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형 화재 사건이 많다. 차량 사고도 많다. 이런 사고를 보면서 문득 희생자의 살아남은 가족들이 걱정된다. 남아 있는 가족들을 위하여 어떤 준비가 되어 있을까? 필자도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아파트 화재 사고도 많은데 우리 아파트는? 40년이 넘은 아파트인데 소방시설은 제대로 되어 있을까? 관리비도 많이 내는데 우리 아파트 전체가 한꺼번에 보험에 들어 있지는 않나? 개인적으로 아파트 화재보험에 들었나? 이 순간까지도 생각만 했지 어느 것도 확인해보지는 않았다. 내가 사는 곳인데. 자동차는 분명히 종합보험에 들어있는데, 내가 걷다가 다치면? 지난 번 수술 받을 때에 보험을 확인해봤다. 아내는 암보험이 있었는데, 나는 없었다. 국가의 건강보험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국가의 보험덕분에 견디어 낼 수 있었다. 지금 의료계의 어려움이 진행 중이다. 끝이 보이기는 하는데 그렇게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어쨌든 잃은 것도 많았지만 많은 것이 개선되었고, 앞으로도 많이 개선될 것 같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여 조직의 균형이 깨지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여 외부에서 힘이 가해질 때는 극단적인 조치가 취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위에서 보는
2024년 7월 11일 뉴스를 들어보니 65세 이상 인구가 1천만 명을 돌파하였고 정부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한 이후 5명중 1명이 노인이라는 발표를 하였다. 2013년 11년 전만 하더라도 600만명 수준이었으나 빠르게 늘어서 아마도 금년 후반기 말에는 노인인구의 20%를 넘기면 초고령 사회가 금년부터 시작되는 게 분명해 보인다. 인구구조가 바뀌면 사회변화도 크리라고 보는데, 600만에서 700만 명이 되기까지 48개월이 걸렸지만 점차 그 속도가 빨라지더니 단 27개월 만에 900만 명에서 1000만 명을 돌파했다. 남성이 442만 7천여 명 여성이 557만 2천여 명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은 구조이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26%로 가장 높고 경북, 강원, 전북 순이다. 현행법상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하지만 건강상태가 좋아지고 기대수명이 늘어나서 과거와 달리 사화활동이 활발하다. 아마도 필자가 기억하건대 약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한치과의사협회비 면제 연령이 65세 이상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70세로 상향 조정하였다. 노인인구의 증가로 인해 면제자가 증가하다보면 협회비 납부율이 낮아져 재정이 부실해지고 아직 65세 이상도
6차선 횡단보도 깜빡깜빡 푸른 신호등/ 열 발짝만 뛸까?// 19 18 17 16 ...// 그래/ 다음 신호에 건너지.// 현찰 주머니 속에 바스락/ 만 원짜리 서너 장.// 플래티넘 카드/ 하나도 안 부럽다.// 재래시장 구겨지고 귀 말린/ 퇴계 영정 만나는 날.// 달포 만에 다시 보는/ 울 엄마 표 오이소박이.// 손가락만 한 세 토막에/ 일금 삼천 원.// 거스름돈이 더 민망한/ 이 동네 짱은 퇴계 이황.// 맥도날드 쌍무지개 노랑 쌍무지개 앞에/ 우두커니 섰다가// 모퉁이 돌아 집어든/ 까망 풀빵 봉다리.// 달콤 짭짤 혀에 감치는/ 육즙 맛 뉘 싫으랴?// 한 수 삐끗하면 마냥 헤매는/ 터치스크린에 쫄아 그러지.// 늘근 아내 어제 찾던 새우젓이 왜 예 있어?/ - 미안해, 여보.// 참, 고춧가루 무치려고 내가 옮겼지/ - 응, 그래?// 아무튼 당신, 냉장고 정리 잘 해/ - 알았다니까.// 전우(戰友): 詩作 노트 아뿔사, 팔십 줄에 들어서니/ 몸은 굼뜨고 맘은 헤매어// 눈 바쁘게 도는 세상/ 따라가기 벅차다.// 종 주먹을 들이대며 따지다가도/ 여보- , 한마디에 배시시 쪼개는// 마누라는 미더운 평생의 전우/ 팽팽하던 처녀 때보다 늙어
퇴근하는 길에 멀리 사는 친구의 어머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년 여름에 우리 치과에 다녀갔던 친구가 며칠 전부터 잇몸이 부어 아파하는데, 사랑니 탓인지 어디가 탈이 났는지 걱정이라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의료비도 비싸고, 의료 수준도 신뢰하기가 어려워 현지 치과에 가기가 싫다는 것이다. 며칠 후에 한국에 갈 수 있는데, 우리 치과에서 봐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이럴 땐 오해 걱정 없이 예약해줄 수 있는 소소한 개원의라서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다음 날 출근해서 친구의 차트를 확인했다. 마냥 뛰어놀 나이였을 때, 땀 뻘뻘 흘리며 인간 루돌프로 봉사했던 나를 단박에 ‘이모’에서 ‘친구야’로 격상시켜줬던 그 꼬맹이가 벌써 커서 사랑니 걱정을 한다니, 직접 키운 것도 아닌데 감개무량했다. 올해 파노라마 사진을 다시 찍어보아야 정확하겠지만, 작년 파노라마로 미루어 사랑니 문제는 턱없이 먼 미래의 걱정이었다. 우식치아도 없고 양치도 잘하는 학생이었으니 그 사이 크게 나빠질 만한 것도 없다. 아마도 제2대구치가 맹출되고, 졸업이며 시험에 신경쓰느라 구강위생이 좋지 못해 잇몸이 부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친구야’의 모친에게 연락해 안심시켜주고 검진일 예약도 확
