋지 않아 큰마음을 먹고 지역에서 홍보를 많이 하는 치과에 방문했습니다. 치과는 유튜브 영상을 많이 찍는 치과의사가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치과 검진 후 치과의사는 자신의 유명세를 다시 한번 강조하며, 수복부터 발치 후 임플란트 보철까지 여러 치료를 강하게 권했습니다. 심약한 환자는 치과의사
마당에서 행패 부리는 취객을 막아선 마담에게 취객은 깨진 소주 병을 휘두르고, 피가 분수처럼 솟자 마루에서 술 마시던 젊은이가 제비처럼 날아와 목을 잡는다. 출혈은 거짓말같이 멎고 두 사람은 그 자세대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마담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약간의 쉰 목소리만 남았다. 장소는 종로 2가 뒷골목의 주점 대련 집이요, 취객을 맨몸으로 막은 마담은 주점 주인이며, 파열된 경동맥을 잡아 순식간에 지혈하고 봉합까지 깨끗이 마무리한 청년은 일반외과 레지던트 K. 마담은 K에게 평생 무료 이용권(?)을 주고, 필자도 가끔 들려 착한 대접을 받았다. K는 바로 교정과 1년 후배의 형이었던 인연이다. 그는 모교에 교수로 남아 한국 최초로 ‘소아외과’라는 분야를 개척하는 값진 업적을 남겼다. 의·치(醫齒)대 본과 수업시간표는 꽉 찬 44시간이다. 중간고사 외에 기별(期別 semester)고사와 시간마다 쪽지시험(quiz)도 있고, 학년제(制)이므로 한 과목만 실패해도 일 년 유급이다. 아르바이트가 어려운 빡센 일정이다. 1967년 인턴 수당은 월 1500원, 가운 세탁비 800원에 구두닦이에게 700원을 주고 나면, 교통비가 없었다. 그해 가을 서울의대 인
협회의 싱크탱크인 치과의료정책연구원(HEALTH POLICY INSTITUTE, 원장 박영채)이 6년 만에 “열정과 스토리가 있는 정책 개발 및 실천 전략”이라는 대주제 하에 정책 전문가 양성과정을 6월 13일에서 7월 4일에 걸쳐 개설한다. 정책연구원의 주요 사업은 협회의 중ㆍ장기정책 개발 및 정책 역량 강화 방안으로 정책연구원에서 수행한 내/외 연구 보고서를 제공하고 정책 제안서를 내거나 정책 포럼을 개최하여 치과계의 이슈를 올바르게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번 정책연구원 전문가과정은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오피니언 리더들의 의견 교환의 기회 및 치과의료 전문인력의 교류증진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대체로 정부나 비영리 기관, 학계, 기업 등의 정책연구원의 역할 및 업무는 기존 정책을 분석 평가하여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데이터를 수집하여 연구를 수행하고 정책을 제안, 보고서 작성, 세미나 및 워크숍을 개최한다. 전문가과정을 통해 치과계 뿐만 아니라 정부, 국회, 사회의 보건의료에 대한 큰 그림을 통찰해보고 AI가 치과계에 미치는 혁명적인 변화를 간접, 직접 실감하는 기회가 된다고 한다. 또한 대국민 홍보와 소통 측면에서 효과적인 전략을 모색할 수 있다.
얼마 전에 대학동기들이 모여 친구의 회갑을 축하해주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예과에 입학한 지 40년이 지났으니 참 오랜 세월이 지났더군요. 나르는 화살보다 더 빠른 것이 세월이라고 했던가요? 비록 외모는 갓 입학했을 때의 탱탱한 피부도 아니고 머리도 많이 빠진 친구도 있고, 얼굴에 주름도 많은 외모이지만 모두의 마음과 분위기만은 학창시절의 그대로여서 나이도 잊어가며 왁자지껄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너희들 치과를 언제까지 할 생각이니?”라고 화두를 던졌고 다들 웃고 떠들던 분위기가 제법 진지하게 바뀌면서 각자의 생각을 말하는 시간을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딱 5년만 하고 그만두겠다, 또 다른 친구는 10년은 더 하겠다, 또 다른 친구는 체력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오래 하고싶다라고 하였고,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친구는 여러 가지 상황이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므로 꼭 언제까지 하겠다라는 마음은 진작에 접었고, 하루하루를 지내보다가 도저히 안되겠다고 느껴질 그 때가 그만둘 때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눈 이야기가 치과의사가 일반인 비해 근골격계 질환이 28배, 신장질환 13배가 높고, 스트레스에 매우 취약해서
저는 첫 개원부터 지금까지 야간진료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야간진료가 필요할 만큼 환자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야간진료 시간이 아니면 내원하기 어려운 환자분들이 계셔서 진료팀 절반을 퇴근시키고, 남은 인원과 함께 야간 진료에 임하고 있습니다. 2008년, 개원 초년차 시절, 두 명의 치과위생사를 고용해서 치과를 운영했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 당시에는 치과들이 대부분 주6일 근무제를 적용했습니다. 치과위생사를 한 명만 고용하든, 두 명을 고용하든, 세 명을 고용하든 주6일 모든 날 동안 인원의 증감 없이 꾸준히 함께 일할 수가 있었습니다. 평일 진료 시간을 아침 9시반부터 저녁 7시로, 야간진료는 저녁 9시까지로 세팅했었는데 군말 없이 늦게까지 기다리다 퇴근했던 치과위생사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야간진료 시간이 되면 창 밖으로 보이는 저녁 풍경의 운치, 낮 동안의 열기가 식어진 진료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체어 세 개만으로 개원했던, 첫 개원지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환자도 많지 않고 어시스트 할 직원도 많지 않으니 낮의 진료보다 더 꼼꼼하게 진료가 이루어집니다. 평소에는 직원에게 넘기던 일도 제가 마무리를 하곤 합니다. 그렇게 야간진료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