인공지능(AI)은 빠르게 발전하며 우리 삶의 많은 측면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분야로 AI의 능력 향상에 따라 7단계(The 7 Stages of AI)로 나눌 수 있다. 1)규칙 기반 AI 시스템(Rule-Based Systems, 1950년대-1960년대): 인공지능의 초기 형태로, 결정내리기 위해 미리 프로그램된 일련의 규칙에 의존하며, 복잡한 상황이나 새로운 상황들을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음.(예: 의료 진단 시스템, 간단한 챗봇). 2)상황 인식 및 유지 시스템(Context Awareness and Retention Systems, 1960년대-1970년대): 특정영역에 대해 과거 정보를 저장 및 접근할 수 있어, 맥락에 따라 자신의 반응을 조정할 수 있으나, 스스로 학습, 개선할 수 있는 능력 결여됨.(예: 스팸 필터, 초기 체스 게임 프로그램). 3)도메인별 숙달 시스템(Domain-Specific Mastery Systems, 1970년대-1990년대): 게임 플레이나 패턴 인식 같은 특정 영역에서 탁월할 수 있는 AI 시스템으로,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 알고리즘을 사용해 데이터로부터 학습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능을 향상
공자(BC 551~479)는 노년에 “심하구나, 나의 노쇠함이여! 오래 되었구나 꿈에 주공(周公)을 다시 못 뵌 지”라고 탄식했다. 공자는 당신이 태어나기 900여 년 전 인물인 주공(기원전 1400년경 주나라 건국 시대 인물)을 삶과 학문의 멘토로 삼으셨다. 자기개발서 저자들은 현존하는 인물과 역사적인 인물 중에서 멘토를 골라 인생의 갈림길에서 자문을 구하라고 한다. 1971년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초·중·고등학교 12년 동안 24권의 국어 교과서를 접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많은 소설 중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소설은 김동인의 ‘무지개’와 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다. ‘무지개’에서 지금도 기억나는 장면은 무지개를 찾아 떠난 주인공이 기왓장을 들고 무지개를 찾았다고 즐거워하는 소년을 만나는 장면이다. ‘큰 바위 얼굴’에서 기억나는 장면은 주인공이 살고 있는 골짜기 마을에는 큰 바위 얼굴이 있다. 골짜기 마을에는 마을 출신 큰 바위 얼굴과 닮은 사람이 나타난다는 오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평범한 소년은 자라 큰 바위 얼굴로 인정받는 장면이다. 2024년 ‘무지개’와 ‘큰 바위 얼굴’을 50년 만에 다시 읽었다. ‘무지개’의 주인공은 무지개를 가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낯선 공책이 눈에 띄었다. 내가 쓰던 것이 아니었기에 확인하기 위해 꺼내던 중 종이 뭉치가 거기에서 ‘뚝’ 떨어졌다. 공책은 어머니가 생전에 쓰셨던 일기장이었고 떨어진 종이 뭉치는 캐나다 여행을 다녀오셔서 쓰셨던 원고였다. ‘서부 캐나다에서 로키산맥까지’란 제목의 글에는 필자가 샌프란시스코 UCSF 치과대학 교정과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인 1995년 6월에 샌프란시스코 집에 며칠 머무시다가 밴쿠버, 밴프 등을 관광하시면서 느낀 여러 가지 생각과 느낌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어머니의 손글씨와 잊혔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머니가 평소에 일기를 매일 쓰시던 걸 기억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님께 어머니 일기장을 달라고 부탁했었다. 어머니의 일기장을 갖고 싶었던 것은 어머니에 대한 많은 추억 때문이었다. 아버님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시면서 이사를 하셨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찾아본 어머니 일기장은 몇 권 남지 않은 걸 보관 했는데 그중 하나를 집어 들게 된 것이었다. 어렸을 때 잔병치레가 많아 부모님께 많은 걱정을 끼쳐드렸고 옆집에 있던 소아과의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지난번 대의원 총회를 보면서 치협이 건강하게 앞으로 나가는 길이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생뚱맞게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언젠가부터 치협에 대한 불신이 너무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아서다. 지난 총회에서 통과된 협회 대상 형사고소 건이 패소되면 고소인이 법무비용을 부담하자고 한 안건이 통과되면서 느낀 심정이다. 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 각 기업, 각종 단체 그리고 심지어 일반인 모임까지 이 세상 모든 조직체들은 각각의 감사 시스템을 통해 소속 조직체들을 건강하게 유지시키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그것은 자신들이 속한 조직체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안에서 곪는 것도 있겠지만 자체적인 감사라는 정화 시스템으로 곪은 부위를 도려내 새살을 돋게 하여 건강한 몸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물론 곪는 정도가 매우 심각하여 조직 전체를 괴멸시킬 정도라면 외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치협의 몸 상태는 어떠한가. 외부의 힘을 빌려 정화를 해야 할 정도인가. 과연 치협의 건강 상태가 치협을 괴멸시킬 정도라서 툭하면 외부의 힘을 빌린 것인가. 필자의 견해로는 대부분
얼마 전에 치의신보에서 ‘부정적 진료 후기 환자와 맞대응은 금물’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필자도 한때 어떻게 하면 병원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잘 되는 병원에는 행복한 문화가 있다.’ ‘누가 위대한 병원을 만들었는가.’ ‘진료비법의 노하우 24’ ‘의료전쟁’ ‘의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의사머리)’ 심지어 ‘우리 병원 좀 살려 주세요’라는 것까지 책으로 공부한 적이 있었다. 좋은 말만 옮기자고 해도 책 1권은 될 것 같은데, 사실은 읽어보면 우리가 모두 아는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부적인 것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기본적인 사람 사는 모습은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많은 부분 환자의 주관적인 생각에 의한 것이기도 하여 불평불만이 강한 환자에게는 강력하게 대응할 필요도 있겠지만 원래 나쁜 소식은 좋은 소식보다 백배는 소문이 빠르다고 하므로, 일단은 ‘일보 후퇴는 이보 전진을 위함’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베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치과위생사는 병원의 간호사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대한간호사협회가 간호사와 간호학과 학생, 환자와 보호자 58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것을 인용해보면, 간호사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 때는 언제인지를 물
수년전에도 그랬지만 근래에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현상중 개원가의 최대 고민은 보조인력 구인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절실하다. 의료계에서도 보조인력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치과계보다는 덜 심각하다. 아시다시피 치과는 치과위생사의 고용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진료 자체가 크게 지장을 받는다. 진료영역에서 원장이 혼자서 해결해야 할 몫이 크기 때문이다. 간호조무사의 역할과 치과위생사의 역할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기에, 치과운영이라는 것이 간호조무사만 고용하고 있는 치과에서 위임진료를 하지 않고서 진료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있고 따라서 치과위생사와 간호조무사가 혼재되어 있는 치과는 그나마 위임진료의 행태에서 약간은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진료실이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는 간호조무사들의 진료영역이 치과위생사들의 진료범위를 대신할 여지가 있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오로지 치과위생사만 있는 치과나 간호조무사만 있는 치과는 두 영역의 진료범위를 원장이 모두 하지 않을 경우, 불법적인 위임의 행태로 갈수 있는 소지가 다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재 “임플란트 수술의 보조는 의료기사법에 의해 치과위생사의 임플란트 수술보조는 위법이다”라는 간무협의 의견에
마당에서 행패 부리는 취객을 막아선 마담에게 취객은 깨진 소주 병을 휘두르고, 피가 분수처럼 솟자 마루에서 술 마시던 젊은이가 제비처럼 날아와 목을 잡는다. 출혈은 거짓말같이 멎고 두 사람은 그 자세대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마담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약간의 쉰 목소리만 남았다. 장소는 종로 2가 뒷골목의 주점 대련 집이요, 취객을 맨몸으로 막은 마담은 주점 주인이며, 파열된 경동맥을 잡아 순식간에 지혈하고 봉합까지 깨끗이 마무리한 청년은 일반외과 레지던트 K. 마담은 K에게 평생 무료 이용권(?)을 주고, 필자도 가끔 들려 착한 대접을 받았다. K는 바로 교정과 1년 후배의 형이었던 인연이다. 그는 모교에 교수로 남아 한국 최초로 ‘소아외과’라는 분야를 개척하는 값진 업적을 남겼다. 의·치(醫齒)대 본과 수업시간표는 꽉 찬 44시간이다. 중간고사 외에 기별(期別 semester)고사와 시간마다 쪽지시험(quiz)도 있고, 학년제(制)이므로 한 과목만 실패해도 일 년 유급이다. 아르바이트가 어려운 빡센 일정이다. 1967년 인턴 수당은 월 1500원, 가운 세탁비 800원에 구두닦이에게 700원을 주고 나면, 교통비가 없었다. 그해 가을 서울의대 인